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례적인 배당 수익으로 세간을 놀라게 했던 화천대유에서 눈길을 모았던 것은 전·현직 법조인들로 이뤄진 초호화 고문단이었다. 화천대유는 개발 과정에서 여러 건의 송사를 겪었는데, 상대 진영은 변호사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이는 변호사들이 화천대유와 관련이 있는 거물급 고문단 때문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박영수 전 특별검사, 김수남 전 검찰총장, 권순일 전 대법관, 이경재 변호사 등이 화천대유 고문으로 재직했다. 박영수 전 특검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 수사를 진두지휘했던 인물이다. 최근엔 ‘가짜 수산업자 로비 논란’에 얽혀 한바탕 홍역을 치른 바 있다. 박 전 특검은 특검 임명 후 수사팀장으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발탁한 경력도 있다.
박 전 특검은 2015년부터 2016년 11월까지 화천대유 상임고문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계사인 박 전 특검의 딸도 화천대유에서 일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대장동 현지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박 전 특검 딸은 화천대유가 보유한 대장동 아파트 한 채를 분양받았다. 특혜 분양 의혹이 일자 박 전 특검은 입장문을 통해 “여러 차례 미계약 등에 따른 잔여 세대 아파트를 분양받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박 전 특검 해명을 두고도 논란이 일었다. 대장동 일대 아파트 분양은 로또 당첨에 비유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기 때문이다.
권순일 전 대법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명해 대법관 반열에 올랐다. 권 전 대법관은 2015년 형사사건에 대한 성공보수약정 무효 판결을 내리면서 법조계 내부로부터 적잖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당시 정치권에선 ‘법조계 카르텔’을 정면으로 견제한 대법관이란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권 전 대법관은 2020년 7월 이재명 경기도지사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린 대법관 중 한 명이다. 그랬던 그가 대장동 개발사업에 따른 막대한 이익을 챙긴 민간기업의 고문이라는 사실이 9월 16일 밝혀졌다. 이튿날 권 전 대법관은 고문직 사임을 선언했다. 9월 18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권 전 대법관은 “(화천대유가 이 지사와 관련이 있는지) 모르는 사실”이라면서 “알았다면 고문을 수락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 지사 선거법위반 판결 당시 2심 판결문에 화천대유라는 사명이 3번 명시돼 있었다는 점은 권 전 대법관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하고 있는 형국이다. 법조계에선 권 전 대법관이 화천대유와 이 지사 사이 연관성을 인지하지 못했다면, 대법관으로서 2심 판결문을 읽지 않았다는 해석밖에 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화천대유 최대주주 김만배 씨는 2019년 7월 16일부터 2020년 8월 21일까지 총 8차례 권 전 대법관을 방문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법원이 이 지사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을 접수(2019년 9월 19일)하고 무죄 취지 판결을 내리기 전(2020년 7월 16일)까지로 범위를 좁히면, 김 씨가 권 전 대법관을 방문한 횟수는 5차례다. 권 전 대법관은 대법원이 이 지사 무죄 취지 판결을 내린 지 두 달도 되지 않은 2020년 9월 8일 퇴임했다. 그 뒤 권 전 대법관은 화천대유 고문으로 취임했다.
이 지사 사건 대법원 심리 기간과 ‘김만배-권순일 만남 시기’가 몇 차례 겹친 사실에 또 다른 의혹이 증폭됐다. 김 씨가 권 전 대법관을 통해 이 지사 대법원 심리 관련 내용을 나눈 것 아니냐는 내용이다. 김 씨 측은 “권 전 대법관은 동향 지인이라 가끔 전화도 하는 사이여서 인사 차 3~4차례 방문한 적은 있다”면서 “재판 관련 언급을 한 적은 없다”고 부인했다.
강찬우 전 수원지방검찰청 검사장도 화천대유에 등장한다. 강 전 검사장은 2015년 12월 사의를 표명한 뒤 변호사로 활동했다. 이후 그는 화천대유 자문 변호사로 활동한 것으로 전해진다. 비슷한 시기 강 전 검사장은 이 지사의 선거법위반 혐의 재판에 대한 변호인단으로 활동했다.
여기에 또 다른 ‘거물급 법조인 출신 인사’가 화천대유 스캔들 중심에 섰다. 국민의힘 소속이었다가 최근 무소속이 된 곽상도 의원이다. 9월 26일 '노컷뉴스'는 곽 의원 아들이 화천대유를 퇴직하며 퇴직금 명목으로 50억 원을 수령했다고 보도했다. 이를 두고 퇴직금이 곽 의원에 대한 차명 배당금이거나 제3자를 통한 뇌물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문재인 대통령 아들 준용 씨의 저격수를 자처하던 곽 의원이 정작 자신의 아들 문제로 최대 위기를 맞게 된 셈이다.
