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코로나19 투병 중, 아내 출산 후 신장 수술 앞둬…“가정이 최우선이지만 키움도 가족 같은 존재”
아내가 출산을 앞둔 상태에서 신장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판정을 받았고, 부모님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이다. 더욱이 미국 플로리다 자택 거실 바닥이 곰팡이로 뒤덮이는 바람에 바닥 전체를 뜯고 공사를 시작했다. 임신한 아내의 건강이 악화되는 바람에 구단의 양해 하에 미국으로 향했던 브리검은 남편이, 아빠가, 그리고 부모님한테는 아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에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급한 일부터 처리하다 어쩔 수 없이 미국에 남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야구를 하는 현장으로 돌아가는 대신 가족 옆에 남을 수밖에 없었던 제이크 브리검. 소속팀인 키움 히어로즈는 외국인 교체 카드 소멸로 현재 외국인 투수 1명이 없는 상태에서 시즌을 치르고 있다. 한국의 정서와 문화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브리검으로선 자신의 선택이 어떤 후폭풍을 일으킬지 잘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가족을 지켜야 하는 가장의 의무와 책임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현재 플로리다 집이 공사 중이라 인근의 장모 집에서 임시 거주 중인 제이크 브리검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했다.
―최근 딸 레미가 태어났는데 아내의 몸 상태는 어떤가.
“레미는 잘 자고 잘 먹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아내는 출산할 때까지만 해도 건강했는데 몇 주 후에는 신장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지금은 출산 후 회복 기간이라 이 시기가 지나면 곧 수술을 할 예정이다.”
―한순간에 많은 일이 벌어진 것 같다. 아내의 출산과 수술, 부모님의 코로나19 확진에 집수리까지.
“아버지는 아직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다. 6주 전 코로나19에 확진됐을 때 기절해 넘어지시는 바람에 내부 출혈이 생겼다. 그래서 아버지도 조만간 큰 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75세의 나이라 가족들끼리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대화를 나누는 중이다.”
―집 거실 바닥이 곰팡이가 가득해 공사를 해야 한다고 들었다.
“집에 있는데 어느 날 바닥 느낌이 이상해 들춰 보니 내가 없는 동안 물난리가 난 걸 알게 됐다. 4주 전 집을 나와야 했고, 여기 장모님 댁으로 오게 됐다. 오늘도 우리 집에 가봤는데 상황이 계속 심각해지고 있어 6~7개월 동안은 집에 가지 못할 것 같다. 아이들 학교가 여기서 20분 정도 거리라 등하교 때 데려다 주고 데리고 와야 하고, 아내도 출산 후 회복 중이라 나를 필요로 하는 손길이 많다.”
―지난 7월 아내의 건강 문제로 미국으로 올 때만 해도 이런 상황이 벌어지리라곤 예상하지 못했을 텐데.
“당연하다. 아내의 병간호와 출산을 기다리며 근처 고등학교에서 개인 훈련을 계속해왔다. 투구 연습은 물론 게임 시뮬레이션을 하며 85~90개의 공을 던졌다. 한국으로 돌아간 후 바로 등판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몸을 만들었다. 더욱이 코로나19로 내가 (한국을) 떠나기 일주일 전 KBO 리그가 중단됐고 3주간 올림픽 기간이 있어 완벽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나둘씩 일들이 생기고 커지는 걸 보며 ‘아, 이건 내가 가족들 옆에 남으라는 사인이구나’ 싶더라.”
―그런데 미국으로 간 이후 구단과 소통이 잘 안 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나왔다. 한 달째 감감무소식이란 내용도 소개됐다.
“내가 키움 선수인데 구단과 연락을 안 한다는 게 말이 되겠나. 팀은 나의 모든 상황과 관련해 정보를 받고 있었다. 내가 하는 훈련들, 불펜피칭, 시뮬레이션 게임 등등 내 컨디션과 상황들을 영상으로 담아 보냈다. (아내가) 출산하면 바로 비행기를 탈 준비가 돼 있었다. 자가격리를 면제받기 위한 절차도 밟았고, 백신도 맞고 (한국) 정부에 자가격리 면제 신청도 했다. 에이전트와 함께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마무리하고 복귀할 준비를 했는데 내 가족 문제들이 정리되지 않고 오히려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져만 갔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대신 가족들 옆에 남기로 결정하기까지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다.
