자율주행·우주개발 등 미래·역점사업 관여…우수인력 확보 중요, 내부견제는 넘어야 할 산
그간 SI 업체는 계열사 내부에서만 사용하는 정보통신망 운용·보수 업무를 주로 맡아왔다. SI의 기술적 난이도는 높지 않지만 보안의 중요성 때문에 일반적으로 각 대기업 집단이 자체적으로 개발해 운용해왔다. 한편에서는 SI 업체가 오너 일가 증여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오너 일가가 SI 업체에 지분을 투자하고,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기업을 키워 증여세를 마련한 것.
여전히 주요 그룹의 총수 일가는 SI 업체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SDS 지분을 9.20% 보유하고 있고,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세 자녀가 지분 100%를 보유한 에이치솔루션은 한화시스템 지분 12.80%를 갖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도 현대오토에버 지분 7.33%를 보유 중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한때 SK C&C 최대주주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SI 업체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업종을 불문하고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스마트 물류, 스마트팩토리 등 인터넷 서비스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SI 업체 역할이 막중해지고 있다. 그간 시스템 유지 보수 등의 업무만 수행하던 SI 업체들은 개발부서를 대대적으로 확충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준비 중이다.
#AI, 자율주행부터 우주까지…보폭 넓히는 SI업체
현대오토에버는 정의선 회장 취임 후 그룹의 미래 사업을 책임지고 있다. 자율주행과 AI, 스마트팩토리 구축, 로봇 개발 등 현대차그룹의 역점사업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현대오토에버는 지난 4월 내비게이션 개발 및 정밀지도 구축업체 현대엠엔소프트, 차량용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업체 현대오트론을 흡수합병했다. 현대차그룹 측은 당시 “모빌리티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플랫폼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함으로써 IT 서비스 기업을 넘어 모빌리티 테크 기업으로 도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서 2020년 11월, 현대오토에버는 미국 엔비디아와 손잡고 2022년까지 현대차그룹 전 차량에 AI 기반 커넥티드카 운영체제(ccOS)를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모빌리티 혁명으로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인 자동차를 지배하면서 서비스 생태계가 새롭게 펼쳐질 것”이라며 “현대오토에버는 현대차그룹의 핵심 소프트웨어 업체로 거듭나 도심항공모빌리티(UAM)와 로보틱스, 스마트시티 등을 아우르는 미래 IT 비즈니스를 영위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화시스템은 우주 개발 사업에 적극적이다. 한화시스템은 최근 세계 최초로 우주인터넷용 위성 발사에 성공한 원웹에 3억 달러(약 3500억 원)를 투자해 저궤도 위성사업을 위한 주파수를 확보했다. 한화시스템은 위성-지상 연결 안테나 개발 업체 페이저(현 한화페이저)와 카이메타에도 투자해 우주 사업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한화시스템은 UAM 기체 제작업체에도 투자하는 등 우주 및 항공산업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며 “이제는 기존의 SI 사업부문이 눈에 띄지 않을 정도”라고 전했다.
그 외 대다수 SI 업체가 주목하는 부문은 스마트팩토리와 스마트 물류다. 스마트팩토리는 공장 내 모든 설비와 기계에 사물인터넷(IoT) 센서가 설치돼 각 제조 공정이 연계된 것을 뜻한다. 스마트팩토리가 도입되면 공장 내 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어 불량률 개선, 생산량 증대 등 효율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
전문가들은 삼성SDS와 LG CNS가 스마트팩토리 부문의 선두주자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포스코그룹도 2025년까지 전 밸류체인의 스마트화를 공식 선언하면서 포스코 ICT의 잠재력도 높게 평가 받는다. 물류 과정에서의 혁신을 꾀하는 스마트 물류는 롯데정보통신과 신세계 I&C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 롯데정보통신은 계열사 롯데로지스틱스의 물류 자동화, 롯데쇼핑의 비대면 결제 및 온라인 플랫폼 구축사업 등을 전개하고 있다.
최근 기업공개(IPO·상장) 태스크포스(TF)가 꾸려진 LG CNS는 메타버스 시장을 공략해나간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앞서 2019년, LG그룹은 향후 5년 안에 LG CNS 상장을 완료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LG CNS는 또 최근 메타버스 플랫폼 LG CNS타운을 오픈했다. LG그룹은 이곳을 통해 클라우드, AI, 물류, 보안을 비롯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X)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우수인력 확보 어렵고 내부 갈등까지
이 기업들의 가장 큰 고민은 인력난이다. 자율주행, AI, 스마트팩토리 등은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고 있어 대규모 자금은 물론 우수 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인력 영입이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이와 관련, 한 SI 업체 인사팀 관계자는 “해외 유수 대학의 석박사 인력은 설령 취업한다고 해도 미국 등에서 일하고 싶어 하고, 귀국한다고 해도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의 명함을 갖고 싶어 한다”며 “아예 창업에 관심이 있는 경우도 많아 삼성, 현대의 IT 계열사조차 우수 인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단기적으로 대규모 비용을 유발한다는 점도 부담이다. SI 업체는 업종 특성상 안정적으로 이익을 창출하는 편이다. 하지만 잉여금을 모두 투자로 돌리면 내부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 SI 업체 또 다른 관계자는 “신규 투자가 늘어날수록 이익이 줄고, 이로 인해 성과급이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어 내부 조직원들은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편”이라고 지적했다.
한 대기업 연구소의 박사급 관계자도 “내부 게시판에서 우리를 ‘무슨 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돈 잡아먹는 하마들’이라고 표현하는 글이 많다고 들었다”며 “나름 애국하는 심정으로 귀국해 일하고 있는데 그 같은 인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처음에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민영훈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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