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1년 9·11 테러를 배후 조종한 혐의로 미군의 추격을 받아오던 오사마 빈 라덴이 마침내 사살됐다. 그러나 사망을 둘러싼 의혹들도 속속 제기돼 세인들의 관심을 모은다. |
이 같은 음모론이 다소 황당하게 들리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빈 라덴 사살 과정에 대한 여러 의혹이 일면서 일각에서 상당한 관심을 모으고 있으며 사실 여부를 떠나 시사하는 바가 있어 내막을 알아봤다.
빈 라덴이 이미 10년 전에 죽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심지어 미 정부가 그동안 빈 라덴의 시신을 냉동시켜 두었다가 적절한 때를 기다려 해동시켰다는 설도 제기된다.
미 정부의 비리와 세계의 부정부패를 폭로하는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 겸 다큐 제작자인 알렉스 존스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는 부시 정부에 이어 오바마 정부가 빈 라덴의 시신을 보관하고 있었으며, 정치적으로 필요할 때 공개하기 위해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터진 오바마의 출생지 의혹을 무마하기 위해서, 그리고 다음 재선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서 ‘오사마 사살극’을 펼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보수 유권자 운동단체인 ‘티파티’ 역시 “오바마가 재선을 염두에 두고 이번 일을 꾸몄을 가능성이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일부 9·11 테러 유족들도 “사실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좀 이상하긴 하다”며 말을 아끼고 있다.
빈 라덴이 10년 전에 사망했다고 믿는 것은 음모론자뿐만은 아니다. 지금까지 많은 정부관리들 역시 빈 라덴이 이미 죽었을지 모른다며 의혹을 나타낸 바 있다. 전 CIA 요원이었던 로버트 베어는 지난 2008년 “당연히 빈 라덴은 죽었다”라고 말했는가 하면, FBI 대테러 국장인 데일 왓슨은 “빈 라덴은 어쩌면 벌써 죽었을 수도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또한 2007년 암살당한 베나지르 부토 전 파키스탄 총리는 생전에 빈 라덴이 동료 테러범이었던 아메드 오마르 사이드 세이크에 의해 암살당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이처럼 빈 라덴이 이미 죽었다고 믿는 사람들은 지난 10년간 미 정보국이 빈 라덴의 음성과 비디오 영상들을 주기적으로 조작해왔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2001년 12월 이후 우리가 보고 들었던 빈 라덴의 영상은 모두 가짜라는 것이다. 부시 정부가 중동 개입과 이라크 전쟁의 명분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꾸민 연극이었다는 것이다.
만일 이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빈 라덴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은 걸까. 먼저 9·11 테러 직후 미군이 실시한 아프간의 토라보라 산악지대 공중폭격 때 이미 사망했다는 주장이 있다. 당시 미군은 빈 라덴이 이곳의 동굴에 은신해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대규모 폭격을 실시한 바 있다.
이와 관련 2009년 영국의 <데일리메일>은 “미국과 영국이 대테러 전쟁을 계속하기 위해서 진실을 숨기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9·11 이후 알자지라 방송을 통해 공개된 빈 라덴의 영상이나 음성이 모두 가짜일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또 “어쩌면 미군이 빈 라덴을 생포해서 억류 중일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당시 이런 주장은 정치논평가들, 학자들, 테러전문가들 사이에서 신빙성 있게 다뤄졌다. 같은 해 전직 외국정보담당관을 지냈던 보스턴대학의 안젤로 M. 코데빌라 국제관계학 교수는 <아메리칸 스펙테이터> 주간지를 통해서 “엘비스 프레슬리가 살아있다는 증거들이 아마 빈 라덴이 살아있다는 증거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라면서 “빈 라덴의 죽음이 거의 확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비디오 속의 빈 라덴의 모습은 전혀 빈 라덴 같지 않다. 어떤 영상에서는 셈어족 말을 사용하고 있다. 또 어떤 영상에서는 매부리코였다가, 또 어떤 영상에서는 코모양이 뭉툭하고 펑퍼짐하다. 수염의 색깔이나 모양도 다르다”고 말했다.