야권 유력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대장동 특혜 개발 의혹에 휩싸였다. 화천대유 최대주주 김만배 씨 누나 김명옥 씨가 2019년 4월 윤 전 총장 부친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가 소유했던 연희동 주택을 구매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윤 전 총장을 둘러싼 ‘부동산 거래를 통한 뇌물수수설’, ‘다운계약서 작성설’ 등 여러 의혹이 불거졌다.
윤 전 총장은 9월 29일 주택 매매계약서와 더불어 통장 내역을 전격 공개하는 정공법을 선택했다. 윤 전 총장은 해당 부동산 거래가 중개인을 끼고 이뤄졌다는 증거자료를 공개하면서, 자신을 둘러싼 의혹을 일단락했다. 서초동 주변에선 20년 가까이 법조기자를 지냈던 김만배 씨가 윤 전 총장과 가깝게 지냈다는 제보들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부동산 거래가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는 윤 전 총장 측 해명이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국정농단 게이트 때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 변호를 맡았던 이경재 변호사가 화천대유 고문단에 포함된 것도 눈길을 끈다. 이 변호사는 화천대유 설립 초부터 지금까지 변호인을 맡고 있다. 그는 김만배 씨로부터 직접 고문단 제안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다양한 정치적 색깔을 가진 법조인들이 화천대유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공생한 정황들이 포착되고 있다. 한 여권 관계자는 “화천대유를 둘러싼 의혹의 주인공이 이재명 경기도지사라면, 이렇게 다양한 정치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이권을 공유하는 그림이 나올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화천대유의 운영이 이 지사와는 무관하다는 취지다. 법조인 출신 정치권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법대-사법시험-법조인 코스를 밟은 한국 사회 엘리트들의 공고한 카르텔이 화천대유 스캔들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구성된 법조계 초호화 라인업은 국민들 눈엔 곱지 않게 보일 것이다. 이번 기회에 한국 사회 정점에 있는 법조 카르텔을 바로잡고 가야 한다. 또한 이들이 이권 사업에 의기투합할 수 있게 무대를 만들어준 설계자가 누군지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법을 알아야 법집행 시스템 개선? 대선 '법대 전성시대' 이면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 처음으로 대권을 잡은 법과대학 출신 정치인이다. 문 대통령은 경희대 법대를 졸업했다. 첫 법조인 출신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지만, 노 전 대통령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사법사험을 통과해 법조계에 발을 들였다. 사실상 문 대통령이 ‘법대 출신 대통령’ 물꼬를 튼 셈이다. 포스트 문재인을 둘러싼 경쟁에서도 법대 출신 정치인을 빼놓기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먼저 재집권을 노리는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을 살펴보면 법대 출신들이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광주·전남 지역 경선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중앙대 법대를 졸업한 변호사 출신이다. ‘추격자’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언론계에 몸을 담은 뒤 정치권에 입성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법관 출신으로 한양대 법대를 졸업했다. 경선에서 중도하차한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고려대 법대 출신이다.
정권교체를 바라보는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이어진다. 1차 컷오프 이후 생존한 후보 8명 가운데 과반인 5명이 법대 출신이다. 양강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홍준표 의원은 각각 서울대 법대와 고려대 법대를 졸업했다. 둘 모두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로 임용된 뒤 스타가 됐다. 법관 출신 최재형 전 감사원장, 변호사 출신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 역시 서울대 법대 출신이다.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는 성균관대 법대 출신이다.
2022년 대선은 ‘법대 매치업’으로 펼쳐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직선제가 도입된 뒤 양자구도로 치러진 대선에서 법대 출신이 맞붙은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2002년 대선에서 법조인 출신인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대결을 펼친 바 있었지만, 앞에서 언급했듯 노 전 대통령은 법대 출신이 아니다.
정치권 복수 관계자는 ‘대법대 시대’를 열어젖힌 일대 사건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꼽는다. 한 여권 관계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는 일반 국민이 법 집행 체계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게 된 계기였다”면서 “노 전 대통령이 못다 이룬 검찰개혁 과제는 법대-사법시험으로 이어지는 법조 카르텔에 대한 도전이었다”고 했다. 그는 “역설적으로 이런 과업을 완수하려면 법을 잘 아는 사람이 리더가 될 필요성이 존재하니, 지금 같은 법대 전성시대가 열리지 않았나 한다”고 했다.
한 야권 관계자는 “진보 진영에서 주장했으며 일부 행동으로 옮긴 검찰개혁, 공수처 설치, 검·경수사권 조정은 그야말로 모든 시스템을 갈아엎는 조치”라면서 “보수 진영에선 앞서 언급한 정책들의 대항마로 잘못된 부분만 도려내는 수술식 개혁을 주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법집행 체계에 대한 급진적 개혁에 브레이크를 밟을 리더가 야권에도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야권에서도 법대 출신이나 법조인 출신 주자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대한민국 법집행 시스템 이면에 존재한 결함이 역설적으로 법대 전성시대를 열었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