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인생 54년 만에 가장 뜨거운 인기…“우리 모두가 승자” 등 연륜 묻어나는 어록 화제
오영수는 1967년 극단 광장에서 연기를 시작해 6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무려 200여 편의 연극을 소화한 연기 장인이다. 지금도 연극 무대를 종횡무진 누비는 대표적인 노배우로 꼽힌다. 주로 연극에 집중하느라 드라마나 영화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았던 그가 ‘오징어 게임’을 만나 인생의 드라마틱한 반전을 맞고 있다.
‘오징어 게임’에서 오영수는 총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게임에 참여한 456명 가운데 1번 참가자 오일남 역을 맡았다. 뇌종양으로 죽음을 준비하는 인생의 마지막 길에서 유년기 추억을 떠올리려 게임에 참여한 인물이다. 쇠약한 탓에 외면 받는 그에게 유일하게 관심을 쏟는 인물은 참가번호 456번 이정재다. 지혜와 인간애를 나누면서 우정을 쌓아가는 두 사람의 관계는 잔혹한 게임이 판치는 드라마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이들의 활약이 뭉클한 감동을 자아낸 덕분에 해외 팬들로부터 ‘K 신파’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하게 만들었다. 하이라이트인 구슬치기 장면에서 오영수가 이정재에게 “우린 깐부잖아~”라고 읊조리는 대사는 ‘오징어 게임’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각광받고 있다.
#‘K 신파’ 신조어 탄생 이끈 주역
오영수는 ‘오징어 게임’ 이전에는 주로 ‘스님 전문’ 배우로 익숙했다. 54년에 이르는 연기 경력에 비해 영화나 드라마 출연 횟수가 워낙 적은 데다 그나마 출연한 작품들에서 대부분 스님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시작은 고 김기덕 감독의 2003년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다. 노스님 역할을 맡아 깊은 인상을 남긴 그는 같은 해 영화 ‘동승’에서도 큰스님 역할을 소화했다. 이후 MBC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월천대사, 2012년 드라마 ‘무신’에서도 수기 스님 역을 연기했다. 단막극인 KBS 2TV 드라마스페셜 ‘불이문’에서도 노스님을 맡았다. 탁월한 연기력에 외모까지 더해져 ‘진짜 스님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오영수가 ‘오징어 게임’에 참여한 건 연출자인 황동혁 감독의 뜻이었다. 황 감독은 전작인 영화 ‘남한산성’에 오영수에게 출연을 제안했었다. 당시 일정이 여의치 않아 참여할 수 없었던 오영수에게 황 감독은 ‘오징어 게임’을 준비하면서 주인공 오일남 역할을 재차 제안했다. 오영수 역시 드라마 대본을 읽고 흔쾌히 출연에 응했다. 독특한 장르의 드라마이지만 경쟁 사회를 비유한 작품의 메시지에 공감한 덕분이다.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에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지만 작품 공개 초반 오영수의 존재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넷플릭스가 스포일러를 경계해 일정 기간 오영수에게 언론 접촉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가장 충격적인 반전을 만드는 인물인 만큼 넷플릭스로서도 작품이 공개되고 일정 기간이 지날 때까지 오영수를 베일에 가려 두었다.
오영수의 활약에 해외 팬들은 열광한다. 특히 ‘깐부’ 에피소드로 꾸려진 ‘오징어 게임’ 6회를 두고 미국 포브스는 ‘올해 TV 드라마 중 최고’라고 꼽았다. ‘오징어 게임’을 보고 울었다는 해외 팬들의 리액션이 SNS 등을 꽉 채운 가운데 ‘K 신파’라는 신조어 탄생을 이끈 주역도 다름 아닌 오영수다.
#50년간 연극 외길…어록 화제
달라진 인기를 실감하기는 오영수도 마찬가지다. 가는 곳마다 알아보는 사람이 늘었다. 20대 팬들은 그를 ‘깐부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최근에는 SNS 개설 소동도 겪었다. ‘오징어 게임’에 출연한 이정재, 정호연 등 배우들의 SNS 팔로어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가운데 오영수의 SNS가 등장해 주목받았기 때문이다. 이 계정에는 ‘오징어 게임’의 오영수라는 내용의 ‘Hello. YS Oh from Squid Game’이라는 소개글과 사진들도 게재됐다. 인기를 증명하듯 개설 직후 팔로어 수가 7만 명을 돌파할 만큼 주목받았지만, 이는 오영수가 아닌 팬들이 만든 계정으로 밝혀졌다.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오영수는 얼마 전 깐부치킨의 광고모델 제안을 거절해 화제를 모았다. 깐부치킨은 ‘오징어 게임’ 신드롬으로 ‘깐부’(어린 시절 새끼손가락 마주 걸어 편을 함께하던 짝꿍을 뜻하는 우리말)라는 단어가 인기를 끌자 오영수에게 모델을 제안했다. 하지만 오영수는 드라마에서 중의적인 의미로 사용된 ‘깐부’라는 단어의 좋은 면만 부각할 수밖에 없다는 뜻에서 광고를 거절했다. 대신 공익광고 등에는 기꺼이 출연할 뜻이 있다고 밝혔다.
연륜이 묻어나는 어록도 화제다. 최근 MBC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 출연한 그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따뜻한 조언을 건넸다. “우리 사회가 1등 아니면 안 되는 것처럼 흘러간다”며 “하지만 2등은 1등에게 졌지만 3등에게는 이겼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가 승자”라고 말했다.
54년 동안 연극배우로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빗댄 이야기도 풀어냈다. “진정한 승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애를 쓰고 내공을 가지고 어떤 경지에 이르려는 사람”이라며 “그런 사람이 바로 승자”라는 말이다.
한편 ‘오징어 게임’은 잦아들지 않는 인기로 전 세계 신드롬을 공고히 하고 있다.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많은 시청자가 관람한 메가 히트작에 등극한 이후 그 가치에 대한 각종 평가와 후속 성과도 이어지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10월 17일 넷플릭스가 ‘오징어 게임’으로 창출한 가치를 8억 9100만 달러(약 1조 원)로 예측했다. 전 세계 1억 3200만 명이 최소 2분 이상 ‘오징어 게임’을 시청했고, 모든 시청 시간을 합치면 14억 시간에 달한다는 집계도 나왔다. 햇수로 따지면 무려 15만 9817년이다.
이해리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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