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조건으로 호적 얻은 뒤 퇴사하는 사례 늘어나…사측 손 들어준 법원 판결 놓고 갑론을박
‘베이피아오’는 베이징에 살지만 베이징에 호적이 없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온라인상에선 안정된 집과 직장이 없는 사람으로도 통한다. 그만큼 베이징 호적은 중국인들에게 성공의 상징이다. 베이징 호적을 갖고 있다는 것은 원래부터 좋은 집안이거나, 또는 좋은 직장‧명문 학교를 다닌다는 의미다. 아무리 돈을 많이 지불한다고 해도 베이징 호적을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몇 년 전부터 인재 영입에 사활을 걸고 있는 일부 대기업들은 ‘베이징 호적’을 입사 조건으로 내세웠다. 많은 구직자들에게 이 조건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호적 취득 후 퇴사하는 일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회사는 이들을 상대로 소송을 벌였다. 상당수는 고액의 배상금을 순순히 물어준다. 베이징 호적을 얻었다는 것은 이를 상쇄하고도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송사로까지 번지는 경우도 간혹 있다. 최근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는 베이징 A 사와 퇴사자 B 씨 간 소송전도 ‘베이징 호적’ 때문에 벌어졌다. 2018년 10월 1일 A 사와 B 씨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계약서에 따르면 B 씨는 2018년 10월 1일부터 2023년 9월 30일까지 기술개발직으로 근무하기로 했다. 5년 간 근무는 ‘베이징 호적 취득’이라는 조건이 전제였다. B 씨가 서명한 계약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본인은 회사와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베이징 호적을 취득한다. 본인은 회사를 위해 5년 이상 근무할 것을 약속한다. 5년 이내에 퇴사할 경우 위약금을 낸다. 위약금은 근무기간에 따라 산정한다. 연 단위 10만 위안(1837만 원)으로 계산한다. (3년만 다녔을 경우 남은 2년치인 20만 위안이 위약금) 1년 미만 근무하고 회사를 나가면 50만 위안(9189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
B 씨는 입사 3년 차인 2020년 4월 15일 사직서를 제출했다. B 씨는 사직서에서 “2년간 근무하면서 소중한 경험을 얻었다. 내 인생의 귀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다만, 내 개인적인 기대와 삶의 목표를 이루기엔 만족스럽지 못하다”면서 “5월 15일에 이직을 하기로 했다. 마지막까지 인수인계를 잘하겠다. 추후 업무상 문제가 있을 때 언제든지 연락을 주면 회신하겠다. 회사에 불편을 끼쳐서 죄송하다”고 했다.
베이징 호적까지 주면서 B 씨를 영입했던 A 사는 2020년 5월 27일 노동중재심판원에 B 씨를 상대로 40만 위안(7352만 원)을 지급하라는 소를 제기했다. 계약서를 근거로 해서였다. 하지만 2020년 10월 13일 중재심판은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A 사는 인민법원에 다시 제소를 했다.
B 씨는 법정에 나와 “계약서에 명시된 위약금 지급, 근무기간 등은 법적 근거가 없다. 내가 입사할 때 서명을 하긴 했지만 회사는 나를 위해 그 어떤 전문적인 훈련을 제공하지 않았다. 나는 재직하는 동안 성실하게 근무해 회사에 이득을 가져다 줬다. 나의 퇴사는 회사에 그 어떤 불이익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최근 법원은 A 사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렸다. 인민법원은 B 씨에게 판결이 나온 후 10일 이내에 25만 위안(4595만 원)을 A 사에 지급하도록 했다. 남아 있는 근속연수, 회사의 피해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금액이다. B 씨의 항소 여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베이징시 인민법원은 “계약서에 서명한 것은 B 씨가 분명하다. 이 약속은 진실로 유효한 것이다. 법률상의 강제 규정을 위반한 것도 아니다. 서약서는 법률적 효력이 있다. 베이징 호적은 희소성을 가진 사회적 자원이다. B 씨가 회사를 이용해 베이징 호적을 얻은 뒤 퇴사하는 것은 회사에 분명 손해를 끼치는 일이다. 회사의 채용을 방해한 측면도 있다”고 판결했다.
한 변호사는 “B 씨는 계약서를 체결한 뒤 성실과 신의의 원칙에 따라 이를 잘 지켰어야 했다. 베이징 호적을 얻은 후 회사를 퇴사한 것은 사회를 뒤흔드는 일이다.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 법원의 판결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번 판결을 놓고 온라인과 SNS 등에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한 블로거는 “B 씨가 호적만 챙기고 ‘먹튀’를 한 것 아니냐. 계약서에 서명한 대로 위약금을 내는 게 맞다”고 했다. 반면, 베이징에 거주하는 한 교수는 “무조건 계약서상 근무기간을 지키라고 하는 것은 과한 측면이 있다. 자칫 노동자에게 족쇄가 될 수 있다. 유연하게 들여다볼 필요도 있다”고 했다.
중국=배경화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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