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승률 두 팀 맞대결 다저스 3-2 극적 승리…양키스에 밀려 ‘동부에서 서부로’ 역사 함께 공유
승부의 세계에서는 모든 팀, 모든 선수가 늘 같은 자리를 놓고 겨뤄야 하는 라이벌을 만나기 마련이다. 라이벌의 환희는 곧 나의 좌절로 직결되기에 "인생에서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은 라이벌의 희열"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물론 현재의 성적과 상황이 비슷하다고 해서 누구나 쉽게 라이벌 구도를 형성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모두가 주목할 만한 맞수 관계가 만들어지려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특별한 역사와 스토리가 필요하다.
올해 메이저리그(MLB)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에서 맞붙은 LA 다저스와 샌프란시스코가 대표적이다. 나란히 내셔널리그 서부지구에 속한 두 팀은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의 뉴욕 양키스-보스턴 레드삭스와 함께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역사적 라이벌로 꼽힌다. 그럼에도 가을 무대에선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샌프란시스코가 1883년, 다저스가 1884년 창단해 각각 138주년과 137주년을 맞이한 전통의 명문 구단인데도 그렇다. 이 때문에 두 팀의 디비전시리즈는 여느 해의 월드시리즈 못지 않은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다저스와 샌프란시스코의 라이벌 역사
두 팀의 라이벌 히스토리는 구단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한다. 나란히 뉴욕 자이언츠, 브루클린 다저스로 미국 동부의 뉴욕을 연고로 창단했다. 당시 자이언츠의 홈 구장은 뉴욕의 한복판인 맨해튼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일부 팬들은 뉴욕 중심지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브루클린 지역의 다저스를 '뉴욕의 서자'로 취급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1920년대 후반부터 두 팀 다 베이브 루스와 루 게릭을 앞세운 양키스에 뉴욕 야구의 주도권을 빼앗겼고, 인기와 실력의 격차가 점차 커지면서 비슷한 시점에 돌파구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심지어 브루클린에 돔구장을 지으려던 다저스의 계획이 뉴욕시의 비협조로 무산되자 다저스 당시 구단주 월터 오말리는 "더는 못 참겠다. 서부로 터전을 옮기겠다"고 선언했다. 동시에 자이언츠 구단주 호레이스 스톤햄에게 "함께 서부에서 사업 영역을 확장하자"고 제안했다. 오말리의 거듭된 설득에 스톤햄의 마음이 움직였고, 그렇게 자이언츠와 다저스는 1957년 나란히 뉴욕을 떠나 캘리포니아에서 새출발했다.
1969년 두 팀이 나란히 내셔널리그 서부지구로 편입되면서 본격적인 라이벌 전쟁이 시작됐다.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는 숙적 관계의 서막이었다. 다저스와 샌프란시스코의 전성기는 서로 엇갈렸지만, 한쪽이 약할 때도 두 팀간 맞대결만큼은 호락호락하게 넘기는 법이 없었다. 1990년대 LA 다저스에서 전성기를 보낸 '코리안 특급' 박찬호는 과거 "다저스와 샌프란시스코 선수들은 서로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었다. 상대를 너무 잘 알기에 경기 때 긴장감이 넘쳤다"고 떠올렸다. 심지어 샌프란시스코 팬들은 그날의 야구 경기 결과를 확인할 때 "샌프란시스코가 이겼는가"보다 "다저스가 졌는가"를 먼저 묻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그런 두 팀이 수차례 엇갈림 끝에 가을 잔치에서 만났으니 메이저리그가 들썩거린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심지어 두 팀은 올 시즌 내내 같은 지구 안에서 메이저리그 최고 승률 경쟁을 펼쳤다. 결과는 107승을 올린 샌프란시스코의 극적인 승리. 다저스는 106승으로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 2위에 해당하는 승수를 쌓고도 샌프란시스코에 지구 우승을 내주고 와일드카드 결정전으로 밀려야 했다.
