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크 ‘몰누피라비르’ 임상3상 결과에 제약업체 주가 하락…“치료제·백신 개발 지속돼야” 임상 지원 목소리 커져
#먹는 치료제 등장에 주가 '들썩'
미국 제약사 머크는 경구용 치료제 ‘몰누피라비르’의 감염 5일 이내의 경증 코로나19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3상을 진행한 결과, 입원 가능성을 50%가량 낮췄다고 최근 밝혔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긴급사용 승인을 신청하고, 다른 국가에서도 신청을 서두르겠다는 방침이다. 몰누피라비르는 FDA의 허가를 받으면 첫 코로나19 알약 치료제가 된다. 발표 당일인 지난 10월 1일부터 머크의 주가는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경구용 치료제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편의성과 안전성 때문이다. 주사제와 달리 경구용 치료제는 병원을 거치지 않고 집에 두면서 복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재택 치료와 초기 치료가 가능해진다. ‘타미플루’의 등장으로 신종플루가 관리 가능한 질병이 된 것처럼, 머크의 치료제도 코로나19의 판도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국내 코로나19 관련 제약·바이오업체들에 대한 기대감은 가라앉는 분위기다. 머크의 발표 당일 GC녹십자와 대웅제약, 신풍제약, 진원생명과학 등 치료제 개발사는 물론 SK바이오사이언스 등 백신 개발사까지 주가가 하락했다. 국내 첫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사 셀트리온 역시 항체치료제에 대한 수요 감소 우려로 시가총액이 크게 줄었다.
국내 제2호 치료제의 탄생은 아직 요원하다. 지난 9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정식 허가를 받은 셀트리온의 ‘렉키로나’ 이후 좀처럼 등장하지 않고 있다. 식약처에 따르면 국내에서 코로나19 치료제로 임상시험계획을 승인받은 제품은 총 22개(20개 성분)이고, 이 중 임상시험 진행 중인 제품은 14개(13개 성분)다. 주사용 치료제를 개발하는 종근당과 경구용 치료제를 개발하는 신풍제약·대웅제약 3곳이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종근당·신풍제약은 임상 3상을 최근 시작했고, 대웅제약은 아직 임상 2단계 결과를 분석 중이라 상용화 시점을 현재로서는 쉽게 예측할 수 어렵다. 이 밖에 진원생명과학·녹십자웰빙·이뮨메드·동화약품 등은 아직 임상 2상 단계다. 이런 가운데 일양약품, GC녹십자, 부광약품 등 치료제 개발을 중단하는 기업들도 생겨났다. 임상단계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내지 못했다는 이유다.
글로벌 제약사가 한 발 먼저 제품을 내놓고 시장을 장악할 경우, 국내 업체가 치료제와 백신을 내놓더라도 설 자리가 없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키움증권은 이런 이유로 코로나 관련 종목에서 비코로나 종목 위주로 접근하는 것이 유효하다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허혜민 키움증권 연구원은 “경구용 치료제 옵션으로 백신 접종을 꺼려하는 인구에도 대안이 생기게 됐다”며 “개발도상국에서 백신 조달이 원활하지 않다면 경구용 치료제 확보에 나설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머크는 경구 투여를 작년 10월 시작해 임상에 10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소요했다. 점점 더 후발 주자들의 시장 침투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전문가들과 제약·바이오업계는 후발 치료제와 백신 개발은 필수라고 강조한다. 코로나19 사태는 여전히 국가 차원에서 치료제와 백신을 구매해 국민들에게 무료로 제공해야 할 만큼 위중한 상황이다. 델타 변이의 등장으로 접종 완료 후에도 확진되는 ‘돌파 감염’ 사례도 늘고 있다. 앞으로 또 어떤 변이 바이러스가 등장할지 모르기 때문에, 머크의 경구용 치료제에 의존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와 관련 업계 주장이다.
머크의 경구용 치료제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임상 대상군이 전체 환자가 아닌 고위험군에 한정되기 때문에, 긴급사용 승인을 받더라도 주로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머크 치료제의 임상 3상에는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60세 이상 심장병, 고혈압, 비만, 당뇨 등 감염 위험이 높은 환자 775명이 참여했다. 가격도 1인당 700달러(약 80만 원)라 범용으로 쓰이기도 어렵다.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장은 문제가 발견되지 않아도, 앞으로 수많은 환자들을 대상으로 널리 사용되면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 모른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도 임상단계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전 세계에 사용되면서 혈전 증상이 발견됐다.
여재천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사무국장은 “변이 바이러스로 인해 무효화할 수 있기 때문에 치료제와 백신 개발은 반드시 지속돼야 한다”며 “특히 병원을 거치지 않고 편리하게 복용하고, 빨리 고칠 수 있는 경증 치료제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치료제든 백신이든 신약이 나오더라도, 개량신약이나 후발신약이 신약을 대체할 수 있다. 약효나 복용의 편리성,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더 좋다면 시장은 바뀌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개발 속도, 왜 느릴까
전문가들은 국내 코로나19 치료제 및 백신 개발이 해외보다 느리다는 지적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그 이유 중 하나로 임상시험 속도가 느리다는 점이 꼽힌다.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코로나 환자가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임상 대상 환자를 모집하는 데 상대적으로 어려움이 덜하다. 우리나라는 환자 발생 규모 자체가 상대적으로 적고,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면서 임상 치료제를 투약할 수 있는 환자수도 적다. 해외에서 임상시험을 하는 업체들이 많은 이유다.
국내에서도 임상시험이 쉽게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가 재정 지원과 정책 마련에 힘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방법 중 하나로 비대면 임상시험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간 증상 정도와 관계없이 감염 시 무조건 병원에 격리했기 때문에 경증 위주로 임상시험을 하려고 할 때 환자를 구분할 수 없어 모집이 어려웠다. 경증 환자를 대상으로 재택 치료를 확대하고 비대면 임상시험이 가능하도록 체계를 마련해달라는 것. 미국은 비대면 임상시험용 가이드라인을 마련했고, 확진자에 노출되거나 경증 환자들을 대상으로 모집부터 참여 동의, 의약품 배송 및 상태 보고까지 비대면 임상시험을 진행한 사례가 있다.
앞서의 여재천 사무국장은 “경증 환자 위주로 의사를 거치지 않더라도 원격으로 자가 진단하고 임상시험을 받을 수 있도록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정부는 생활치료센터에 격리된 코로나19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허가하고 있지만, 방역복을 입은 임상시험 관련자가 자택을 방문해 참가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어 현실적이지 못하다”며 “전자적인 참가 동의 방법을 허용해 임상시험이 신속하고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감염병 이슈가 터졌을 때 급하게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첨단 기술을 예측하고 꾸준히 연구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우주 고려대 감염내과 교수는 “화이자나 모더나가 백신을 개발할 수 있었던 이유는 수십 년 전부터 mRNA를 연구해왔기 때문”이라며 “우리나라 기업들이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결과가 안 나온다고 단기간에 접는 것이 아니라 장기 차원에서 일관성을 갖고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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