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성·안현수·임효준 그리고 심석희까지…“고질적인 파벌 영향 부정할 수 없어”
#심석희, 대화 유출 파문으로 커리어 '빨간불'
심석희는 '천재 스케이터'로 불렸다. 만 15세의 나이에 주니어 세계선수권에 나서 종합 우승을 차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2014 소치동계올림픽에서도 심석희에게 눈길이 쏠렸다. 대회 전 열린 국가대표선발전에서 심석희는 1위를 차지했다. 실제 올림픽 경기에서도 만 17세답지 않은 기량을 선보이며 금, 은, 동메달을 각각 한 개씩 따냈다.
3000m 계주에서 활약이 백미였다. 선두로 달리던 당시 대표팀이 경기 막판 중국에 밀려 2위로 처졌지만 반 바퀴를 남긴 시점 마지막 주자로 나선 심석희가 역전승을 일궈냈다. 심석희는 이 경기를 통해 대중에게 자신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분노의 질주', '전광석희'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이 경기 덕분이었다. 4년 뒤 평창에서도 심석희는 계주 금메달을 커리어에 추가했다.
욕설 및 승부조작 의혹이 공개된 건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을 약 4개월 앞둔 시점. 앞서 조재범 전 코치의 성폭행 사실을 폭로했던 심석희는 국가대표 선발전(2019-2020시즌)에 불참하며 성인 무대 데뷔 이후 최초로 대표팀 자리를 내려놓은 바 있다. 다시 돌아온 2021-2022시즌 대표 선발전에서 보란 듯이 1위에 오르며 다시 한 번 기대감을 높이고 있었다. 커리어 세 번째 올림픽에서도 호성적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사생활 관련 폭로가 터져 나오며 빨간불이 켜졌다.
#악재 이어진 김동성
김동성도 올림픽 등에서 활약으로 가장 사랑받는 쇼트트랙 선수 중 한 명이었다. 김동성은 1998 나가노동계올림픽에서 짜릿한 '날 내밀기'로 극적으로 금메달을 획득하며 스타 반열에 올랐다.
김동성이 두 번째로 나선 올림픽인 2002 솔트레이크시티동계올림픽에서는 불운이 찾아왔다. 과격한 몸싸움이 난무하면서 1000m와 5000m 계주 결승 진출에 실패했지만 김동성은 1500m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각오를 다지고 나선 1500m 결승에서 김동성은 1위로 골인했지만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 그 유명한 '오노 사건'이 터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아폴로 안톤 오노가 선두로 달리던 김동성과 충돌한 듯한 액션을 취했고 심판 판정 결과 김동성은 실격으로 처리됐다.
이 때문에 비록 솔트레이크시티올림픽을 '노메달'로 마무리했지만 김동성에게는 오히려 반전이었다. 오심 논란 덕분(?)에 김동성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고 그는 쇼트트랙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올림픽 이후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전 종목을 석권하며 실력을 입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김동성의 선수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실업팀 입단 이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고 연예계 활동을 도모하기도 했다. 부상으로 제 기량을 펼치지 못하는가 하면 빙상연맹이 '추천선수'로 김동성을 대표팀에 넣으려 했지만 지도자와 갈등을 벌였다. 결국 그는 세 번째 올림픽을 선수가 아닌 해설위원 자격으로 함께 했다.
선수생활을 마무리한 이후에도 김동성이 걷는 길은 잡음투성이였다. 미국에서 코치 생활을 하던 중 제자 폭행 의혹에 휘말렸고(무죄 판결로 마무리) 2016년에는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이름이 오르내렸다. 불륜 논란으로 비난의 도마에 오르다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빙상 천재들의 달라진 국적
김동성의 '쇼트트랙 아이콘' 별칭을 이어받은 선수는 안현수였다. 안현수는 만 16세의 나이에 국가대표로 발탁, 2002 솔트레이크시티동계올림픽 무대에 나섰다. 이후 2006 토리노동계올림픽 3관왕(금3 동1), 세계선수권 종합 우승 5연패 등 숱한 기록을 쌓아올렸다. '쇼트트랙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는 평가가 뒤따랐고 세계 모든 빙상계 인사들이 안현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거칠 것 없어 보이던 안현수는 2008년 초 큰 부상을 입으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여파로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은 국가대표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몸담고 있던 실업팀이 해체되는 등 어려움을 겪자 그는 러시아 귀화를 택했다. 커리어 세 번째 올림픽인 2014년 소치 대회에서는 안현수는 러시아 선수 '빅토르 안'이라는 이름으로 3관왕(금3 동1)을 이뤄냈다.
빅토르 안이라는 이름과 러시아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것을 두고 국내에선 옹호와 비판이 엇갈렸다. 러시아 진출을 준비하던 시점을 전후로 그는 "대한민국 국적 상실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해명했지만 '처음부터 러시아 대표 합류를 계획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파벌 싸움에 밀려 러시아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이 일자 '한때는 그도 파벌의 수혜자였다'는 비판이 맞붙었다.
새로운 나라에서 여러 혜택을 받았지만 빅토르 안의 러시아 생활은 지속되지 못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도핑 의혹을 겪은 이후 그는 다시 한국으로 향했다. 한국에서 일부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이에 대해 '러시아를 다시 배신했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최근에는 중국 국가대표 코치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민국 남자 쇼트트랙은 2014 소치동계올림픽에서 빅토르 안에 철저히 밀리며 '노메달' 수모를 겪었다. 절치부심한 대표팀은 평창에서 열리는 2018 대회에 승부수를 띄웠다. 그 선두주자로 꼽힌 인물은 임효준이었다. '제2의 안현수'로 불리던 임효준은 평창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과 동메달 한 개씩을 목에 걸며 기대에 부응했다. 대회 당시 22세에 불과했기에 앞으로 활약을 기대케 했다.
하지만 그의 선수생활도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진천선수촌 내 훈련 중 '동성 후배 성희롱 논란'에 휘말리며 '국가대표 자격정지 1년' 징계를 받은 것이다. 이후 성희롱 건은 형사 재판까지 이어졌고 임효준은 중국으로 귀화를 추진했다.
'린샤오쥔'이라는 중국 이름으로 중국 대표팀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2022 베이징올림픽 참가는 불투명하다. 이전 국적으로 국제대회에 출전한 이후 3년이 지나야 귀화한 국적으로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다는 올림픽 헌장에 가로막혔다. 올림픽 출전을 위해 던진 승부수가 통하지 않은 것이다. 이외에도 병역의무 의혹, 귀화 과정에서 거짓말 의혹 등이 겹치면서 비난을 받았다.
이처럼 올림픽, 세계선수권 등 국제대회에서 맹활약하며 국민들의 사랑을 받던 '빙상 천재'들 중 적지 않은 선수가 추락을 경험했다. 빙상계 한 관계자는 "물론 각자 개인이 잘못된 순간의 선택으로 어려움을 겪은 면이 있다"면서도 "그러나 빙상계 고질적인 문제인 '파벌'의 영향도 부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희망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앞으로는 바뀔 여지가 충분한데, 절대적인 권력을 휘둘러왔던 인물들이 평창올림픽 이후 그 힘을 잃었기 때문"이라며 "요즘 선수들이 과거에 비해 선수생활을 오래 지속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은 빙상계 분위기가 이전과 다르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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