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대 49 싸움서 5% 후보들 캐스팅보트…보선 및 지방선거 맞물려 ‘전략적 딜’ 불가피
잔잔하지만 작지 않은 변수다. 큰 폭풍을 일으킬 트리거(방아쇠)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역대급 비호감 후보가 차고 넘치는 내년 3·9 대선에선 이 변수가 ‘게임 체인저’로 부상할 수 있다. 골리앗인 여야 1위 주자(이재명·윤석열)의 뒤를 쫓는 ‘다윗’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 얘기다. 거대 양당과 제3지대 후보의 물고 물리는 먹이사슬 관계는 대선 막판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2022년판 다윗과 골리앗 싸움의 빗장은 열렸다.
“대형 악재가 될 수도 있다.”
다윗(안철수·심상정) 변수를 본 거대 양당(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 관계자들이 던진 말이다. 범진보와 범보수의 51 대 49 게임에선 5% 안팎 군소 후보가 판을 결정지을 가능성이 크다. 러닝메이트를 못 이뤄내는 쪽이 필패한다는 의미다.
여야 전략통들은 애초 내년 3·9 대선에 대해 “반집 승부인 계가 싸움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맞붙었던 2012년 대선의 확장판이라고 본 것이다. 당시 문 대통령(48.0%)과 박 전 대통령(51.6%)이 얻은 득표율은 99.6%에 달했다. 3위는 무소속으로 출마한 강지원·김순자(이상 0.2%) 후보였다. 혜성처럼 등장했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문 대통령과의 야권 단일화 협상 과정 중 사퇴했다. 이정희 당시 민주노동당(현 진보당) 후보도 중도 사퇴를 택하며 문 대통령을 사실상 지지했다.
이번 판도 양자 구도가 될 것이란 예상이 우세했다. 문재인 정부 내내 검찰개혁 등을 둘러싼 진영 갈등이 계속됐다. 이 과정에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과 확증 편향 프레임은 최고조에 달했다. 3지대 잠룡군 중 한 명이었던 안철수 대표 위상은 정치 입문 이래 가장 저점을 형성했다.
정의당 대선 경선에서 결선투표까지 갔던 심상정 후보(51.12%)와 이정미 전 의원(48.88%)의 격차는 2.24%포인트에 불과했다. 진보진영 내부에서조차 “심상정이 이긴 경선판에서 웃은 자는 이정미”라는 말까지 나왔다. 진보의 상장인 심 후보의 파괴력도 예전만 못하다는 뜻이다. 여야 공히 “이번 대선은 기승전·진영싸움”이라고 한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그런데 변수가 튀어나왔다. 여야 1위 대선주자의 역대급 비호감도다. 양강 구도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국민의힘 예비후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각각 대장동 특혜 의혹과 고발사주 의혹에 휩싸이면서, “차라리 제3후보에게 힘을 싣자”는 유권자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양강 주자의 비호감도는 호감도 대비 두 배가량 많다. 이는 지지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 10월 3주 차(19∼21일 조사, 22일 공개) 결과에 따르면 4자 가상대결 A(국민의힘 후보 윤석열)에서 안철수 대표(9%)는 두 자릿수 지지도에 육박했다. 심상정 후보는 7%를 차지했다. 의견 유보층은 18%였다. 이재명(34%) 윤석열(31%) 후보 합은 65%였다.
4자 가상대결 B(국민의힘 후보 홍준표)에서도 안 대표(10%)와 심 후보(8%) 지지도 합은 20% 선에 근접했다. 의견 유보는 19%였다. 이재명(33%)·홍준표(30%) 후보의 합은 63%로 집계됐다. 여야 대선 후보로 누가 나와도 유권자 10명 중 최소 3명 이상은 대선 1∼2위 주자를 비토하는 셈이다(자세한 사항은 여론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고).
양강 주자의 비호감도 상승은 ‘이재명·윤석열(홍준표) 지지도 하락→후보교체론 부상→여야 내부 권력암투 가속→제3후보 대망론→다자 구도’ 등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사실상 양자 구도였던 내년 3·9 대선은 4자를 포함, 다자 구도로 확대된다. 여야 모두 후보 단일화를 비롯해 빅텐트를 위한 선거 전략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얘기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민주당과 국민의당 중 누가 안철수·심상정을 잡느냐에 따라 막판 판세가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특히 내년 3·9 대선이 보궐선거·지방선거와 연동되면서 거대 양당의 고민은 한층 깊어졌다. 후보 단일화를 양보한 측에 보궐선거와 지방선거 공천권 등을 놓고 전략적 딜(거래)이 불가피해서다. 앞서의 정치권 관계자는 “후보 단일화를 넘어 통합까지 이어진다면, 셈법은 더욱 복잡해질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 캠프 인사들도 ‘정치 1번지’ 서울 종로 보궐선거 후보에 대한 적잖은 고민을 드러냈다. 임종석 전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종로 보궐선거 후보로 거론되지만 “필승 카드가 없다”는 우려가 여권 수뇌부에도 공유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최근 급부상한 임종석 카드에 대해 “확장성이 있겠나. 우리에겐 임나땡(임종석 나오면 땡큐)”이라고 말했다. 박영선 전 장관은 종로 보궐선거보다는 서울시장 선거에 재도전할 것으로 보인다. 여권이 때 아닌 인물난에 시달리자, 보수 쪽으로 기운 김동연(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영입설, 정세균(전 국무총리) 차출설 등이 끊이지 않는다.
