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서구 대곡동은 가현산 남동쪽 골짜기에 있다. 인천의 대표적 오지로 꼽힌다. 대곡동 앞 쪽엔 김포 한강신도시가 위치해 있다. 행정구역이 인천과 경기 김포로 갈리는 탓에 개발 후순위로 밀린 지역이다. 도로나 대중교통 등 인프라가 상당히 부족하며 일부 가구엔 도시가스마저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낙후돼 있다. 수도권이라고는 믿기 힘든 생소한 풍경을 간직한 지역이다.
이런 대곡동에 개발 열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개발 인허가 절차가 완료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부 시행사가 최근 몇 년간 토지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기대감이 커졌다. 대곡3구역 개발 계획은 환지 방식 민간 주도 개발 사업이다. 개발은 3-1구역, 3-2구역으로 나뉘어 추진된다. 개발을 할 경우 예정 부지는 41만㎡에 이른다. 1만여 가구 신도시가 들어설 수 있는 규모다. 인근 김포 한강신도시가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대곡동 개발의 잠재력도 덩달아 인정받고 있는 양상이다.
이 땅에 먼저 깃발을 꽂기 시작한 건 자본금 1000만 원 규모 시행사 우송이었다. 김 아무개 우송 대표는 ‘대곡 3-2구역 (가칭) 도시개발사업조합 추진위원회’를 발족하며 대곡동 토지 확보에 뛰어 들었다. 김 대표는 대곡동에 도로용지 70㎡(21.2평) 부지를 매입해 도시개발사업조합에 참여할 조건을 만족했다. 그러나 도시개발사업조합은 개발 인허가 절차가 마무리된 뒤에 설립이 가능하다. 김 대표는 ‘가칭’ 도시개발사업조합 추진위원회 리더 격으로 활동하고 있다.
땅값을 높게 쳐준다는 우송 측 제안에 토지 계약을 체결하는 주민들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한 제보자는 “김 대표가 평당 200만 원 이상을 쳐주겠다고 약속했다”면서 “시세보다 높은 가격이라 긴가민가했지만, 김 대표가 ‘토박이’라고 소개한 것에 믿음이 가서 계약을 체결했다”고 했다.
한 대곡동 주민은 “김 대표가 대곡3구역 도시개발을 자신이 지휘하는 것처럼 말했으며, 많은 이웃 주민은 김 대표를 시행사 대표나 도시개발 조합장으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지역 유력 정치인이 김 대표를 후원해준다는 소문도 돌았다”면서 “이런 여러 가지 배경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토지 계약을 체결하는 주민이 많아졌다”고 귀띔했다. 우송의 토지 확보 작업은 무주공산에 깃발 꽂듯 순탄하게 진행돼 갔다.
그러던 2020년 하반기 새로운 시행사가 대곡동 토지 확보전에 참전하며 상황이 바뀌었다. 호반건설이 출자한 것으로 알려진 ‘골든개발’이 대곡동 토지 확보 경쟁에 뛰어들었다. 골든개발이 주민들과 토지 계약을 체결하기 시작하면서 우송에 토지를 판매하기로 계약을 체결한 주민들이 고개를 갸웃하기 시작했다. “골든개발과 계약한 주민들이 토지 대금 10% 규모인 계약금을 수령했다”는 말이 돌면서다.
소문의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우송과 계약을 체결한 일부 주민들은 당황했다. 그들은 토지 거래 대금 1% 수준의 ‘약정금’만 받고 토지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한 주민은 “같은 면적 토지를 팔고도 누구는 500만 원을 받고, 누구는 1억 원을 받은 상황이 펼쳐지면서 우송에 대한 의구심이 생겼다”고 주장했다. 우송과 계약을 해약하려던 일부 주민은 ‘위약금은 계약금의 2배’라는 계약서 조항에 발목이 잡혔다. 한 주민은 “약정금으로 받은 금액에 20배 정도를 위약금으로 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한 토지주와 우송 사이 토지매매계약서에 따르면 실제로 약정이란 생소한 단어가 들어 있었다. 우송의 김 대표가 해당 주민이 소유한 토지 1423.9㎡(430.73평)를 9억 811만 원에 매수하는 내용 계약서였다. 계약금 규모는 8581만 원으로 책정됐고, 조합 설립 인가 후 6개월 이내에 계약금이 지급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계약금 지급 대신 토지주가 받은 돈은 500만 원으로 책정된 ‘약정금’이었다. 김 대표는 단돈 500만 원으로 9억 원어치 토지를 묶어둔 셈이었다.
그런데 이 계약서 ‘계약의 해지’ 조항에 따르면 토지주(갑)는 약정금을 수령한 뒤 계약을 원칙적으로 해지할 수 없으며 이를 위반 시 본 계약서에 명시된 계약금의 배액을 우송(을)에게 배상하고 해지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계약서 상으로 계산해보면 약정금 500만 원을 반환하고 계약을 해지하려면 위약금으로 1억 7162만 원을 뱉어내야 했다. 위약금 규모만 토지 거래 대금의 18.89% 규모였다.