그러나 운명의 신은 두 팀을 가을에 만나게 했다. 다저스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꺾고 와일드카드를 차지했고, 3개 지구 우승팀 중 최고 승률 팀과 와일드카드 팀이 디비전시리즈에서 만난다는 규칙에 따라 샌프란시스코와 다저스가 5전 3선승제 디비전 시리즈를 치르게 된 것이다. 107승 팀과 106승 팀이 맞붙은 이번 디비전시리즈는 역대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 매치업 사상 정규시즌 합산 승수가 가장 많은 조합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있더라
소문난 잔치엔 먹을 게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130여 년 끝에 찾아온 샌프란시스코와 다저스의 사상 첫 가을 야구는 그렇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 홈구장 오라클파크에서 열린 1·2차전에서 두 팀은 장군멍군을 주고 받으며 치열한 명승부의 서막을 열었다.
1차전은 샌프란시스코가 4-0으로 투타에서 완승했다. 샌프란시스코 선발 로건 웹이 7⅔이닝 동안 삼진 10개를 잡으면서 5피안타 무사사구 무실점으로 역투했다. 또 타선은 홈런 3방으로 손쉽게 4점을 뽑았다. 샌프란시스코 간판 버스터 포지가 1회 다저스 선발 워커 뷸러를 상대로 선제 결승 2점 홈런을 쳤고, 크리스 브라이언트와 브랜든 크로포드가 7회와 8회 솔로홈런을 날려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경기는 2시간 39분 만에 끝났다.
2차전 양상은 달랐다. 다저스가 9-2로 완승했다. 데이브 로버츠 다저스 감독은 경기 전 "2패로 몰리고 싶지 않다. 이 게임을 '죽느냐 사느냐'의 각오로 치르겠다"고 이례적인 각오를 표현했다. 다저스는 단순히 이긴 것을 넘어 투타에서 완패한 1차전의 아쉬움을 고스란히 되갚았다. 특히 1차전에서 무득점으로 물러난 타선은 2회 2점을 먼저 낸 데 이어 6회 득점 기회에서 4점을 한꺼번에 뽑아 사실상 승기를 쥐었다. 또 승패와 별개로 경기 내내 이어진 호수비의 향연은 두 팀 다 올 시즌 100승을 넘긴 비결을 짐작케 했다.
다저스타디움으로 자리를 옮겨 치러진 3·4차전도 결과는 1승 1패였다. 3차전을 맞이한 다저스는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소진했던 에이스 맥스 슈어저 카드를 다시 꺼내들었다. 슈어저는 에이스답게 7이닝 동안 삼진 10개를 솎아내면서 3피안타 1실점으로 샌프란시스코 타선을 막았냈다. 하지만 5회 에바 롱고리아에게 허용한 솔로 홈런 하나가 끝내 화근이 됐다. 다저스 타선이 샌프란시스코 투수 네 명의 릴레이 호투에 밀려 점수를 내지 못한 탓이다. 샌프란시스코의 1-0 승리. 실투 하나에 운 다저스는 시리즈 들어 두 번째 영봉패를 당했다.
하지만 4차전에선 다시 다저스가 7-2로 승리하면서 기사회생했다. 올해 메이저리그 전체 선수 중 유니폼을 가장 많이 판 다저스 리드오프 무키 베츠가 4회 2점 홈런을 날렸고, 윌 스미스도 8회 쐐기 2점포를 쏘아올렸다. 샌프란시스코는 무려 7명의 투수를 투입하는 물량공세를 펼쳤지만, 다저스 타선의 기세를 막지 못했다.
2승 2패. 두 팀은 다시 샌프란시스코의 홈구장으로 돌아왔다. 올 시즌 양대 리그에서 열린 네 개 디비전시리즈 중 유일한 5차전 승부였다. 경기도 시종일관 팽팽했다. 쉽사리 상대에게 주도권을 내주지 않았다.
