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만수·LG 박용택 밀어주기 꼼수로 ‘빛바랜 타격왕’ 등극…과열 경쟁에 팬들 상처 입어
'밀어주기'의 원조는 1984년 삼성 라이온즈였다. 당시 4번 타자 이만수가 홈런왕과 타점왕을 확정하자 '트리플 크라운' 달성을 위해 시즌 막바지 타율 관리에 돌입했다. 삼성은 행여 이만수의 타율이 떨어질까봐 아예 경기에 내보내지 않는 방법을 택했다. 그러나 롯데 자이언츠 홍문종이 시즌 후반 맹타를 휘두르면서 이만수의 타율에 1리 차로 따라붙었고, 결국 삼성은 시즌 최종전인 롯데와 2연전에서 홍문종을 9타석 연속 볼넷으로 걸렀다.
타격왕에 도전할 기회를 잃어버린 홍문종은 타율 0.339로 시즌을 마쳤고, 이만수는 0.340의 타율로 1위를 지켰다. 그해 이만수의 트리플 크라운에 여전히 오점이 남아 있는 이유다.
2009년 LG 트윈스도 당시 간판타자였던 박용택에게 타격왕 타이틀을 안겨주기 위해 같은 방법을 썼다. LG는 그해 롯데 자이언츠의 시즌 최종전 상대였는데, 하필 당시 롯데 소속이던 홍성흔이 경기 전까지 타격 1위 박용택을 타율 2리 차로 추격한 상황이었다. 홍성흔이 이 경기에서 2안타 이상을 치면 역전까지 가능했다. 그래서인지 홍성흔은 경기 전 "(제리 로이스터) 감독님께서 '상대방이 절대 좋은 볼을 안 줄 테니 무조건 볼도 안타로 만들라'고 하셨다. 오늘의 목표는 볼만 치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실전은 홍성흔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홍성흔이 7회까지 네 번 타석에 서는 동안 공 17개가 날아왔는데, 그중 16개가 볼이었다. LG 투수들은 다양한 방향으로 스트라이크존에서 한참 벗어나는 볼을 던졌다. 치고 싶어도 칠 수 없는 코스. 이쯤 되면 스트라이크 한 개가 오히려 '실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 하나가 포수 미트에 꽂힐 때마다 3루 쪽 롯데 관중석은 야유로 뒤덮였고, 1루로 향하는 홍성흔의 얼굴에는 허탈한 웃음이 번졌다.
당시 LG 사령탑이던 김재박 감독은 취재진이 박용택을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한 이유를 묻자 "예전에는 이보다 더한 밀어주기도 있었다"고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1984년 삼성의 사례를 암시한 것이었다. 하지만 김재박 감독은 그로 인해 이만수가 영원히 '정면승부를 피한 타격왕'으로 기억된 건 잊었다. LG는 9회 2사 후 홍성흔의 마지막 타석이 돌아온 뒤에야 비로소 '칠 만한' 공을 던졌다. 홍성흔이 안타 1개로는 박용택을 추월할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어서다. 그리고 LG는 결국 경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박용택을 단 한 타석도 내보내지 않았다. 김 감독은 "박용택이 선수 생활을 하면서 쉽게 맞이하기 힘든 기회라 도와주고 싶었다"고 했다.
박용택은 결국 타율 0.374를 유지하면서 생애 첫 타격 1위에 올랐다. 이어 "자기 일처럼 격려해주고 도와준 코칭스태프와 동료 선수들에게 고맙다. 홍성흔 형이 좋은 경쟁자가 돼줘 여기까지 온 것 같다"는 소감을 밝혔다. 홍성흔도 "이전 3경기에서 너무 못 쳤던 내 탓이다. 박용택의 타격왕 등극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화답했다.
하지만 논란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박용택은 결국 LG 공식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을 올려 "올 시즌은 스스로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완벽했는데, 마지막 순간 '어떻게든 타이틀을 갖고 싶다'는 욕심이 앞서 잘못된 선택을 했다"며 "야구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잠시 잊고, 정정당당한 승부로 팬들에게 감동을 전해야 하는 프로 선수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깊이 사과했다.
박용택은 또 "감독과 동료 선수들은 내가 얼마나 고생했고 노력했는지, 또 얼마나 간절하게 (타격왕을) 원하는지 알기에 잘못된 선택인 줄 알면서도 내가 원하는 대로 도와준 것이다. 비난을 받은 LG 식구들에게도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김재박 감독도 이후 "우리 팀 선수가 잘 되길 바라는 단순한 마음에 그렇게 했다. 깨끗한 야구가 아니었다"고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용택은 마흔이 넘어서까지 선수생활을 지속했지만 은퇴하는 순간까지 '타격왕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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