“진짜 힘들었다. 키움 선수들과 감독, 코칭스태프는 나의 가족과 같은 존재들이다. 나의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에 가지 못하고, 팀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 정말 힘들었다. 2~3주 동안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으면서 살이 많이 빠졌다. 매우 어려운 결정이었다. 내가 살면서 내린 결정 중 가장 힘든 선택이었다.”
―외국인 교체 카드를 모두 사용한 터라 당신이 합류하지 못할 경우 키움은 외국인 선수 1명 없이 시즌을 치른다는 걸 알고 있었나.
“알고 있었고 그로 인해 더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들이다. 야구도 중요하지만 가족들한테 당신의 존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했을 테니 말이다.
“정말 그렇다. 내가 만약 이런 상황에서 가족들을 두고 한국으로 돌아갔다면 내가 받는 돈의 가치만큼 실력 발휘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집안의 모든 일들과 아내, 그리고 4명의 아이들이 겪고 있는 힘든 일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가족들이 보고 싶고 그리워서 미국으로 온 게 아니다. 가족들의 건강, 여러 문제들 때문에 내린 결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들을 두고 한국으로 돌아갔다면 키움이 원하는 제이크 브리검의 모습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만큼의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다.”
―얼마 전 당신의 SNS에 한글로 팬들에게 전하는 글을 읽었다. 많은 팬들이 그 글을 읽고 당신의 결정을 이해하고 응원을 보내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팀에서 주기적으로 내 상황을 업데이트해주길 바랐지만 구단에선 그러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들의 말을 존중했다. 아무튼 글을 올린 후 반응이 매우 좋았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격려해주고 이해해줬다. 지금까지도 많은 응원을 보내주고 있다.”
―아직 시즌이 끝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야구장이 아닌 집에 있다는 게 어색하지 않나.
“뭔가 세상과 동 떨어진 느낌이다. 가족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을 돕는 게 최우선이고 행복을 느끼지만 아침에 포털사이트를 통해 KBO 리그 하이라이트 경기를 보면서 동료들 틈에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매우 어색하다.”
―지난 시즌을 마치고 키움과 재계약이 불발되는 바람에 올 시즌 대만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 대체 선수로 키움에 복귀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궁금하다.
“키움과 재계약이 안됐을 때는 솔직히 절망스러웠다. 나로선 당연히 재계약이 성사되리라고 믿었다. 그런데 재계약이 안됐다는 소식을 팀으로부터 직접 듣지 못하고 SNS를 통해 알게 됐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SNS에 수천 개의 메시지가 와 있더라. 나와 아내는 그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구단의 그 누구도 내게 재계약하지 않을 거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결국 대만에서 시즌을 맞이했고, 그곳에서 나름 좋은 경험을 하며 즐겁게 보내다 키움에서 연락을 받았다. 처음 키움의 연락을 받았을 때는 장난인 줄 알았다. 키움 측에서 내게 연락을 하리라곤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게 잘 풀렸고 자연스러웠다. 마치 스프링캠프에 조금 늦게 도착한 것 같은 느낌으로 팀에 합류했다. 절친 요키시를 다시 만났고, 키움에 있는 모든 동료들과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했다.”
제이크 브리검은 지금도 한국의 종교단체와 보육원 등에 꾸준히 기부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생활할 때는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야구 경기를 볼 수 있게끔 티켓을 보내주기도 했다. 한때 아내와 한국 아이를 입양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고 말할 정도로 그의 한국 사랑은 대단할 정도다.
어려움에 처한 가족들을 돌봐야 하는 처지에서 구단과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야구 커리어를 지속시키지 못한 부분들이 제이크 브리검한테는 또 다른 아픔으로 남았다. 이 모든 일들이 잘 정리가 된 후 내년에는 필드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야구를 하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 이뤄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미국 플로리다=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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