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입대자부터 보훈 대상 제외…국방부 “공개모집 처우 개선” 해명에 “인권 없던 삶 보상” 반발
최근 1인 시위까지 생각한다는 육군 첩보부대(HID) 출신 A 전 중사의 말이다. HID는 소위 ‘돼지부대’라고 알려져 있다. 과거 북파공작원이 현대적으로 개편된 게 첩보부대라고 보면 된다.
국군정보사령부 산하에서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첩보부대는, 크게 육군 첩보부대(HID)와 해군 첩보부대(UDU)로 분류된다. 영화 ‘아저씨’에 나온 원빈의 과거가 UDU 출신으로 설정돼 있다. 과거 북파공작원과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HID나 UDU는 강도 높은 훈련이 필요하고 실제로 받고 있다. 원빈의 영화적 액션을 설명하는 배경으로 UDU를 채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채널A ‘강철부대’가 인기를 끌고 있지만 HID, UDU 부대가 출연하는 건 볼 수 없다. 훈련 강도가 가장 높을 것으로 인정받는 이 부대원들이 방송에 출연하지 못하는 건 군사 기밀 유출 우려 때문이라고 한다. 최근 ‘강철부대2’ 제작 소식이 알려지면서 군에서 첩보부대원들에게 ‘강철부대2’ 역시 출연하지 말라는 통보가 왔다고 한다.
첩보부대는 간부급으로만 부대를 구성하지만 대부분 내무반 생활을 한다. 간부지만 휴대전화 등도 소지할 수 없고 통장도 빼앗긴다. 외부와의 연락도 통제된다. A 전 중사는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외출도 불가능했다. 휴가도 1년에 1주일뿐이다. 훈련은 매일, 매주, 매달 혹독하게 관리된다. 구타, 가혹행위는 당연한 일상이었다. 인권이 없는 곳이다”라고 말했다. A 전 중사는 “다만 최근에는 부대원이 휴대전화는 소지할 수 있도록 바뀌긴 했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이 특수임무수행 부대가 현재까지도 운영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과거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도 이를 착오한 바 있다. 2008년 진 전 교수는 특수임무수행자회가 서울시청 광장에서 추모제를 여는 바람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장소가 바뀐 것을 비판하는 칼럼을 썼다. 이 칼럼에서 진 전 교수는 특수임무수행자회에 1981년생이 참여한 것을 두고 참여자 신상에 대한 의구심을 표한 바 있다.
진 교수의 의구심과 달리 이들은 최근까지도 새로 모집돼 훈련을 받았다. A 전 중사도 2000년대 중반 입대자로 4년 5개월 훈련을 받고 장기 복무를 선택했다. 그런데 특수임무수행자 내부에서 곪았던 갈등이 터지고 있다. 바로 2002년 입대자인지, 2003년 입대자인지에 따라 보훈 대상인지 아닌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법으로 인해 2002년까지 입대자는 소정의 보상금도 받을 수 있었지만 2003년 이후 입대자는 보훈병원조차 이용할 수 없다.
특수임무수행자보상에관한법률에 따르면 ‘특수임무수행자’를 1948년 8월 15일부터 2002년 12월 31일 사이에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간 중 군 첩보부대에 소속되어 특수임무를 하였거나 이와 관련한 교육훈련을 받은 자로 정의한다. 이 기간도 2007년 법 개정으로 인해 기존에 비해 보상자가 늘어난 것이다. 원래 육군의 경우 1951년 3월 6일부터 1994년 12월 31일까지, 해군은 1949년 6월 10일부터 1993년 12월 31일까지였다.
이렇게 법 개정이 되자 당연히 2002년 이전 입대자와 2003년 이후 입대자 사이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최근 2003년 이후 입대자들은 소셜미디어(SNS)에서 모여 특수임무수행자 인정 기간을 늘리는 운동을 시작하기로 했다. 여기에 A 전 중사가 앞장서고 있다.
과거 북파요원들은 2000년대 초반 “우리의 한 맺힌 인생을 보상하라”며 가스통을 들고 나오는 등 법률 개정을 위해 격렬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번에는 A 전 중사처럼 젊은 첩보부대원들이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국방부 측은 입대시기로 첩보부대원들 희비가 엇갈리는 것에 대해 “법에 규정돼 있기 때문에 그에 맞게 보상을 해줄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2002년까지 모병 형태도 공개적이지 않았고 처우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던 것도 있었다. 반면 2003년부터는 공개적으로 모집했고 처우도 제대로 지급했기 때문에 따로 법령으로 보상받는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알고 있다”고 부연했다.
이에 대해 A 전 중사 등 첩보부대원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2002년 입대자와 2003년 입대자가 같이 내무반 생활을 했고, 공개 모집 여부도 그때그때 달랐다는 것이다. 또 다른 HID 부대 출신 B 전 중사도 “같은 군생활을 한 만큼 처우도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고 말했다.
B 전 중사는 “HID 부대원을 모집하는 부사관을 물색관이라고 한다. 2002년까지는 물색관이 다니면서 암암리에 모집했다. 이후 공개로 전환됐다가 다시 2010년대 초반부터 비공개 모집으로 전환됐다. 이들은 특전사에 가고 싶은데 갈 수 없는 등의 사람을 찾아 HID에 입대시켰다”고 말했다. 공개 여부만으로 보훈 문제를 가를 수 없다는 것이다.
A 전 중사도 “공개모집이었다고 해도 포스터 하나 붙어 있다. 포스터 보고 지원했으니 네 책임이라고 하기에는 포스터로 모든 게 설명되지 않은 세상이었다. 인권이 없는 삶이었다”고 말했다. 첩보부대원들이 증언하는 훈련이나 내무 부조리는 상상을 초월한다. B 전 중사는 “차가운 얼음물에 오랜 시간 버텨야 하는 '빵빠레'라는 가혹 행위가 있다. 얼음물에 들어가 있다 보면 고환이 아랫배로 말려 들어가 엄청난 통증이 발생하여 손으로 고환을 잡아당겨 빼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구타, 가혹행위는 일상이었다고 했다.
A 전 중사는 “2018년도쯤 국방부에 ‘출퇴근 없이 4년 반 훈련만 받으면 돈 많이 주는 부대가 있는데 법적으로 문제 없냐’는 민원이 접수됐다고 한다. 국방부에서는 이렇게 부대 운용을 하는 곳이 있는지 확인한 결과 국군 정보사령부 산하 HID, UDU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국방부 회의 결과 인권 문제가 있어 법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정보사로 공문을 보냈다고 한다. 당장 대원들에게 통장을 돌려주고 대원들 전부 출퇴근시키고 관사를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최근 부대가 개편된 게 이런 일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A 전 중사는 “우리는 최소한의 인권도 보장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북한으로 가라는 말 한마디면 북한으로 갈 각오로 매일 훈련했다. 훈련 강도가 너무 세 제대 후에도 온 몸이 아프다. 미군처럼 존경해달라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그런데 2002년 입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훈병원조차 가지 못하는 현실을 바꾸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곧 1인 시위 등의 방법으로 법 개정 움직임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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