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추진 남욱 조사 후 김만배 영장 재청구 가능성…곽상도 ‘뇌물’ 수사는 미뤄질 전망
정·관계에 뇌물을 뿌린 측이자, 화천대유라고 하는 자산관리회사(AMC)를 만들어 천문학적인 이익을 거둔 김만배 씨는 수차례 소환조사가 필요하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었다. 조사할 범위가 많았기 때문. 하지만 김 씨가 일체 혐의를 부인하자, 추가 소환조사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검찰은 곧바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김 씨의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성이 있다”며 검찰의 영장청구를 기각했다.
'50억 클럽' 등 정·관계 로비로 수사를 확대하려던 검찰 수사는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검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곽상도 무소속 국회의원(국민의힘 탈당) 아들에게 준 50억 원을 포함, 755억 원 상당의 뇌물공여 혐의를 적시했다. 다음 수사 대상으로, 당장 곽상도 의원이 거론됐다. 경찰 역시 그동안 진행했던 수사를 검찰로 넘기기로 결정하는 등 검찰이 홀로 사건 전체를 책임지고 가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었다. 하지만 김만배 씨 영장이 기각되면서 검찰은 다시 그의 혐의 입증부터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수차례 추가 조사 뒤 영장을 재청구할 가능성이 거론되지만, 또 영장이 기각될 경우 검찰의 수사는 ‘완전 실패’로 낙인찍히게 될 가능성이 높다.
#김만배 혐의 너무 과도하게 적용했나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팀장 김태훈)은 10월 12일 김만배 씨에 대해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구속영장에 적시한 혐의는 세 가지. 755억 원 상당의 뇌물공여 혐의와 1100억 원대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 55억 원대 횡령 혐의 등이다. 김 씨는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된 유동규 전 본부장에게 대장동 개발 이익의 25%를 주기로 약속했는데, 대략 700억 원 정도로 추산했다. 검찰은 이 금액과 곽상도 의원 아들에게 준 50억 원의 퇴직금도 뇌물로 판단했다. 아들에게 건넨 금액을 사업 편의를 위한 청탁 대가라고 봤다.
이례적으로 빠른 구속영장 청구였다. 11일 김만배 씨를 14시간 가까이 소환조사한 뒤 12일에 곧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심지어 곽 의원이나 그의 아들은 소환조사조차 하지 않은 채, 김 씨 혐의에 50억 원의 뇌물이라는 판단도 포함시켰다. 김 씨가 혐의를 일체 부인하며 언론에 잇따라 ‘전략’을 노출시킨 것에 대한 발 빠른 대응이라는 평이 나오는 대목이다.
하지만 법원은 12시간의 고민 끝에 영장을 기각했다. 문성관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부장판사는 14일 밤 “김 씨의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성이 큰 반면에 피의자에 대한 구속의 필요성이 충분히 소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영장 기각 사유를 밝혔다. 간단한 문장이었지만, 결국 “제대로 수사를 다 하지 않고 영장을 청구했다”고 검찰을 지적한 셈이다.
영장 발부 가능성을 점쳤던 것을 뒤집은 결정이었다. 김만배 씨는 언론 인터뷰 등에서 “화천대유와 천화동인 1호는 내 소유”라고 하거나, 정영학 회계사의 녹취록에서 한 ‘절반은 그분 것’ 발언 진위에 대해서는 “내 쪽으로 구사업자 갈등이 번지지 않게 하려는 차원에서 말한 것”이라고 하는 등 다른 사건 관계자들에게 말맞추기 시도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발언을 잇달아 내놨다. 특히 그 과정에서 말이 바뀌면서 ‘일관성’도 흔들렸다.
그러면서도 검찰의 핵심 증거인 정영학 씨의 녹취록을 확인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언급했다. 김만배 씨 측 변호인은 “방어권 보장 측면에서 김만배 씨를 수사하는 근거가 되는 녹취록이라도 들려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식으로 반발했다. 실제 김 씨는 “녹취록을 제출한 정영학 씨와 진실된 얘기를 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하거나, 녹음하는 것을 알고 일부러 거짓말을 했다”는 등 녹취록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는 시도도 병행했다.
그럼에도 영장이 기각된 것은 검찰의 과도한 혐의 적용이 이유로 꼽힌다. 방대한 의혹에 대해 세부적으로 확인하지 않고, ‘녹취록’ 등을 토대로 750억여 원의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한 것이 결국 ‘입증 부족’으로 지적받았다는 분석이다. 법원 관계자는 “지금까지 나온 기사 등을 보면 실제 흘러간 자금은 5억 원뿐이고, 곽상도 의원 측에게 간 50억 원도 법적으로 공방이 필요했던 부분”이라며 “750억 원의 혐의를 적용하면서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뇌물 사건이라고 언급하기에는, 실제 자금 흐름이나 받으려고 했던 정관계 인사들에 대한 수사도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 결국 검찰 수사의 발목을 잡은 것 아니겠냐”고 지적했다.
