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률형 아이템 비판 거세, 새 출시 ‘리니지W’에 명운…성희롱 사태 내부 불만 일자 회사 “절차 진행 중”
확률형 아이템은 게임 이용자가 게임 내에서 구매하는 ‘랜덤뽑기식’ 아이템이다. 어떤 아이템이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극단적으로 낮은 확률로 이용자들에게 과도한 지출을 유도한다. 이 같은 비판은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늘 지적돼왔을 정도로 이미 수년 전부터 이어져 왔지만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다.
지난 8월 26일 엔씨소프트의 게임 ‘블레이드 앤 소울2(블소2)’ 출시를 계기로 눌려왔던 이용자들의 불만이 터지기 시작했다. 블소2가 기존 게임들과 비교했을 때 큰 차별점이 없을 뿐 아니라 ‘리니지식 BM’, 즉 확률형 뽑기 시스템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비판 여론이 거세졌고 실적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엔씨소프트의 주가도 크게 떨어졌다. 지난 8월 25일 83만 7000원이던 엔씨소프트 주가는 블소2가 출시된 26일 70만 9000원으로 떨어졌다. 이후에도 약세를 면치 못한 엔씨소프트 주가는 급기야 50만 원대로 추락하기도 했다.
한국게임학회장인 위정현 중앙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국회 국정감사에서 “(대형 게임사들은) 확률형 아이템에 기반한 ‘IP(지식재산권) 우려먹기’ 게임을 양산해서 돈 많은 이용자를 쥐어짜는 확률형 게임으로 국내 게임 생태계를 피폐하게 만들었다”며 “엔씨소프트 같은 대표적 게임사는 게임산업을 망치는 적폐기업으로 지탄을 받는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엔씨소프트의 간판 게임 ‘리니지’의 입지도 흔들리고 있다.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내 구글플레이 모바일 게임 매출 순위 1위는 리니지M 또는 리니지2M이었는데, 올해 7월 카카오게임즈의 ‘오딘: 발할라 라이징’에 1위 자리를 내줬다.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의존도가 상당한 만큼 게임 매출 순위 변화는 엔씨소프트 실적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지난 2분기 기준 리니지 시리즈의 매출은 엔씨소프트 전체 매출의 76%에 달한다.
엔씨소프트 내부에서도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지난 9월 17일 사내 메일을 통해 “게임은 물론 NC(엔씨소프트)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NC가 위기에 빠졌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며 “NC의 변화가 필요한 시기다. NC의 문제를 정확히 짚고 대안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 정치권에서도 이번을 계기로 확률형 아이템 문제 해결에 팔을 걷어붙였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한 관계자는 “이전부터 계속 지적된 논란거리지만 현 정부 마지막 정기국회니 이번에는 근절해보자는 분위기”라며 “이번 정기국회 내 확률형 아이템 규제 관련 법안 처리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정무위원회)은 “확률형 아이템을 중심으로 한 BM으로 혁신 없이 단기 수익만 추구하는 사이 세계 시장에서 한국 게임산업의 경쟁력은 점점 하락해왔다”며 “과도한 수익모델만 내세운 엔씨소프트의 신작들도 연속적으로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유 의원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소비자 보호를 위해 고시와 게임산업법 개정을 위한 정책적인 근거 제공 등 적극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위기를 맞은 엔씨소프트는 새롭게 출시되는 '리니지W'에 명운을 걸고 있다. 이용자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게임 내 과금 요소를 줄이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리니지 게임을 총괄하는 이성구 리니지W 그룹장은 지난 9월 30일 2차 온라인 쇼케이스에서 “현재 변신, 마법인형을 제외한 다른 메인 BM은 전혀 기획하고 있지 않다”, “BM 액세서리 슬롯은 존재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장의 불신은 여전하다. 설사 지금은 아니라고 해도 추후 추가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그 어느 때보다 혁신이 필요한 상황에서 엔씨소프트 내부는 성희롱 사태로 오히려 문제가 불거졌다. 최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사내 성희롱 피해로 퇴사한 여성 직원이 3~4명인데, 정작 회사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온 것으로 전해진다.
엔씨소프트 측은 “해당 인원에 대해 직무배제와 대기발령 조치한 이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파악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 중”이라며 “엄격한 기준을 갖고 강경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NC가 위기에 빠졌다”, “NC의 변화가 필요한 시기다”라고 강조한 김택진 대표의 일성이 무색해진 상황이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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