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무성 “퇴임 전후 공모지침 내용 바뀌어” 주장에 이재명 측 “사실과 달라, 혐의 숨긴 본인 돌아보라”
황 전 사장은 10월 25일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녹음파일을 공개했다. 녹음은 2015년 2월 6일 사장 집무실에서 유한기 전 본부장과 만난 자리에서 이뤄졌다. 이날은 성남도시개발공사가 민간사업자 공모지침서를 배포하기 일주일 전이자, 화천대유자산관리 설립일이다.
녹음파일 속에서 유한기 전 본부장은 황무성 전 사장에게 “오늘 (사퇴)해야 한다. 오늘 아니면 사장님이나 저나 다 박살난다. 아주 꼴이 꼴이 아니다”라며 즉각 사직서를 쓸 것을 강요했다. 황 전 사장이 “내가 유동규를 한 번 만나겠다”고 하자, 유 전 본부장은 “(사직서를) 주세요”라고 재차 말했다.
이에 황 전 사장이 “시장한테 갖다줘도 당신한테 못 주겠다”며 “정 실장도 유동규도 당신한테 다 떠미는 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유 전 본부장은 “양쪽 다 그러고 있다”고 답했다. 황 전 사장은 당시 자신이 언급한 ‘정 실장’이 이재명 대선 후보의 최측근인 정진상 당시 성남시장 정책실장을 뜻한다고 밝혔다.
유 전 본부장은 “시장님 명을 받아서 한 일” “시장님 얘기입니다” 등의 말도 했다. 황 전 사장과 유 전 본부장이 40분간 나눈 대화에서 사직서 독촉 14번, 유동규 전 본부장 12번, 정 실장은 8번 언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이라는 단어도 7번 등장했다. 결국 황 전 사장은 녹음이 이뤄졌던 다음 달인 2015년 3월 사장직에서 물러났다. 임기를 1년 6개월 남긴 시점이었다.
녹음파일이 공개되자 국민의힘은 ‘대장동 게이트’의 몸통이 이재명 후보로 확인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공세를 폈다. 김기현 원내대표는 “사퇴 강압이 이재명 하명으로 보기에 충분하다”고 비판했다.
반면 이재명 후보는 “(황 전 사장이) 그만둘 때 퇴임 인사를 하러 왔는데 ‘왜 그만두나’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며 자신이 전혀 관여한 바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재명 후보 캠프에서도 “정진상 전 실장은 어느 누구와도 황 전 사장의 거취 문제를 의논하지 않았다”며 “기관 내에 본인 말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정 전 실장을 팔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고 반박했다.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팀장 김태훈 4차장검사)은 황 전 사장 녹음파일을 확보, 그가 퇴임하는 과정에서 성남시 쪽이 직권을 남용해 사퇴 압박을 가했는지 의혹 수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의혹은 서로 다른 주장과 새로운 의혹들이 충돌하면서 혼전 양상에 들어갔다.
황무성 전 사장이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재임 기간 사기 혐의로 재판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면서 사퇴 종용 배경에 대해 의구심이 제기됐다. 황 전 사장은 2011년 한 건설사를 상대로 우즈베키스탄에서 이뤄지는 공사 수주를 통해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것처럼 속여 3억 5000만여 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았다.
이에 황 전 사장은 2013년 사기 혐의로 고발됐고, 수원지검은 2014년 6월 그를 불구속 기소했다. 황 전 사장이 성남도시개발공사 초대 사장으로 취임한 시기가 2013년 9월임을 고려하면 재임 중 사기 혐의로 수사를 받고 기소까지 된 셈이다.
그는 사장 신분으로 4차례 법원에 출석했다. 2015년 3월 사장직에서 사퇴한 뒤에도 10여 차례 공판에 나갔고, 2016년 8월 수원지법 1심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항소심에서 일부 혐의가 무죄로 판단돼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감형됐고, 2017년 8월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여권 등에서는 황 전 사장이 재임 중 사기 사건에 기소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성남시와 도시개발공사가 사직을 요구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유한기 전 본부장은 황 전 사장 사기 사건 때문에 사퇴를 언급한 것이 맞다고 밝혔다. 그는 10월 28일 입장문을 통해 “황 전 사장은 재판을 받고 있었고, 이를 성남도시개발공사에 알리지 않았다”며 “우연한 기회에 사실을 알게 돼 그나마 인연이 있는 사람으로서 재판이 확정돼 도시개발공사에 누가 되거나, 황 전 사장의 명예를 고려해 사퇴를 권유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과도하게 ‘권유’한 점은 있었지만, ‘압박’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황 전 사장은 사퇴 의지가 없는 것으로 사료돼 유동규 전 본부장을 거론하며 거듭 사퇴를 권유한 것 같다”며 “황 전 사장이 임명권자 운운하기에 제가 정진상 실장과 시장 등을 거론한 것으로 사료된다”고 말했다. 사퇴 권유는 ‘윗선’과 관련성이 없다고 선을 그은 것이다.
