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밥’ 이어 ‘이정재 라면’ 고급화 전략 아직은 물음표…하림 “자연 소재 그대로 만드는 게 전략”
#손수 라면 끓인 김 회장
하림은 최근 ‘더(The)미식 장인라면’을 출시하면서 라면 시장에 진출했다. 대중의 이목을 끄는 데는 성공했다. 출시 행사에서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직접 라면을 끓이는 모습을 보여주는가 하면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주인공 이정재 씨가 광고모델로 등장했다. 하림은 내년 라면 사업 목표 매출을 700억 원으로 설정했다.
더미식 장인라면은 다른 라면에 비해 가격대가 높다. 편의점 기준 봉지라면과 컵라면이 각각 2200원, 2800원이다. 대신 하림은 국물을 통해 다른 라면과의 차별성을 강조한다. 사골·소고기·닭고기 등 육류와 버섯·양파·마늘 등 각종 양념·채소를 20시간 동안 우려내고 농축시켜 액상 수프로 만들었다.
하림은 라면뿐 아니라 HMR 시장에서도 1조 50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하림의 ‘더미식’ 브랜드를 통해 육수, 국탕류, 만두, 스프, 죽까지 다양한 제품을 출시하겠다는 것. 이미 하림은 지난 3월 즉석밥 ‘순밥’을 선보인 바 있다.
이러한 하림그룹의 행보는 다양한 수익 창출원을 확보하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하림의 주요 사업인 닭 가공 사업의 경우 경쟁 업체가 적지 않고, 수입 제품이 늘어나면서 단가가 저렴해졌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하림이) 닭 가공 사업은 잘하지만 내수는 시장이 작고 성장 한계에 직면했다”며 “갑자기 글로벌 진출을 하기에는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내수에서 할 수 있는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을 하는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도는 좋은데 통할까
하지만 하림그룹 신사업의 성공 여부에는 회의론이 나온다. 우선 라면은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것이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졌다. 수십 년간 적지 않은 업체가 라면 사업에 도전했지만 아직도 농심, 삼양식품, 오뚜기 등 주요 업체가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게다가 라면은 대표적인 가성비 식품으로 꼽혀 소비자가 가격이 높은 하림의 라면을 선택할지는 미지수다.
식품업계 다른 관계자는 “라면은 확장하고 있는 시장이 아니라 이미 주요 업체들이 장악한 분야인데 여기서 2000원이 넘는 라면을 내놓은 것치고는 차별성이 부족했다”며 “시중 건면 라면과의 차이점은 액상수프 정도인데 기술적 우위에 있지도 않고 수분이 포함돼 유통 보관 과정에서 파손되면 상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HMR의 경우 이미 시장에 가격 경쟁력과 제품력을 모두 갖춘 상품들이 출시돼 있다. 업계에서는 시중 제품들과 확연히 다른 차별화 포인트를 만들어내기 쉽지 않다고 분석한다. 한 HMR 업체 관계자는 “HMR은 설비투자비용도 많이 들고, 시장에 진출한 업체들이 무척 많은 데다 기존부터 해온 종합식품 기업들의 브랜드와 제품력이 워낙 탄탄하다”며 “이들의 파이를 뺏어가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하림은 순밥 출시 당시 “첨가물(산도 조절제·보존제 등)을 넣지 않고 100% 쌀과 물만 넣었다”고 프리미엄 이미지를 강조했다. 이에 따라 가격은 경쟁 제품인 햇반(1950원), 오뚜기밥(1850원)보다 비싼 2100원으로 책정했다. 그러나 현재 순밥은 시중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인기가 없다.
식품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하림에 비비고나 청정원처럼 인지도 높은 브랜드가 있는 것도 아닌데 프리미엄 전략이 통하기는 어렵다”며 “대규모 자본을 투입해 설비까지 깔았는데 시장 반응이 좋지 않은 만큼 하림 입장에서도 마음이 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하림은 식품소재 사업의 전문성을 살려 종합식품 시장에서도 좋은 성과를 낼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림 관계자는 “어떤 사업이든 리스크는 있지만 즉석밥과 라면, HMR 등의 시장은 하림에 있어 이종 사업이 아니다”라며 “식품소재 사업을 35년 해오면서 밸류체인을 모두 갖춘 만큼 재료부터 시작해 가공하는 마지막 단계까지도 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소재부터 식품까지 전반적인 생산 역량을 다 갖춘 기업은 우리가 유일하다”며 “라면을 화학재료 등 인공적으로 맛을 변형하거나 확장시키지 않고 자연에 있는 소재 그대로 식품을 만드는 것이 하림의 전략”이라고 덧붙였다.
#이미지 개선은 숙제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지난 10월 6일 6년 동안 삼계탕용 닭고기 가격과 출고량을 담합한 닭고기 제조·판매업체 7곳에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는 7개 업체 중 하림과 올품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시장 지배력이 크고, 담합 가담 기간이 길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하림그룹의 일감 몰아주기 혐의도 조사 중이다. 김홍국 회장이 장남 김준영 씨에게 올품 지분 100%를 증여한 후 올품에 일감 몰아주기를 했다는 것. 공정위는 조만간 하림그룹의 제재 여부를 결론지을 예정이다.
하림그룹의 식품 사업은 대표적인 B2C(기업과 소비자 간의 거래·Business to Consumer) 사업이므로 대외적인 이미지가 특히 중요하다. 공정위의 제재가 결정되면 하림그룹 실적에도 영향이 갈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소비재 시장에서는 기업의 도덕성이 사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특히 MZ세대는 착한 소비를 중시해 착한 기업을 선호한다”며 “하림이 생닭 유통 등 B2B 중심에서 라면과 HMR 등 소비재로 사업을 확장하는 만큼 앞으로 공정성 이슈에 더 신경 쓰고 내부 관리를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하림그룹 관계자는 공정위의 일감 몰아주기 조사와 관련해 “제재 받을 일은 한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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