듀크대학의 종교학과장이자 빈 라덴 전문가인 브루스 로렌스 교수 역시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알자지라 방송에 나온 빈 라덴의 말투는 엄격한 이슬람근본주의자인 빈 라덴의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예전의 빈 라덴은 말 중간에 신이나 마호메트를 많이 언급했지만 점점 더 세속적인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며 의심했다. 또한 그는 한 영상에서는 빈 라덴이 손가락에 황금색 반지를 끼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빈 라덴이 믿는 엄격한 이슬람 분파인 와하비 신도들 사이에서는 장신구 착용은 금지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분명히 수상하다고 말했다.
빈 라덴이 폭격으로 사망했다는 주장과 달리 지병으로 사망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오랫동안 앓고 있었던 신장질환으로 사망했다거나 혹은 당뇨나 폐질환, 애디슨병(부신피질기능저하증), 천식, 심지어 마르팡증후근(선천성발육이상증후군)으로 사망했다는 의혹 등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9·11 테러가 발생한 지 4개월 후인 2002년 1월 19일,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은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솔직히 내 생각에는 빈 라덴이 신장질환으로 사망한 것 같다. 비디오 속의 그의 모습은 매우 수척해 보였다”고 말한 바 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서 빈 라덴의 생사를 다룬 책 <빈 라덴: 죽었거나, 살았거나>의 저자인 데이비드 그리핀은 “빈 라덴은 2001년 12월 13일 토라보라 산악의 동굴에서 신장질환 혹은 이와 관련된 질병으로 사망했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그는 빈 라덴이 2001년 7월 두바이의 ‘아메리칸 병원’에서 방광염 및 신장질환으로 치료 받은 적이 있다는 사실과 함께 휴대형 투석장치를 아프간으로 주문한 사실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과연 빈 라덴이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이 휴대형 장치 하나만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을지 의문을 제기하면서 의학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그 정도의 상태였다면 아마 정기적인 진료를 받아야 했을 테고, 또 동굴 속의 비위생적인 상태를 감안했을 때 생존율은 극히 희박했을 것”이라고 점쳤다.
그리핀은 결국 빈 라덴이 투병 끝에 사망했고 장례식은 사망 후 24시간 이내에 치러졌으며, 와하비의 관례에 따라 비석은 세우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증거로 2001년 12월 26일 이집트 일간지 <알 와프드>에 실린 짧은 기사 내용을 예로 들었다. 고위급 탈레반 요원이 12월 13일 발표한 부고 기사가 바로 그것이다. 당시 신문에는 “심각한 합병증으로 고생하다 결국 평화롭게 잠들었다. 그는 토라보라에 묻혔으며, 장례식은 30명의 알카에다 요원들을 비롯해 가족들과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치러졌다. 와하비의 전통에 따라 비석은 세우지 않았다”고 적혀 있었다.
따라서 2001년 12월부터 알자지라 방송을 통해 공개된 빈 라덴의 비디오 영상들은 서방국가들이 지어낸 가짜라고 주장하는 그리핀은 처음 빈 라덴이 모습을 드러낸 2001년 10월 7일의 영상과 12월에 공개된 영상에서의 모습이 확연히 다르다고 주장한다.
가령 원래 빈 라덴은 체격이 큰 편인데 2001년 12월에 공개된 비디오 속의 빈 라덴은 조금 왜소해 보였으며, 검은 수염 대신 회색 수염을 하고 있었다. 또한 창백했던 피부가 거무스름하게 변해 있었다. 가늘었던 손가락이 권투선수처럼 두꺼워진 것도 의심스러웠다. 한마디로 신장질환을 앓고 있던 평소의 빈 라덴보다 상당히 건강해 보였다는 것이다. 또한 결정적인 증거로 그리핀은 빈 라덴은 왼손잡이인데 비디오 속에서는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는 모습이 보인다고 말했다. 사실 비디오 영상이나 사진을 조작하는 것은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라면 누구나 감쪽같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가령 이번에 공개됐던 빈 라덴의 끔찍한 시신 사진 역시 그랬다. 전 세계를 감쪽같이 속였던 이 사진은 곧 가짜임이 판명되면서 전 세계인들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미국 정부에게 비디오를 조작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동안 미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장난을 쳤으며, 아직도 그런 장난을 계속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번 사건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어쩌면 중요한 것은 빈 라덴이 언제 어디서 사살됐느냐 하는 사실보다 그 뒤에 숨겨진 의미나 노림수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