심지어 다저스는 선발 투수로 예고됐던 훌리오 우리아스 대신 불펜 투수 코리 네블을 첫 번째 투수로 내세우는 변칙 작전을 썼다. 1회 오프너로 등판한 네블과 2회 마운드에 오른 또 다른 불펜 투수 브루스다르 그라테롤은 실점 없이 첫 2이닝을 막아낸 뒤 3회 우리아스에게 무사히 배턴을 넘겼다.
작전 성공으로 고무된 다저스는 6회 초 1사 후 무키 베츠의 좌전 안타와 도루, 코리 시거의 좌월 적시 2루타로 기어이 선취점을 뽑았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도 곧바로 이번 시리즈 2승의 키워드였던 '홈런'으로 반격했다. KBO리그 삼성 라이온즈 출신인 다린 러프가 6회 말 우리아스와 풀카운트 승부 끝에 시속 152㎞짜리 직구를 걷어올려 한가운데 담장을 넘겼다.
다시 1-1 원점으로 돌아간 승부는 결국 마지막 이닝인 9회가 돼서야 갈렸다. 올 시즌 극심한 타격 슬럼프에 시달렸던 다저스 코디 벨린저가 '해결사'였다. 9회 초 1사 1·2루에서 타석에 선 좌타자 벨린저는 내야 왼쪽을 비우고 내야수들을 오른쪽으로 모두 당긴 샌프란시스코의 시프트 사이를 뚫고 지나가는 적시타를 날렸다. 다저스 벤치의 선수들은 그 순간 모두 펄쩍 뛰어오르며 환호했다.
어렵게 1점 리드를 잡은 다저스는 9회 말 슈어저까지 투입해 필사적으로 승리를 지켰다. 슈어저는 3루수 실책으로 맞은 1사 1루 위기에서 남은 두 타자를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우면서 값진 포스트시즌 세이브를 추가했다. 다저스가 시즌 도중 적잖은 출혈을 감수하면서도 워싱턴 내셔널스 에이스였던 슈어저를 트레이드로 영입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허공에 양팔을 뻗으며 포효하는 슈어저를 향해 다저스의 모든 선수가 달려들었고, 두 라이벌 팀의 역사적인 첫 가을 명승부에는 그렇게 완벽한 마침표가 찍혔다.
#양키스와 보스턴,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의 양키스와 보스턴도 더 설명이 필요 없는 '원조 숙적'이다. 두 팀 역시 다저스와 샌프란시스코처럼 같은 지구에 몸담은 탓에 서로를 넘어야 월드시리즈에 진출할 수 있는 숙명도 공유하고 있다. 또 같은 지구 소속이라 매년 여러 차례 맞대결을 펼치는데도 두 팀의 경기는 늘 초미의 관심을 모은다. 맞대결 경기 티켓은 다른 경기 입장권보다 비싸게 책정된다.
무려 10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두 팀의 라이벌 구도는 긴 역사만큼이나 숱한 명승부와 명장면을 남겼다. 보스턴은 초창기 메이저리그 최강팀이었다. 1915년에는 불세출의 스타 베이브 루스가 팀에 합류해 더 강해졌다. 하지만 돈이 급했던 보스턴 구단주가 팀 최고의 스타 루스를 양키스로 보내 버린 1920년을 기점으로 양 팀의 희비가 엇갈리기 시작했다. 루스는 1923년 양키스타디움 개장 경기를 찾은 7만여 관중 앞에서 친정팀 보스턴을 상대로 구장 첫 홈런을 쳤다. 1932년 월드시리즈 3차전에선 타석에서 배트를 들어 먼 외야 관중석을 가리킨 뒤 바로 그 방향으로 홈런을 날리는 '예고 홈런'의 위용을 뽐냈다. 루스의 이적과 활약 속에 사이가 갈라진 두 팀은 이후에도 엎치락뒤치락 전세 역전을 반복하며 끈질긴 혈전을 이어갔다.