다른 시행사와 계약한 토지주들이 ‘계약금’을 지급받았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상황에서 일부 지주들은 우송과 토지 계약 해약을 시도했다. 우송과 토지 계약을 해약하려던 일부 땅 주인들은 ‘부동산 매매약정 계약은 정상적 계약금을 수령한 게 아니기 때문에 계약을 해지한다’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우송은 해약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우송과 일부 토지주들은 민사소송전에 돌입했다. 우송 측은 토지계약 해약 관련 건에 대해 법원 판결이 나오면 충실하게 따를 것이란 입장이다.
건설업계 복수 관계자는 “약정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토지를 확보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면서도 “해약 관련 위약금으로 ‘계약금의 2배’를 명시하는 경우는 드물긴 하다”고 했다. 한 관계자는 “아무래도 토지 확보의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차원에서 높은 위약금을 책정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관계자는 “토지 대금 1%에 해당하는 약정금으로 토지를 확보한 뒤 대형 건설사에 이 땅을 되판다면 토지 용역 수수료 개념으로 천문학적인 수익이 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약정이라는 것 자체엔 법적인 효력이 없는 데다 위약금의 규모가 약정금 대비 과다하게 산정된 측면이 있다"면서 "법적인 분쟁이 일어난다면 이 두 가지 부분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송과 지역구 국회의원을 둘러싼 풍문도 돌았다. 복수 주민들은 “우송이 신동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인천 서구을) 비호를 받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고 주장했다. 한 주민은 “신 의원이 호반건설 관계자를 불러 ‘우송과 손을 잡으라’고 강요했다는 소문도 퍼졌다”면서 “신 의원과 김 대표가 특수관계인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했다. 호반건설은 우송의 경쟁 시행사인 골든개발을 출자한 회사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토지주들과 잘 호응해 도시개발사업을 진행 중이었는데 갑자기 대형 건설사가 뛰어들어 알박기 식으로 땅을 사려고 하니 신 의원 입장에선 그런 태도가 현 정부가 주장하는 공정과 정의에 어긋난다고 본 것 같다”면서 “신 의원 쪽에 대형 건설사의 상도덕을 어기는 행태에 대해 어려움을 토로한 적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신동근 의원 측은 “(우송을 둘러싼 소문은) 사실무근”이라고 했다. 신 의원 측은 “우리는 (우송 대표를) 김OO 씨라고 부르는데 김 씨는 단지 조합 추진위 쪽 사람으로 알고 있다. 일면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특수관계인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라면서 “김 씨가 시행사 대표인지는 몰랐다”고 했다.
신동근 의원실 관계자는 “호반건설 관계자를 의원실로 부른 것은 호반건설 출자사인 골든개발이 대곡동 땅값을 높게 쳐서 계약해 주민 간 갈등을 유발했기 때문”이라면서 “토지 가격이 높게 책정되면 향후 분양가가 높아질 뿐 아니라, 현재 지역 주민들 사이에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 거대 자본을 무기로 시장을 교란하는 행위를 막으려는 것이었지, 특정 시행사를 밀어주라고 강요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신 의원 또한 시행사 간 갈등으로 주민들 사이 평판이 안 좋아지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는 상황이다. 시행사들 갈등에 주민들만 피해를 보는 상황이라면 대곡3구역을 민간개발이 아닌 공공개발 방식으로 전환하는 가능성도 열어둘 수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호반건설이 대곡동뿐 아니라 전국에 걸쳐 출자사를 통해 토지를 확보하는 행보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최근 대곡지역에서도 일부 토지에 대해 출자사가 땅값을 너무 높게 쳐서 호반건설로부터 계약금을 조달하지 못하고 있다. 토지를 확보하려는 세력들의 땅값 부풀리기가 주민들 사이 갈등만 증폭하는 셈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대곡동의 현 상황을 “막대한 개발 이익을 둘러싼 복마전 양상”이라고 분석했다. 건설업 관계자는 “오랜 시간 동안 적은 현금으로 토지 확보를 해온 토착 부동산 업자와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토지 확보에 뛰어든 대형 건설사의 땅따먹기 전쟁”이라면서 “양쪽이 모두 손가락질을 받는 상황에서 이런 갈등이 심화한다면, 개발사업 시기만 늦춰지는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반론보도] <[단독] '화천대유'의 향기가…인천 대곡동 개발사업 둘러싼 잡음> 관련
본 지는 지난 10월 13일 위와 같은 제목의 보도를 했습니다.
이에 대해 신동근 의원 측은 "대형건설사 관계자를 불러 '우송과 손을 잡으라'고 강요한 사실이 없고, 인천 대곡동 토지개발사업과 관련해 시장 교란 행위를 막으려는 것이었을 뿐 특정 시행사를 밀어주는 등 비호한 사실이 없다"고 밝혀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