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가처분 신청 인용으로 한앤코에 유리한 국면…M&A 소송 2~3년 소요돼 매각 장기화 불가피
법조계에서는 한앤코의 승소 가능성을 높게 본다. 법원이 “주식매매계약의 유효성을 인정한다”면서 한앤코가 제기한 홍 회장의 의결권 제한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기 때문이다. 반면 홍 회장은 측근을 이사로 선임하려는 시도도 실패했다. 홍 회장은 소송 결과를 지켜본다는 입장이지만 뚜렷한 대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예상치 못한 매각 결정과 반전
지난 4월, 남양유업 관계자는 한 심포지엄에서 자사 제품 ‘불가리스’가 코로나19 예방·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발언했다. 하지만 방역당국은 인체 대상 연구가 수반되지 않았으므로 불가리스의 효과를 예상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뿐만 아니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식품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남양유업을 고발했다. 식약처는 “식품은 의약품이 아니므로 질병의 예방·치료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인식할 우려가 있는 표시·광고 행위는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고 고발 배경을 설명했다.
불가리스 발언 이후 남양유업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졌다. 남양유업 측의 불가리스 관련 발언이 있었던 다음날인 지난 4월 14일, 남양유업의 주가는 한때 전날 대비 28.68% 상승한 48만 9000원까지 올랐다. 그러나 방역당국의 발표 후 남양유업의 주가가 하락하면서 최종적으로 36만 500원에 마감했다.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홍원식 회장은 지난 5월 회장직에서 사퇴하고, 경영권을 매각하겠다고 선언했다. 홍 회장은 당시 “회사의 성장만을 바라보면서 달려오다 보니 구시대적인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소비자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것 같다”며 “모든 것에 책임을 지고자 남양유업 회장직에서 물러나고, 자식에게도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전했다.
남양유업 인수 의사를 밝힌 곳은 사모펀드(PEF) 운용사 한앤코였다. 남양유업은 지난 5월 공시를 통해 홍원식 회장 일가의 남양유업 지분 전량을 한앤코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매각가는 3107억 2916만 원이었다. 홍 회장은 지난 7월 30일 남양유업 임시주주총회를 통해 경영권과 지분을 매각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홍원식 회장은 임시주주총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주주총회 일자도 9월 14일로 연기했다. 이어 9월 1일에는 홍 회장이 한앤코와의 매매계약을 해제한다고 밝혔다. 홍 회장은 “이번 계약에서 계약금도 한 푼 받지 않았고 계약의 내용 또한 매수인(한앤코)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불평등한 계약이었다”며 “마지막까지 계약 이행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무산됐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홍 회장이 예상보다 낮은 매각가에 변심한 것으로 보고 있다. 남양유업의 주가는 지난 4월 30만 원 수준이었지만 지난 7월 1일에는 한때 81만 3000원까지 올랐다. 단순 계산해도 홍 회장의 지분 가치가 두 배 이상 상승한 것이다. 최고가였던 81만 3000원을 기준으로 삼으면 홍 회장 일가의 남양유업 지분 가치는 약 3100억 원이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고려하면 더 높은 매각가를 제시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홍원식 회장이 처음 맺은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는 점에서 비판 여론이 적지 않다. 최근 국정감사에서도 홍 회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홍 회장은 한앤코가 아닌 다른 업체에 남양유업을 매각하겠다는 입장이다. 홍 회장은 지난 10월 5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빨리 (매각을) 마무리 짓고 모든 구성원이 혜택을 보도록 하기 위해 가장 적합한 제3자를 찾는데 전력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한앤코의 반격, 버티기 들어간 홍 회장
홍원식 회장 임의대로 제3자에게 남양유업 지분을 매각할 수는 없다. 지난 9월, 법원이 한앤코가 제기한 홍 회장의 남양유업 주식 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기 때문이다. 또 한앤코는 홍 회장과 맺은 주식매매계약을 강제 이행하도록 하는 소송도 제기한 상태다.
이런 와중에 남양유업은 지난 10월 13일 임시주주총회를 통해 새로운 이사진을 구성한다고 밝혔다. 남양유업 사측은 신규 사내이사 후보로 김승언 남양유업 수석본부장, 정재연 남양유업 세종공장장, 이창원 남양유업 나주공장장, 세 명을 제시했다. 모두 남양유업 임원 출신들이다. 일각에서는 홍 회장이 지분 매각 후에도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 측근을 이사로 선임한 것으로 보고 있다. 남양유업 사내이사의 임기는 3년으로 남양유업 최대주주가 바뀌더라도 3년 동안은 홍 회장이 이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셈이다.
이에 반발한 한앤코는 홍 회장이 남양유업 임시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가처분을 신청했다. 법원도 이를 받아들여 지난 10월 27일 홍원식 회장이 의결권을 행사하면 100억 원을 한앤코에 지급하도록 명령했다. 법원은 주식매매계약의 유효성을 인정하면서 “주식매매계약은 한앤코가 남양유업 경영권을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므로 홍 회장이 한앤코의 목적 달성을 방해하는 행위는 금지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10월 29일 열린 남양유업 임시주주총회에서는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모든 안건이 부결됐다. 신규 이사진 구성이 무산된 만큼 홍원식 회장이 당분간 회사를 이끌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홍 회장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아 오너 리스크에 대한 우려 또한 적지 않다.
법원이 홍원식 회장의 의결권을 제한하자 법조계에서는 주식매매계약 강제이행 소송도 한앤코가 승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법원이 주식매매계약의 유효성을 인정해 홍 회장이 한앤코한테 정식으로 양도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결과”라고 판단했다.
홍원식 회장 측은 여전히 한앤코에 적대적이다. 이 때문에 최종 판결 이후에나 지분을 매각할 것으로 보인다. 인수합병(M&A) 관련 소송은 통상 2~3년이 소요되므로 남양유업의 매각 작업도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측근을 이사회에 앉히려는 계획도 무산된 만큼 홍 회장이 한앤코와의 소송에 전력을 다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홍 회장과 한앤코의 의견 차이가 있는 것이고, 홍 회장은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을 마무리 짓고 제3자 매각을 추진한다는 입장”이라며 “홍 회장의 주식 처분금지 가처분이 인용됐지만 아직 원안 소송이 진행 중이므로 지켜봐야 한다”고 전했다.
한앤코 역시 시간이 걸리더라도 남양유업의 인수를 강행한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2~3년 후 남양유업의 가치가 현재와 같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간 남양유업은 여러 구설수에 오르면서 불매운동 대상에 올랐고, 실적도 하락세에 있다. 남양유업의 매출은 2019년 1조 308억 원에서 2020년 9489억 원으로 줄었고, 올해 상반기 매출 역시 4705억 원으로 지난해 상반기 매출 4757억 원에 미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남양유업은 2020년 771억 원의 영업손실을 본 데 이어 올해 상반기에도 350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한앤코 관계자는 “법원에서 명확한 판단이 나온 만큼 더 빠른 주식매매계약 이행을 촉구한다”며 “소송이 장기화 되더라도 끝까지 대응할 생각이다”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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