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문답식 몰아붙이면 ‘윤’ 짧은 응수로 확전 막아…토론회 우위가 지지율로 직결될지는 의문부호
#"홍준표 생각보다 공격력 무뎌" 평가도
홍준표 의원은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TV토론회에서 예상했던 대로 인파이터 전략을 쓰고 있다. 현실 정치는 물론, 정책 경험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윤석열 전 총장의 ‘무지’를 드러내는 방안을 집중 공략하는 중이다. 교사가 자신이 가르친 내용을 쪽지시험 보듯 학생에게 집중 질문하는 식으로 거칠게 몰아붙이는 행태를 보였다.
9월 26일 열린 세 번째 TV토론에서 홍 의원이 윤 전 총장에게 “(전시 대북 군사작전인) 작계 5015가 발동되면 대통령으로서 뭘 해야 하나”라며 질문·대답 구도를 만들어냈다. 윤 전 총장이 즉답을 못하고 “글쎄요, 한번 설명해주시죠”라고 얼버무리자, 홍 의원은 검사가 피의자를 신문하듯 “작계 5015 안다고 했지 않나”라고 추궁했다. 윤 전 총장이 “남침이라든가 비상시에 발동되는 것 아닌가”라고 하자, 홍 의원은 윤 전 총장의 이해 부족이 잘 드러났다는 듯 “그게 아니고 작계 5015는 전시 상황에서 한미연합사령부의 대북 계획”이라고 훈계하는 투로 맞받았다.
이어 홍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 종전선언 제안에 대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담화를 윤 전 총장이 “언제 했나”라고 반응하자 “모르면 넘어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 되시려면 공부를 조금 더 해야겠다”고 비꼬기도 했다.
이렇게 공세가 거세지자 윤 전 총장은 홍 의원과 맞불 작전을 통해 정면으로 대적하기보다, 홍 의원이 치면 일단 빠진 뒤 틈새를 노리는 식의 아웃복싱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지난 9월 28일 열린 네 번째 TV토론에서 인파이터와 아웃복싱 전략이 맞붙었다. 홍 의원이 “남북 전력지수라는 것을 아느냐”고 선생님처럼 질문을 던지자 윤 전 총장은 “잘 안다”는 말 대신에 “말씀 좀 해달라”고 응수했다.
홍 의원이 윤 전 총장 대북정책을 두고 “우리 당의 성격과 전혀 달라 ‘문석열’이라는 말이 떠돈다”고 하자, 윤 전 총장은 적극적으로 반박하기보다는 “홍 의원이 만든 것 아닌가”라는 짧은 응수만 하면서 확전보다는 상황 종료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홍 의원이 “대장동 사건 악취가 처음부터 심했는데, 검찰총장 할 때 전혀 몰랐나”며 “몰랐으면 무능한 것”이라고 지적하자, 윤 전 총장은 “몰랐다”며 “무능해서 죄송하다”고 했다. 적극적으로 받아치지 않는 윤 전 총장의 아웃복싱 전략이 드러난 장면이었다.
윤 전 총장을 향한 홍 의원의 날선 공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정치권에서는 예상만큼의 공격력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격력이 기대치보다 무뎌서 윤 전 총장이 아웃복싱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홍 의원 공격력 수위가 떨어져 보이는 것은 9월 16일 첫 TV토론에서 일격을 맞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다. 홍 의원은 당시 윤 전 총장을 공격하면서 “조국 일가 수사는 과잉수사”라고 했다가, 국민의힘 지지층으로부터 격렬한 비난을 받았고 ‘조국수홍’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윤 전 총장을 겨냥해 꺼낸 발언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지지층으로부터 꾸중을 듣게 된 모양새였다.
저돌적 인파이터로서 직진 전술만 구사해온 홍 의원은 조국수홍 후폭풍을 가라앉히기 위해 자신의 발언을 바꾸는 후진 전술을 펴야 했다. 그는 이틀 뒤인 9월 18일 자신의 SNS에 “국민이 아니라고 하면 제 생각을 바꾸겠다. 조국 수사에 대한 제 평소 생각을 고집하지 않고 바꾸겠다. 그게 민주주의이고 집단지성”이라고 밝혔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홍 후보는 아는 것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이슈에 대해서도 강하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첫 토론회에서 한번 제약이 이뤄진 때문인지 공격력이 기대치보다 약한 것은 사실이다. 윤 후보가 홍 후보의 펀치를 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이유”라고 진단했다.
#방송토론회의 정치학
대선에서 TV토론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때문에 TV토론에서 큰 낭패를 보는 후보도 나왔다. 2017년 19대 대선에 출마했던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후보가 대표적 사례다.
2017년 4월 23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최로 열린 TV합동토론회에서 안 후보는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항해 “제가 갑철수입니까. MB 아바타입니까”라고 물었다. 뜬금없는 질문에 문 후보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무슨 말이냐”고 세 차례나 되물었다. 안 후보는 화가 단단히 난듯 “제가 갑철수냐, 안철수냐”는 질문을 거듭 반복했다. ‘갑철수’는 천안함 유가족이 대전 현충원에서 참배하고 있었는데 VIP가 오니 나가라고 했다는 사건, 그리고 안 후보 부인이 보좌관에게 사적인 일을 시켰다는 사건 등 여러 ‘갑질’ 논란에 휘말리며 안 후보에게 붙여진 별명이었다.