#다음 수사대상 곽상도 의원은 어찌 되나
검찰의 원래 계획은 김만배 씨를 구속한 후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 변호사와 곽상도 의원, 권순일 전 대법관 등을 수사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검찰의 영장이 수사 초반, 핵심 인물인 김만배 씨부터 기각되면서 수사는 난항이 불가피해졌다.
검찰 수사가 더욱 속도전으로 나설 가능성이 제기된다. 현재 또 다른 핵심 인물인 남욱 변호사는 대형 로펌을 변호인으로 선임하고 국내 귀국을 추진하고 있다. 남욱 변호사는 천화동인 4호부터 6호까지 지인들의 투자를 유도했고, 본인의 투자액(1억여 원)이나 배당금(1000억여 원), 사업 관여도 및 미국 도주 시도 등을 고려할 때 구속영장 청구가 불가피하다. 특히 남욱 변호사는 JTBC와의 인터뷰에서 “김만배는 거짓말을 잘한다”며 검찰에서 다른 진술을 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김만배 씨에 대한 영장 재청구 시 중요한 증거 진술이 될 수 있다.
김만배와 유동규, 남욱 등은 서로 형-동생으로 호칭하며 사업에 깊숙하게 개입했던 인물이다. 남욱 변호사는 천화동인 1호의 절반을 소유한 인물로 지목된 ‘그분’에 대해서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그분이 누군지는 아는 사람들은 알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김만배 씨가) 350억 원 로비 비용 이야기를 저희들끼리 했었는데, 이런 이야기들이 외부에 나가면 당연히 난리가 나겠다고 생각했다. 김만배 씨가 (로비) 비용이 많이 들어가니 저희들(남욱·정영학)에게 이런 비용을 부담하라고 해서 계속 부딪혔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다음 수사 대상으로 지목됐던 곽상도 의원에 대한 뇌물수수 혐의는 조금 미뤄질 전망이다. 곽 의원은 자신의 SNS에 “로비를 받고 무슨 일이든지 했으면 자료라도 남아있을 텐데 이런 것도 없이 무조건 뇌물이라고 한다. 녹취록에 어떤 로비가 있었는지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는 것은 로비의 실체가 없다는 것”이라며 반발했지만, 김 씨에게 50억 원의 뇌물 혐의를 이미 적용했던 만큼 검찰이 곽 의원을 수사할 것이라는 점은 명확하다.
#청와대 입장도 수사 '변수'
문재인 대통령 역시 수사의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 발로 입장을 내놨던 것을 넘어,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10월 12일 대장동 사건 관련 “검찰과 경찰은 적극 협력해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로 실체적 진실을 조속히 규명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 달라”고 지시했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춘추관 브리핑에 이 같은 문 대통령의 발언을 전하면서도 “정치적 의미를 더한 해석은 말아달라”고 말했지만, 법조계에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청와대 분위기에 정통한 법조계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로 속도전을 지시했다는 분석도 있지만, 사안의 중대성을 보고 발언을 했다는 해석도 나온다”며 “결국 저 발언만 놓고 보면 수사팀 입장에서는 원칙대로 수사를 할 수 있는 동력이 되지 않겠냐”고 해석했다.
경찰 역시 조만간 사건을 검찰로 넘기면서, 손을 뗄 것으로 보인다. 수사당국 관계자는 “검찰이 사건을 주도하고 있어 경찰이 사건을 검찰로 이첩하면서 대장동 사건은 검찰의 수사 원트랙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다만 검찰이 어느 정도로 수사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는 또 다른 변수다. 이정수 서울중앙지검장은 10월 14일 국정감사에 참석해 ‘그분’이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이정수 지검장은 “녹취록 다른 부분에 ‘그분’이라는 표현이 있긴 하다”면서도 “그 부분이 언론에서 말하는 인물(이재명 경기지사)을 특정한 것은 아니고, 다른 사람을 지칭하는 표현”이라고도 말했다.
앞선 수사당국 관계자는 “대선 개입 논란이 불거질 수 있어, 검찰이 몸을 사리는 것 같다”며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검찰이 움직이지 못하는 점을 고려할 때 이재명 지사에 대한 제대로 된 수사는 대선 이후 결과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환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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