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주년 국군의 날. 창군 직후부터 전쟁을 겪고 지금까지 이어진 분단 상황 속 나라를 지켜낸 국군의 군사력은 2021년 현재 여러 매체에서 세계 6위에 이른다고 한다.
그 동안 6.25전쟁과 베트남전쟁 등을 겪으며 수십만의 전사자가 발생했다. 반면 전투 중이 아니어도 목숨을 잃은 군인들은 약 7만 5000명에 달한다. 그중에서도 업무상 관련성이 없었다며 순직 처리가 되지 못한 군인은 절반이 넘는다.
전시와 평시를 막론하고 수많은 군인들이 국가로부터 버려졌다. 베트남전쟁에 파병되었다가 포로로 잡혀 북한으로 끌려갔지만 자진 월북이라고 매도당하거나 6.25전쟁 당시 중상을 입고 사망하였음에도 전역을 한 뒤라는 이유로 전사 판정을 받지 못한 군인들, 그리고 선임들의 구타와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장병들.
잇따른 군 내 인권 침해 소식이 들리고 이를 토대로 만들어진 드라마가 화제를 모으고 있는 가운데 국군의 날을 맞이하여 '시사직격'이 버려진 군인들의 이야기를 살펴봤다.
최근 군무이탈자와 군탈체포조를 다룬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속에 등장하는 신체와 언어를 가리지 않은 폭력과 가혹행위. '시사직격'이 목도한 현실또한 드라마 못지 않았다.
규정에 어긋난 얼차려를 받고 부상을 입었으나 이를 구실로 더욱 혹독한 구타와 가혹행위를 겪다가 신병위로휴가 마지막날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고(故) 노광욱 이병, 선임이 장난삼아 안전핀을 빼고 건낸 수류탄을 떨어뜨려 목숨을 잃은 고(故) 정현진 일병.
시기는 달랐지만 군에서는 '허약 체질을 비관'하거나 '호기심'에 수류탄을 만졌다는 등의 사망 사유가 조사보고서에 기록되었다. 죽음의 책임이 모두 자신들에게 있다는 것. 더욱 안타까운 것은 유가족들이 가족을 잃고도 피해를 인정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지금도 끝없이 명예를 훼손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고(故) 노광욱 이병의 어머니 임금재 씨는 "장례를 치르고 부대를 찾아갔어요 소지품 같은 것을 가지러 가려고. 그랬는데도 (부대의 군인들이) 아무런 말을 안 하더라고요. '우리 광욱이 군대 생활이 어땠냐?'고 물어봐도 아무런 말을 안 해요. 자기가 아들이 되어주겠다고 그런 소리만 해. 선임병인지 누군지 자기가 아들이 되어드리겠다고"라고 말했다.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비상임위원 이호 교수는 "(피해자들의 심정은) 무력감과 막막함이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나를 지켜주고 보호해줘야 할 군대와 국가로부터 도망쳐야 하고 국가로부터 도망쳐봐야 어디로 갈 수 있겠어요. 가족에게도 못 돌아가는 시스템이거든요. 그 마지막 순간의 처절함, 외로움과 또 국가에 대한 배신감이 얼마나 컸을까. 입대 전에 군대의 적격 여부를 판단하지 않습니까. 적격 판정을 받은 병사라면 국가는 책임지고 (가족에게) 돌려보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월남전에서 한국군 포로는 단 1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1973년 3월 베트남전쟁 종전 이후 귀국한 이세호 주월한국군사령관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이다. 3년간 진행된 6.25전쟁의 국군포로와 실종자만 3만 명이 넘는다. 반면 1964년부터 약 10년 동안 전쟁을 하면서 한 명의 포로도 잡히지 않았다고 했던 군의 주장은 며칠 뒤 거짓으로 판명난다.
안케페스 전투 당시 포로로 잡혀 1년간 억류된 유종철 일병이 송환된 것이다. 지금까지 베트남 전쟁 때 포로가 되거나 실종된 한국인은 2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후 가족들이 그들의 존재를 알리고 국가에 진실 규명을 요청했지만 외면당한 경우도 있었다. 안용수 목사는 형님 고(故) 안학수 하사가 납북되었으며 심지어 탈출하려다 총살당했다는 사실까지 파악했음에도 유가족들을 해고, 고문, 감시 등 수십년간 탄압한 국가와 군을 상대로 자료를 모으며 싸워왔다. 실제 국군포로와 유가족, 그리고 연구자들을 통해 포로가 없다는 베트남전쟁의 신화 그 이면을 직격한다.
고(故) 안학수 하사의 동생 안용수 목사는 "연좌제를 적용해서 우리 가족을 잠재적 간첩이라며 관리하기 시작하고 그러다 나중에 우리 가족이 결국 못 견뎌서 교장 관사도 비우고 포항 산 중턱에 달동네가 있었어요. 오갈 데가 없으니까 그쪽으로 가서 지내게 됐죠"라고 말했다.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박태균 원장은 "나중에 파리평화협정 맺을 때도 미국 측에서 한국 정부 측에 문의했죠. '포로교환을 할 텐데 한국 측의 포로가 있느냐' 그런데 '없다'(고 했어요). 전쟁하는데 포로가 없는 전쟁이 어디 있어요. 이 얘기를 하면서도 (왜 그랬는지) 추측을 하기 어려운, 그 정도로 한국 정부가 이해 안되는 일을 한 거죠"라고 말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기 위해 1500여년 전 창건되었고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된 유서 깊은 사찰 통도사. 그런데 통도사의 법당 안과 밖에는 다양한 낙서가 그려져있다. 탱크와 배를 표현한 듯한 그림과 '떠나간다'는 낙서. 얼핏 보면 어린 아이들의 작품 같지만 그 주인공은 바로 6.25전쟁의 부상병들이었다.
전쟁 당시 중상자들을 치료하는 임시 육군병원으로 사용된 통도사. 전선의 후방인 그곳에서도 군인들의 시련은 계속되었다. 통도사에서 치료를 받다가 세상을 떠났지만 사망 시점이 전역 이후라는 이유로 전사자 판정을 받지 못한 고(故) 박규원 소위. 그의 명예가회복된 시점은 전쟁 발발 70년이 지난 작년이었다.
심지어 비슷한 시기 사망 직후 군으로부터 사인이 병사라고 들었지만 올해 국민권익위원회를 통해 전사했다는 진실을 들은 고(故) 현종석 이등중사의 유가족도 있다. 전쟁 중, 혹은 그 직후의 정신 없는 상황이라 제대로 처리가 되지 않은 것일까. 육군은 1995년부터 1997년까지 1만여명의 병·변사자를 전사·순직자로 변경했다. 그러나 25년이 지난 지금도 유가족에게 통보되지 않은 사례는 2000여건에 달한다고 한다.
창군 70여 년 만에 군사 강국으로 거듭난 대한민국의 이면, 버려진 군인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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