안 후보는 자신에게 나쁜 프레임을 씌우는 민주당 지지층을 비판하기 위해 이 말을 꺼냈지만, 공격 효과는커녕 ‘갑철수’라는 단어를 유권자들의 뇌리에 심는 악수를 둬버렸다. ‘갑철수’ 별명을 모르는 유권자들도 많았지만 안 후보가 이를 직접 거론하며 ‘갑철수’는 물론 ‘MB 아바타’ 별명까지 덩달아 화제가 됐다. ‘갑질’ 등 나쁜 이미지가 안 후보의 이미지를 덮어버린 것이다. 안 후보는 TV토론회에서 결정타를 맞았고 대선 3위 후보에 만족해야 했다.
안철수 후보 사례가 있지만, 정치권은 물론 많은 정치학자들은 TV토론회 중요성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토론에서 실수를 하면 큰 실점을 하긴 하지만, 말을 잘하고 상대방에 대해 날카로운 공격력을 보이는 ‘공격형 토론회 스타’의 지지율이 올라가는 ‘직결 효과’가 반드시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9대 대선 TV토론에서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후보로부터 드센 공격을 받았다. 같은 수위의 공세로 맞대응하지 않아 ‘답답하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문 대통령은 절제된 태도를 고수하는 전략을 택했다.
2017년 4월 25일 TV토론이 대표적이다. 홍 후보는 작심한 듯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뇌물수수 여부를 꺼내며 문 대통령을 강하게 몰아세웠다. 홍 후보는 “수사기록을 보면 당시 중수부장의 말은 노 전 대통령이 박연차 회장에게 직접 전화해 돈을 요구했다고 돼있다”고 따졌다. 문 후보는 이 말에 자초지종을 다시 설명하는 게 아니라 “이보세요”라는 한마디를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제가 조사 때 입회한 변호사입니다”라고 발언, 말의 난사로 대응하기보다 짧은 말과 단호하고 엄숙한 표정으로 맞받는 전략을 폈다.
홍 후보가 “말을 왜 그렇게 버릇없이 하느냐. 이보세요라니”라며 발끈했지만 토론 사회자가 주제를 돌려 두 후보 간 논쟁은 일단락됐다. 토론회 이후 적잖은 네티즌들은 두 후보의 나이를 적시하면서, 문 후보(1953년생)보다 한 살 어린 홍 후보(1954년생)가 오히려 더 버릇이 없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TV토론과 관련해 2012년 박근혜 대선 캠프에 있었던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의 설명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토론회에 나가면 답답하고 상대에 밀린다는 평가가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기억하지만 이정희 당시 통합진보당 후보는 박 전 대통령을 매섭게 몰아붙였고, 그때 박 전 대통령은 안쓰럽다는 말이 나올 만큼 제대로 반박도 못했다. 하지만 TV토론회에서 유권자들은 언변도 보지만 태도와 이미지를 많이 본다. 다소 어눌해도 표를 더 받을 수 있고 따발총처럼 말을 쏘아대는 후보가 반드시 최종 승자가 되지는 않는다.”
#굳히기냐, 뒤집기냐
윤석열 캠프는 여러 여론조사에서 윤 전 총장이 여전히 보수야권 후보 지지율 1위를 지키고 있다고 분석하면서 TV토론이 ‘윤석열 대세론’을 강화시키는 ‘재확인 효과’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유권자들은 이미 마음을 정해놨고 TV토론회는 자신들의 선택을 정당화하고 재확인하는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윤 전 총장 측은 19대 대선 승자인 문재인 대통령이나, 18대 대선 승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TV토론회에서 달변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유권자들의 선택은 대세론으로 기울었다는 과거 사례를 내세운다.
윤 전 총장 캠프에 있는 한 국민의힘 전직 의원은 “지난 19대 대선만 봐도 TV토론에서 가장 각광받았던 사람은 유승민 당시 바른정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였다. 말도 잘하고, 논리도 좋고 등등 찬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두 후보는 두 자릿수 득표율도 올리지 못했다. TV토론은 현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대세 강화 효과, 즉 현재의 경로를 더욱 굳건히 하는 작용을 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홍 의원 측은 TV토론이 거듭될수록 판이 바뀔 것이라고 확신했다. 현재의 8인 다수 토론 체제가 4인 소수 토론 체제로 좁혀지면 밀도 있는 토론이 되고, 시원한 ‘홍카콜라’의 진면목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실제 국민의힘은 2차 컷오프(예비경선) 후 지역순회 토론회는 매주 월·수요일, 일대일 맞수토론은 매주 금요일 열기로 하는 등 토론회를 과거 대선 경선 때보다 크게 늘렸다. 모두 3차례 열리는 맞수토론은 4명의 후보가 각각 나머지 후보들과 한 번씩 맞붙게 되는 형식이다.
홍 의원 측 한 관계자는 “맞수토론이 열리면 윤 후보의 아웃복싱은 불가능하게 된다. 맞수토론이 벌어지면 TV토론의 가장 큰 장점인 설득효과의 실현이 가능하게 돼 ‘무야홍’(무조건 야당 후보는 홍준표)이 현실화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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