그사이 야권은 ‘이준석 차출설’에 군불을 지피면서 패를 하나 더 늘렸다. ‘상계동 당선이 꿈’이라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10월 26일 YTN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에 출연, “민주당에 전략적 모호성을 줘야 되지 않겠는가”라며 출마 가능성을 시사했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애초 불출마에서 고민으로 선회한 것”이라고 했다. 여권 한 관계자는 “2030세대에 약한 우리에겐 안 좋은 시그널”이라고 우려했다. 민주당 대선캠프에서 활동했던 한 인사도 “대선 후보 러닝메이트로 이준석(종로) 조은희(서초갑) 카드라면, 민주당의 상당한 고전이 예상된다”고 했다.
거대 양당이 제자리를 못 찾는 사이 3지대 움직임은 빨라졌다. 특히 역대급 비호감 대선으로 거대 양당에 대한 비토 심리가 강하자 군소 정당 내부에선 “한번 해볼 만하다”는 기류도 읽힌다. 양당 승부를 결정할 캐스팅보트 역할에 힘이 실리기 때문이다. 관전 포인트는 안 대표와 심 후보의 최종 선택지다. 이들의 대선 완주 여부에 따라 ‘진보 분열 vs 범보수 통합’, ‘범진보 통합 vs 보수 분열’ 등의 구도가 고착될 수도 있다. 다윗을 품지 못한 후보는 필패할 수 있다는 뜻이다. 대선 끝자락에서 ‘승자독식을 위한 묻지마 연대’가 판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다시 대선 출발선에 선 안 대표는 독자 출마 이후 야권 단일화 협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앞서 그는 지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도 오세훈 서울시장과 손을 맞잡고 10년 만에 서울을 탈환했다. 국민의힘조차 “안 대표 결단이 아니었으면 패했을 것”이라고 했을 만큼, 안 대표의 단일화 승부수는 ‘미니 대선’이었던 서울시장 판 자체를 바꿨다.
국민의당은 안 대표 출마를 공식화한 후 11월 내에 단일화 협상을 한다는 플랜이다. 하지만 보궐선거 이후 국민의힘과 통합 과정에서 이준석 대표와 틀어진 점은 보수대통합 악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합당 무산 직후 국민의당 내부에선 “독자 출마도 불사하자”는 말이 공공연히 흘러나왔다. 다만 당선 가능성이 희박한 안 대표가 마이웨이를 택할지는 미지수다. 이준석 대표도 이와 관련해 “완주는 안 할 것”이라고 했다. 정가에선 안 대표가 최대한 몸값 높이기를 한 뒤 보궐선거나 지방선거 몫이 보장되면 중도 사퇴를 택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보수진영 인사들은 ‘분열은 필패’라며 국민의당에 단일화를 압박하는 모습이다.
진보진영에서도 후보 단일화는 뜨거운 감자다. 정의당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심 후보 지지도가 예상보다 높게 나오자, ‘두 자릿수 돌파’에 사활을 걸었다. 한 관계자는 “당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네 번째 대권 도전에 나선 심 후보는 대장동 의혹에 휩싸인 이재명 민주당 후보의 배임 가능성을 언급, “심상정으로 단일화하자”고 제안했다. 여의도에선 ‘털릴 게 없는 진보정당 후보의 자신감’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하지만 단일화를 둘러싼 전망에선 반응이 엇갈렸다. 이번 판에서 단일화는 안 하겠다는 의지라는 해석과 함께 단일화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라는 정반대 추측이 뒤섞였다.
이를 가를 변수는 ‘이심(이재명 후보 의중)’과 ‘지방선거 공천 딜’이다. 이 후보가 진보 빅텐트에 대한 의견을 직접 피력한 적은 없다. 다만 당 내부에서 후보 사퇴론과 후보 교체론 등이 본격화되면, 이 후보 측이 단일화를 전격 제안해 대선 여권발 ‘플랜B 뭉개기 작전’을 전개할 수도 있다.
지방선거 공천권도 진보 빅텐트 형성을 가를 중대한 요소로 꼽힌다. 이 지점의 포인트는 ‘심 후보의 대선 완주냐, 지방선거 공천권 확보냐’다. 진보진영 일부 인사들은 지방선거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편이 낫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내 반심상정 측에서 이재명 지지를 고리로 ‘중앙당 차원의 후보 단일화 협상’을 받자고 요구할 수도 있다.
여의도엔 ‘심상정 지방선거 출마’ 등의 시나리오도 떠돈다. 심 후보는 2010년 6·2 지방선거 때 경기도지사 출마했다가, 중도 사퇴한 바 있다. 정의당 한 관계자는 “대선에 완주할 것”이라고 일축했다. 거대 양당 인사들은 “대선의 막판 변수는 ‘이재명·심상정’과 ‘윤석열(홍준표)·안철수’ 간 러닝메이트 형성 여부”라고 했다. 이 지점은 대선 계가 싸움(바둑을 다 두고 집을 세는 것)의 백미 중 백미가 될 전망이다.
윤지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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