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민이 지난해의 마음고생을 딛고 KIA 에이스로 우뚝 설 채비를 마쳤다.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 |
LG전에 마무리로, 왜?
윤석민은 지난 23일 LG와의 잠실 경기에서 8회말 소방수로 등판해 2이닝을 2피안타 무실점으로 막고 팀 승리를 도왔다. 당시 조범현 감독은 선발투수의 불펜 기용에 대해 “본인이 자청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속사정이 궁금했다.
“경기를 지켜보니까 투수들이 계속 교체되고 있는데 나중에 보니까 더 이상 던질 선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이강철 코치님께 오늘 몸이 괜찮으니까 던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런데 막상 그렇게 말해 놓고 은근히 걱정이 되더라고요. 괜히 나가서 망가지면 저나 팀한테나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텐데 하는 생각 때문이었죠. 다행히 결과가 좋았고 그로 인해 팀 분위기도 많이 살아난 것 같아요.”
첫 승에 얽힌 사연
사연 많은 첫 승에 대한 얘기에 대해 질문했다. 선발 네 번째 등판 만에 1승을 올린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공은 괜찮았어요. 그런데 야구를 너무 쉽게 생각하지 않았나 싶어요. 승부를 빨리 빨리 내려다보니 공이 거의 가운데로 몰렸고 결국 안타도, 점수도 많이 허용했죠. 두산전에서 8실점을 했을 때는 진짜 허무하더라고요. 컨디션도 안 좋았고, 제구력도 엉망이었고…. 두들겨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러다 삼성전에서 첫 승을 챙기니까 속이 후련해지더라고요. 그날은 경기 끝나고 밥도 안 먹었어요. 너무 기분이 좋아서요.”
류현진, 김광현과 동반 부진
지금은 김광현도 KIA를 상대로 첫 승을 챙겼지만 윤석민이 첫 승을 거두기 전까지만 해도 국가대표 좌완 듀오와 우완 투수 모두 부진한 상태였다. 언론에서도 류현진 김광현 윤석민이 모두 시즌 초반 동반 부진한 데 대해 관심을 쏟으며 누가 먼저 첫 승을 따내느냐 하는 부분에 초점을 모았다. 공교롭게도 지난 20일 모두 선발 등판했던 세 선수 중 류현진과 윤석민이 먼저 웃음을 되찾을 수 있었다.
“전 두 선수와 함께 이름이 오르내리는 데 대해 많이 힘들었어요. 저보다 더 잘하는 선수들이고 성적만 놓고 봤을 때 제가 그 두 선수 사이에 낄 자격이 안 되잖아요. 그러면서도 제가 먼저 승을 이루고 싶은 욕심은 생기더라고요(웃음). 신경을 안 쓰려고 해도 자꾸 그런 내용의 기사들이 나오니까 은근히 마음이 조급해지고, 빨리 이기고 싶고 그랬어요.”
20승과 등번호
윤석민은 올 시즌 목표를 20승이라고 말한 바 있다. 지난 시즌 손가락 부상과 연이은 사구로 최악의 시즌을 보낸 거에 비하면 꽤 높은 승수를 내세웠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한 사연이 있다고 한다.
“솔직히 말해서 그런 질문, 진짜 싫어하거든요. 시즌 목표는 혼자서만 생각하고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기자분들께서 집요하게 목표 승수를 물어보세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20승이라고 말했는데, 이왕 말한 거 그 목표를 이뤘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조금 높게 잡은 것 같긴 해요(웃음).”
윤석민은 프로 데뷔할 때만 해도 등번호가 20번이었다. 그런데 2010시즌에는 28번으로 등번호를 바꿨고, 올 시즌 다시 21번으로 변경했다.
“20번에서 28번으로 바꾼 건 왠지 20번이란 등번호가 운이 안 따라준 것 같아서 대표팀에서 달았던 28번으로 바꾼 거였어요. 대표팀에선 그 번호를 달고 좋은 성적을 냈으니까요. 그런데 2010시즌에 최악의 성적을 냈었죠. 어쩔 수 없이 다시 번호를 바꿀 수밖에 없었고 21번이 남아 있어 선택한 거였습니다.”
