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 발전기’ 추성훈 원전 사태 후 야간 벚꽃놀이가 줄줄이 취소되자 추성훈이 4월 초 도쿄 벚꽃 명소에서 자전거 자가발전을 통해 야간 조명을 켜는 행사를 해 화제가 됐다. 사진출처=시부야 경제신문 |
원전 사태 후 정치가에 대한 평가는 그다지 좋지 못한 편이다. 대표적인 사람은 간 나오토 총리. 사태 수습과정에서 보여준 리더십 부재에 더해 최근 재해지역 복구 재원을 세금 인상으로 충당하겠단 계획을 검토 중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기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2012년부터 한시적으로 모든 상품 가격에 붙는 소비세를 현행 5%에서 8%로 인상하려는 방안에 대해 “서민경제에는 부담이 될 것”이라는 비판이 쇄도하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에다노 유키오 관방장관은 마니아가 생길 정도로 인기다. 변호사 출신인 에다노 관방장관은 지진과 원전 사고 후 세 시간마다 기자회견을 했다. 피곤에 지쳐 까칠해진 피부로 카메라 앞에 섰음에도 불구하고 분명하며 조리 있게 말을 해 믿음직한 인상을 줬다는 평이다. “(에다노 장관의 귀는) 귓불이 두꺼워 복을 부른다. 일본을 구할 것”이라는 열성팬까지 나타났다. 그러자 한 정치평론가는 “말하는 내용이 어떻든지 간에 언론에 노출되는 양이 많으면 얼굴이 알려져 자연히 (정치가에 대한) 평가가 좋아지게 마련”이라고 분석했다.
일본 지진 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사흘간 열린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회의에 참가한 기쿠타 마키코 의원은 회의가 끝나면 연일 마사지 가게에 들렀다가 쇼핑몰로 직행했다. <일간 겐다이>는 “마키코 의원은 돼지기름을 안 넣은 이슬람권 특유의 콜라겐 화장품에 유독 관심을 보이며 쇼핑가를 전전했다”고 보도했다. 이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일본에 돌아오지 말라”며 크게 반발했다. 그런가 하면 민주당의 얼짱 미야케 유키코 의원은 지진 이후 며칠이 지나지 않아 뜬금없이 블로그에 “밤에는 집에서 아로마 향초를 피우며 촛불 아래서 열심히 영어를 공부한다”고 글을 올렸다. 이에 “국난에 정치가가 너무 여유롭다”고 빈축을 샀다.
이처럼 정치가들이 크게 평판을 잃은 반면, 대체로 기업인은 발 빠른 성금, 기부 등으로 화제에 오르고 있다. 특히 재일교포 3세 손정의(일본이름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사장은 지진 직후부터 1주일간 문자 메시지 무료 서비스를 했다. 더구나 100억 엔(약 1320억 원)을 재해성금으로 쾌척해 최고액수 성금을 내놓은 ‘통 큰 기부자’로 떠올랐다. 뿐만 아니라 피난소 이재민들에게 자사의 휴대폰을 무료로 대여하고, 지진으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아이들에게 18세가 될 때까지 무상으로 휴대폰을 제공하겠다고 밝혀 호감도 1위로 등극했다. 덕분에 손사장이 추진하는 태양광·풍력·지열 발전 등 자연에너지 연구기관인 ‘자연에너지 재단’ 설립에 일반인의 관심이 크게 늘었다.
지진 발생 후 2주일간 혼자서 트럭에 생필품을 실어 날랐던 한 물류 업체 사장도 화제다. 그는 적금 400만 엔(약 5280만 원)을 깨서 휴대용 발전기, 물, 생리대, 우유병, 분유 등을 산 뒤 회사에 있는 2톤 트럭에 가득 넣고 18시간을 운전해 피해지역에 갔다. 생필품 공급이 비교적 안정되자, 요즘은 피폭 불안에 떨고 있는 주민에게 마스크 100만 장을 배달하고 있다.
