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부문의 심사를 거쳐 최종적으로 최우수 작품상을 선정할 땐 더욱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진다. 여우주연상, 남우주연상, 신인상, 감독상, 기술상 등은 작품에 참여한 개별 연기자나 스태프, 그리고 감독들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그러나 최우수 작품상은 다르다. 영화상의 백미이자 개별 영화인이 아닌 영화에 참여한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상이다. 그렇기에 심사할 때마다 중압감을 벗어날 수 없다. 후보로 올라온 작품들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해야 하는 까닭이다.
최우수 작품상 기준은 다양하다. 영화사적인 의미가 있는지, 기술적 진보를 이뤘는지, 한국 영화 외연을 확장하는 데 이바지했는지, 새로운 장르나 주제를 다루는 도전정신이 있는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는지 등을 살펴본다. 그래서 최우수 작품상은 그해 흥행이 가장 잘된 영화보다 의미와 가치가 있다. 대부분 후대에까지 꼭 봤으면 하는 작품들이 선정된다.
오랜 시간 심사를 하다 느낀 점이 있다. 최우수 작품상 후보작들을 두루 살펴볼 땐 고민이 더욱 깊어진다는 점이다. 후보로 올라온 5편 내외 작품들의 우열을 가리기가 어렵다. 어떤 작품을 선정해도 최우수 작품상으로 손색이 없다. 최종적으로 한 작품만 선정해야 한다는 것이 잔인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심사위원들은 오랜 시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행복한 고민이다.
한 해를 대표하는 작품들이 모두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다 보니 심사위원들은 밤을 새워 고민해도 고통스럽지 않다. 고민을 통해 선정한 작품이 앞으로도 영원히 많은 사람을 위로하고 삶을 되돌아보게 만들며 또 다른 영감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한 마음으로 ‘선정의 고통’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해마다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해에 후보로 선정된 작품들이 그 어떤 것도 최우수 작품상으로 선정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최우수 작품상으로 선정되는 작품은 역사 속 그해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남는다. 그런데 그 작품의 가치와 의미가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이 될 때엔 ‘내가 왜 심사위원을 수락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후대에 많은 영화 애호가가 “저런 게 무슨 작품상 감이나며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심사를 했냐”고 조롱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잠을 이룰 수 없는 나날을 보낸다. 차라리 최우수 작품상은 ‘해당작 없음’이라고 발표하면 어떨까라는 생각까지 들 때가 있다. 그럴 땐 불면의 밤이 늘어간다. 동시에 나 자신에게 심사위원 자격이 있는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성인이 되고 직접선거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투표권을 가진 뒤 8번째 대통령을 뽑아야 할 때가 다가온다. 영화제 최우수 작품상은 1년이라는 시간을 기준으로 영화들을 심사한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에선 한 인간이 걸어온 모든 삶과 대한민국을 이끌 비전을 심사하게 된다. 그것도 5년에 단 한번만 선택할 수 있다.
대통령 선거는 영화제처럼 해마다 개최되지 않는다. 국민이 한번 심사를 하면 5년 동안 선택된 사람이 리더로서 대한민국과 국민들을 지도한다. 국가 미래 비전을 책임지고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막중한 자리다. 함부로 심사를 할 수 없다.
투표권을 가진 모든 국민이 다 심사위원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대통령 심사위원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2022년 선정될 대한민국 20대 대통령 후보들은 어떤 삶을 살아왔으며 어떤 미래를 제시하고 있을까. 현재 거론되고 있는 후보들은 심사위원들에게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양극화 문제’, ‘부동산 문제’, ‘격변하는 국제정세’, ‘기후 변화와 환경 문제’, ‘앞으로 대한민국을 이끌 산업 비전’ 등 이슈에 대해 만족스런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가.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지금까지 내 심사표엔 아직 이런 비전과 정책에 대한 확고한 후보들의 의견보다 ‘대장동 의혹’, ‘손바닥 王(왕)자 논란’, ‘형수 욕설’, ‘주가 조작’, ‘돼지 발정제’ 등 단어들만 올라오고 있다. 정말 심각한 상황이다.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국민 삶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더 피폐해지고 불안해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후보들이 미래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제시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주지 않는다면, 대선판 최우수 작품상 심사표엔 ‘해당작 없음’이 적힐 수도 있다.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원동연 영화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