두 팀 역사에 가장 치열하고 상징적인 명승부는 2003년과 2004년 월드시리즈 진출권이 걸린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나왔다. 2003년의 승자는 양키스였다. 7전 4선승제 승부에서 3승 3패로 맞선 가운데 7차전이 열렸고, 양키스가 연장 11회 애런 분의 끝내기 홈런으로 극적인 역전승을 일궜다. 그 경기에서 투수교체 판단을 잘못한 당시 보스턴 감독은 팀을 리그 챔피언십시리즈까지 이끌고도 경질됐다. 양키스와 라이벌전에 보스턴 구단이 얼마나 '진심'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1년 후 다시 만난 두 팀은 다시 한 번 7차전까지 승부를 끌고 갔다. 양키스가 먼저 3승을 따냈지만, 보스턴이 기적을 만들어냈다. 당시 메이저리그 최고 소방수였던 양키스 마리아노 리베라를 이틀 연속 9회에 무너뜨렸고, 데이비드 오티스가 4차전 연장 12회말 끝내기 홈런과 5차전 연장 14회말 끝내기 안타를 각각 터뜨렸다. 6차전에서는 그 유명한 커트 실링의 '피 묻은 레드삭스' 투혼이 이어졌다. 결국 보스턴은 7차전에서 10-3으로 대승을 거두고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 사상 처음으로 리버스 스윕을 완성했다. 이어 비로소 '밤비노(베이브 루스의 별명)의 저주'를 풀고 86년 만에 우승했다.
#두산과 LG, 뿌리 깊은 역사적 라이벌
KBO리그에선 역시 한국 야구의 메카인 '잠실구장'을 양분하고 있는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의 라이벌 관계가 가장 주목받는다. 두 팀의 숙적 관계는 두산이 연고지를 서울로 옮긴 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을 앞두고 KBO는 서울, 인천, 대전, 광주, 대구, 부산을 중심으로 한 6개 구단 체제를 구상했다. 가장 경쟁이 치열한 서울은 프로야구 출범 작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MBC 청룡(LG의 전신)이 선점한 상태였다. 반면 대전을 연고로 창단할 기업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이때 서울 팀 2순위 후보였던 두산이 OB라는 이름으로 야구단을 창단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결국 정부와 KBO는 '3년 후 서울로 연고지를 이전해주고, 서울 유망주를 MBC와 나누게 해주겠다'는 조건을 걸고 두산에 대전을 맡겼다.
약속대로 OB는 1985년 서울로 올라왔다. 첫 1년은 잠실이 아닌 동대문야구장을 홈으로 사용했던 터라 크게 부딪힐 일은 없었다. '강북은 OB, 강남은 MBC'라는 이분법도 생겼다. 하지만 이듬해인 1986년 OB가 잠실로 들어오면서 두 팀의 동거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 일을 놓고 LG 팬들은 "LG의 집에 두산이 셋방살이를 시작했다"고 표현하고, 두산 팬들은 "방송사 텃세에 밀려 빼앗겼던 안방을 베어스가 다시 찾았다"고 맞섰다.
이후 두 팀은 서울지역 신인 1차지명 우선권을 놓고 여러 차례 치열한 스카우트 전쟁을 펼쳤다. 또 1990년대부터는 엇갈린 양 팀의 성적에 따라 울고 웃어야 했다. 두 팀의 맞대결에서는 유독 격렬한 벤치 클리어링도 여러 차례 벌어졌다.
그라운드 밖에서도 자존심 싸움은 이어졌다. 잠실구장 이동 경로를 놓고도 한때 갈등했을 정도다. LG와 두산의 선수단 라커룸은 각각 3루와 1루 뒤쪽에 자리 잡고 있다. 두산이 홈팀일 때는 큰 문제가 없지만, LG가 홈팀이라 1루 쪽 더그아웃을 쓰는 날이면 양 팀 선수들이 경기 후 서로의 라커룸으로 돌아가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일이 잦았다. 좁은 복도에서 선수들이 종종 부딪히기도 하고,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신경전도 벌어졌다. 이 때문에 결국 양 팀 고참 선수들이 "그날 이긴 팀은 당당하게 그라운드를 가로질러 라커룸으로 가고, 진 팀은 복도 뒤로 돌아가자"고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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