그러나 파렴치하고 얄팍한 상술로 미움을 사는 업체도 있다. 전자상가 밀집지역 아키하바라의 한 가전 잡화점 사장은 지진 후 “이런 때 물건 값을 안올리면 바보”란 말을 트위터에 올려 공분을 샀다. 또 한 남성용 자위기구 컵 제조업체는 지진 당일, 자사에서 만든 자위기구 컵을 ‘지혈에 사용할 수 있으니 긴급할 때 쓰라’는 트위터 메시지를 내보냈다가 “지금 제품 선전할 때냐”고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지진으로 혼란을 겪던 3월 11일 도쿄의 고급 유흥가에서 흥청망청 논 뒤 거짓말을 해 퇴출 위기에 몰린 연예인도 있다. 재치 있는 말솜씨와 서글서글한 인상으로 최장수 뉴스 정보 프로그램 사회자로 사랑받아온 미노 몬타. 지진 발생 사흘 뒤 한 방송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잠도 못자고 쉬지도 못하며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가 한 주간지의 취재로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게다가 한 회당 출연료가 무려 200만 엔(약 2600만 원)인데도 성금 한 푼 내지 않아 대중의 시선이 곱지 않다.
일본 최고의 아이돌 출신 스타 기무라 다쿠야의 부인이자 가수인 구도 시즈카는 어이없는 기부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최근 화가로 데뷔하며 개인전을 연 그녀는 자기가 그린 부처 그림을 해설하며 “내가 봐도 (그림을 보면) 마음이 안정된다. 재해민들에게 힘이 됐으면 좋겠다”며 그림을 기부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제아무리 부처님을 잘 그렸더라도 그렇지 않아도 정신이 없는 재해지역에서 누가 1㎡가 넘는 큰 사이즈 그림을 걸어두겠느냐”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재일교포 4세 격투기 선수 추성훈은 4월 초 도쿄에서 열린 벚꽃놀이에서 자전거로 자가발전을 해서 벚꽃에 야간 조명을 켜는 행사를 벌여 화제가 됐다. 이 행사는 원전 사태 후 야간 조명이 전기를 많이 쓴다며 벚꽃놀이가 줄줄이 취소되자 추 선수가 친한 유도선수 여러 명과 함께 일주일간 기획한 것이다. 추 선수는 근육질의 굵은 다리로 자전거 페달을 장장 4시간이나 힘껏 밟아 300kW의 전기를 만들었다. 그는 “오늘 밤에 본 벚꽃을 오래오래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모여든 꽃구경 인파가 “인간 발전기”라 감탄하며 밤하늘에 벚꽃이 흩날리는 풍경을 실컷 즐겼다는 후문이다.
그라비아계의 샛별 다다 아사미가 이재민을 돕기 위해 내놓은 아이디어도 화제다. 원전 사태 후 후쿠오카 지역 피난민들에게 1000엔짜리 지폐로 학을 접어 보내자는 운동을 시작해 큰 화제가 됐다. 지진 발생 초기 피해 지역에 색종이 등으로 접은 1000마리 학을 보내자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그녀가 자신의 블로그에 “피해 주민들에게는 지금 돈이 가장 필요하지 않겠느냐”며 “돈으로 학을 접어 보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은 것. 게다가 “마침 예전에 발행된 1000엔(약 11만 8000원)짜리 지폐 뒷면에 학이 그려져 있어 좋을 것”이란 그녀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널리 회자되며 블로그 방문자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 아이디어를 따라 한 편의점에서는 ‘1000마리 학 보내기’ 성금 운동도 벌이고 있다. 예를 들어 성금을 내고자 하는 이가 편의점에서 돈을 내면 영수증을 주고, 기부액만큼 학을 접어 피해지역에 보내준다고 한다. 심지어 5000엔(약 6만 6000원)짜리 지폐 뒷면에 그려진 제비붓꽃의 꽃말이 ‘행운’이란 점을 들어 5000엔짜리 지폐로 학을 접어 보내는 이도 생겼다고 한다. 운동이 화제가 되면서 다다 아사미가 출연한 DVD 사진집도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
조승미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