변화구 마니아?
윤석민이 시즌 초반 부진을 거듭할 때 야구전문가들은 윤석민이 변화구 위주의 피칭을 피하고 직구 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석민도 이 부분에 대해선 공감한다고 말한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마음은 항상 직구 위주의 피칭을 하고 싶은데 직구 위주로 구질이 변해가는 과정에서 많이 얻어맞았어요. 그래서 쉽게 변화구를 버리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렇게 하면 성적이 나지 않으니 다시 변화구 위주로 던지게 됐죠. 첫 승 때요? 아무 생각 없었어요. 그냥 (김)상훈이 형이 리드하는 대로 던진 거예요.”
시즌 초 KIA 선발진들이 줄줄이 무너진 데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처음엔 우왕좌왕했던 것 같아요. 모두들 뒤통수를 얻어 맞은 것처럼 어안이 벙벙했거든요. 뭐가 문제지? 왜 이런 결과가 나오지? 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지금에서야 조금씩 자리를 잡고 있다고 생각해요.”
잊고 싶은 순간들
어렵게 지난 시즌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손가락 부상으로 오랫동안 마운드를 떠나 있었고 잇단 사구로 인해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내용들이었다.
“야구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됐어요. 참 많이 힘들었거든요. 언론에선 절 공황장애, 대인기피증 등 정신병자로 몰고 가더라고요. 심리치료를 받으러 간 적은 있지만 담당 의사한테 그런 병명은 들어보지도 못했거든요. 진심으로 감독님께 감사했어요. 손가락 부상을 당했을 때 팀이 아주 어려운 상황이었는데도 엔트리에 절 빼주시더라고요. 어느 감독님도 그렇게 하긴 쉽지 않았을 겁니다. 2주 동안은 아예 인터넷도 안 보고 가족들과 지내며 야구를 잠시 잊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팀이 4강 싸움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TV로 야구 중계를 보니까 팀 동료들과 감독님께 너무 너무 죄송하더라고요. 그래서 부랴부랴 몸을 만들었죠. 팀에 어떻게 해서라도 보탬이 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1군으로 올라간 지 며칠 안 돼서 조성환 선배님과 홍성흔 선배님께 잇단 부상을 입히게 되니까 공을 던지기가 두렵더라고요. 팀을 도우려다 오히려 화를 자초한 셈이었죠.”
그 후 윤석민은 더 이상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팀에서 나와 혼자 지내며 많은 고민과 갈등을 번복했는데, 잠시 야구를 그만둘 생각도 했다고 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마운드에 올라가 공을 던질 자신이 없었던 것.
“그런 가운데 감독님께서 아시안게임 얘길 하시더라고요. 이대로 시즌을 마치면 힘들 거라면서요. 하지만 전 제가 나갈 명분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일단 성적이 최악이었고 몸 상태도 좋지 않았고 혜택을 받을 선수가 있다면 저보단 그 선수들이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믿었던 거죠. 그러다 그냥 이렇게 시즌을 마무리하면 재기하는 게 어렵겠다는 마음에 고민 끝에 대표팀으로 들어간 거예요. 2010년은 정말 최악만 거듭하다 끝난 것 같아요.”
해외진출에 대한 생각
올해로 데뷔 7년 차를 맞는 윤석민은 해외 진출 조건을 갖는다. 그리고 2년 후면 FA 자격을 얻는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요즘 부쩍 윤석민의 진로에 대한 질문이 많다고 한다.
“일단 제 꿈은 메이저리그에 도전해 보는 거예요. 야구를 시작하면서부터 가진 꿈이고, 만약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놓치고 싶진 않아요. 그게 안 될 경우엔 한국에서 열심히 야구해서 다시 도전할 기회를 찾아야겠죠. 일본이요? 그때 가봐야 알겠지만 지금은 돈보다 제 꿈을 이루고 싶어요.”
인터뷰 말미에 야구 외적인 고민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윤석민은 “결혼 상대자가 빨리 나타나줬으면 좋겠다”고 운을 뗀다. 2008년 이후 단 한 번도 연애를 해본 적이 없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광주=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