반면 황무성 전 사장은 사기 사건과 자신의 사장직 사퇴는 무관하다고 반박했다. 황 전 사장 역시 같은 날 입장문을 통해 “제 사직서는 2015년 2월 제출했고, 1심은 2016년 8월 24일에 이뤄졌다”며 “이 문제 때문에 제가 감사를 받아 성남도시개발공사를 떠났다는 것은 성립하기가 어렵다”고 강조했다. 또한 성남시 감사관을 만난 것에 대해서는 지인의 소개로 2014년 3월 20일 처음 만났고, 2014년 11월 12일 차담, 2015년 1월 10일 오찬을 나눴을 뿐이라며 “어떤 혐의가 있어 조사를 받거나 했던 것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더 나아가 황무성 전 사장은 자신의 사퇴와 화천대유 문제가 얽혀 있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대장동 사업자 공모 공고지침서 내용이 자신이 사장 자리에서 물러난 시점 전후로 달라졌다는 것이다.
황 전 사장은 “10월 24일 참고인 조사에서 검사가 (2015년) 1월 26일 투자심의위 의결 내용과 2월 13일 사업자 공모 공고지침서 내용을 확인해달라고 했다”며 “저는 투자심의위 회의에서 ‘공사가 50% 이상을 출자, 사업 수익 50% 이상을 받는다’고 논의한 것으로 기억했고, 그 내용대로 이사회와 시의회도 의결됐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런데 “검찰에서 확인한 공모지침서에는 ‘사업이익 1822억 원 고정’으로 쓰여 있었다”며 “해당 내용을 변경해야 한다면 투자심의위, 이사회 의결, 시의회 의결을 거쳐야 하는 상황이 다시 발생했어야 하는데, 실무자들이 이를 검토하지 않고 당시 사장인 저를 거치지 않고 바꿨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특정 불순세력의 행위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황 전 사장의 이러한 주장에 이재명 후보 측은 “거짓말로 특정 후보 흠집 내는 행위를 중단하라”고 밝혔다. 이재명 후보 수석대변인인 박찬대 의원은 10월 28일 입장문을 통해 “황 전 사장은 자신이 결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공모지침서의 내용을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건지, 최근 수사기관 입맛대로 사실과 다른 진술을 했다는 건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직격했다.
박 의원은 황 전 대표가 ‘수사기관에서 확인한 대장동 사업 공모지침서에 사업이익이 1822억 고정으로 변경돼 있었다’고 주장한 것 역시 “사실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며 “공사가 2015년 2월 13일 실시한 성남시 대장동 제1공단 결합개발사업 민간사업자 공모지침서에는 ‘1차 이익배분 제1공단 공원조성비 2561억 원, 2차 이익배분 임대주택용지 제공’으로 돼있고 ‘공사는 임대주택단지 대신 현금으로 정산을 요청할 수 있다’라고만 돼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황 전 사장이 공사 사장 공모 단계부터 재임 기간 내내 자신의 사기 혐의 수사와 형사재판 사실을 숨기고서 공사 임직원을 속인 것은 아닌지 자신을 뒤돌아보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황 전 사장은 “이재명 후보 측은 제가 자작극을 한다고 호도하지만, 제가 자작극을 벌일 이유는 하나도 없다. 모든 자료는 하나도 공개하지 않고 본인들의 주장만 하는 것은 옳은 자세가 아니다”라며 “이재명 후보가 그렇게 떳떳하다면 특검을 통해 밝히셔도 된다”고 되받아쳤다.
황 전 사장이 사기 혐의 재판으로 주장의 신빙성에 타격을 받았다면, 유한기 전 본부장은 대장동 개발 민간사업자들로부터 수억 원대 금품을 받은 의혹이 제기되면 화천대유와 관련성에 의구심을 더하게 됐다.
국민의힘 대선후보인 원희룡 전 제주지사는 10월 28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공익제보에 의하면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가 유한기 전 본부장에게 2015년 대장동 개발과 관련해 수억 원을 건넨 사실이 있다”고 폭로했다. 이어 원 전 지사는 “김만배 씨가 유한기 전 본부장에게 건넨 수억 원은 대장동 개발을 위한 황 전 사장 사퇴 종용, 초과이익환수 규정 삭제, 사업자 선정 등의 대가”라고 주장했다. 다만 구체적인 금액은 제보자 신원 보호를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다.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도 유 전 본부장이 남욱 변호사와 정영학 회계사 측으로부터 2억 원을 전달 받은 정황을 포착,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핵심인물인 김만배 씨와 남욱 변호사가 검찰에 다시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유한기 전 본부장은 수억 원대 금품 수수 의혹에 대해 “김만배 씨와는 일면식도 없고 연락처도 전혀 모르는 사이이며 당연히 돈을 받은 사실 자체가 없다”고 반박했다. 이어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가능한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수사기관에 적극 협조해 답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지난 25일 녹음파일 공개부터 시작해 두 사람 사이에 여러 새로운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아직 사실관계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며 “이재명 후보와 관련성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경기도 국감 이후 대장동 의혹이 잠잠해지는 듯하더니 다시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가지 않을지 걱정이 된다. 이제는 정책과 비전 경쟁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전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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