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에서 배우 겸 모자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코트니 플레밍(25)에게 런던 여행은 벌써 이번이 세 번째다. 2년 전부터 매년 여름마다 런던을 찾고 있는 그녀의 목적은 오직 하나. 해리 왕자를 만나서 기필코 데이트를 해보겠다는 것이다.
그녀는 영국으로 날아오기 전에 이미 여러 블로그를 통해 해리 왕자가 어느 클럽의 단골인지, 주로 어디서 뭘 하는지 등의 정보를 알아냈다. 더 나아가 영국 귀족 가문의 자제들이 모이는 곳이 어디인지, 또 그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행사가 언제 어디서 열리는지도 철저히 알아두었다.
이런 노력 덕분에 한번은 런던의 유명한 ‘마히키 클럽’에서 직접 해리 왕자를 보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하지만 직접 대면할 기회를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언제나처럼 해리 왕자는 여러 여성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생각했던 것보다 경쟁자들도 훨씬 많았다.
왕자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서 가슴골이 깊게 파인 섹시한 드레스를 입었지만 그날 밤이 다 가도록 플레밍은 해리 왕자로부터 눈길 한번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실망하지 않고 있는 그녀는 “언젠가 노력이 결실을 맺을 것이라 믿는다. 만일 실패하면 ‘플랜 B’도 준비해 놓았다”고 말했다. ‘플랜 B’란 또래의 다른 영국 귀족과 만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플레밍처럼 공주가 될 꿈을 품고서 대서양을 건너오는 미국의 젊은 여성들은 의외로 많다. 어떤 여대생들은 교환학생 자격으로 건너와 장기간 머물기도 하고, 또 어떤 여성들은 개인 돈으로 여행을 와서 머물다 가기도 한다.
조지메이슨대학에 다니는 테일러 매킨리(21) 역시 해리 왕자의 신부가 될 꿈을 품고 교환학생 자격으로 영국으로 건너왔으며, 얼마 전부터 런던 근교에 있는 레스터대학에서 학기를 시작했다. 여고 시절부터 이미 공주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해왔던 그녀는 심지어 남학생들의 데이트 신청도 “왕족이 되기 위해선 참아야 한다”며 거절했다. ‘폐하’ ‘왕족’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잡지는 모두 읽었으며, 왕실의 역사도 열심히 공부해서 이미 훤히 꿰뚫고 있을 지경이다.
물론 ‘해리 사냥’에 나선 것은 비단 미국 여성뿐만 아니다. 영국 여성들 사이에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팽배해 있긴 마찬가지다. 영국에서는 주로 귀족 가문이나 상류층 자녀들이 ‘해리 사냥’에 더 적극적이며, 이들에게 ‘해리 사냥’은 진지하다기보다는 일종의 게임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더 많다. 즉 결혼보다는 흥미로 쫓는 경향이 더 강하다.
이들이 사냥터로 주로 활용하고 있는 곳은 해리가 자주 드나드는 회원제 나이트클럽이다. 이들의 사냥은 늦은 밤 켄싱턴과 벨그라비아 등지의 고급 아파트에 삼삼오오 모여서 문자 메시지를 기다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문자 메시지는 해리 왕자의 가까운 친구들이 런던 곳곳에 대기하고 있는 수십 명의 여성들에게 동시에 전송하는 것으로, 주로 해리 왕자의 행방을 암호로 나타낸 것이다.
가령 ‘H@M no C’가 그것인데 이를 해석하면 ‘해리 왕자, 마히키 클럽 도착. 첼시는 없음’이라는 뜻이다. ‘첼시’는 해리 왕자가 5년여 동안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했던 여자친구인 첼시 데비를 가리킨다.
이런 문자 메시지를 받으면 대기하고 있던 여성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면서 화장을 하고 옷을 차려입은 후 황급히 해리 왕자가 있는 클럽으로 향한다. 보통 한 번에 30명 정도가 모여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여성들은 대개 지역의 영향력 있는 가문의 딸이거나 상류층 자제들이다. 마히키 클럽의 한 손님은 “그녀들은 왈가닥이고, 미인이긴 하지만 버릇이 없는 경우가 많다. 어려서부터 갖고 싶은 건 무엇이든 다 가질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모두들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해리 왕자와 사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들이 원하는 건 돈이 아니다. 돈은 이미 충분히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보통 클럽에서 한 병에 1만 2000파운드(약 2000만 원) 하는 샴페인을 마시거나 한 잔에 300파운드(약 53만 원) 하는 칵테일을 마실 정도의 재력은 너끈히 갖추고 있다. 또한 대부분 최상류층 자녀들이 다니는 사립학교를 졸업했고, 부모들끼리는 서로 알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이렇게 부족할 것 없는 이들에게 ‘해리 사냥’은 일종의 스릴 넘치는 스포츠 경기에 가깝다. 해리 왕자를 유혹하는 데 성공하면 뛸 듯이 기뻐하면서 뭔가를 해냈다는 생각에 우쭐해 하곤 한다.
수십 년째 런던에서 회원제 고급 클럽을 운영하고 있는 부모를 둔 도나텔라 파네이오투(24)는 “나 역시 주변 친구들처럼 일주일에 4일 정도는 런던 최고의 클럽에서 VIP 대접을 받으면서 시간을 보낸다”면서 “클럽에 갈 때마다 거의 매일 밤 윌리엄과 해리 왕자를 만났다. 모든 여자들이 왕자들과 어울리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왕자들과 어울리는 것이 꼭 신분 상승을 위해서만은 아니라고 말했다. 자신을 비롯한 친구들은 축구선수 부인을 일컫는 ‘왁스(WAGs)’가 되고자 기를 쓰는 여성들을 일컫는 ‘와가비스(Wagabes)’와는 다르다고 말하면서 “나와 내 친구들은 대부분 좋은 가문의 자녀들이다. 왕실에 목숨을 걸진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이들에게는 정말 기회가 있는 걸까. 만일 있다면 어느 정도일까.
이에 대해 왕실 전문가들은 비교적 회의적인 입장이다. 이처럼 클럽을 돌아다니면서 우연히 해리 왕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여성들에게는 아마도 쉽게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 그보다는 명문가나 귀족 가문의 자녀들 가운데 오래 전부터 자연스런 왕래를 통해 해리 왕자를 알고 지냈던 여성들 가운데서 신부가 탄생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점치고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