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 양승호 감독(왼쪽)과 삼성 류중일 감독. |
류중일(이하 류): 내가 봐도 시즌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고민이 더 많다. 개막전에서 채태인이 역전 만루홈런을 치긴 했지만, 컨디션이 썩 좋지 않다. 최형우도 장타가 나오지 않고. 여기다 불펜진도 아쉽다. 장원삼의 부상으로 안지만을 선발로 투입시켰더니 권오준, 정현욱이 버틴 불펜진의 중량감이 떨어졌다. 다행히 외국인 타자 브라이언 가코는 장타는 없어도 정교한 타격을 선보이고 있다.
양승호(이하 양): 우리도 시즌 시작은 괜찮은 것 같다. 그러나 류 감독과 비슷한 고민이다. ‘조성환-이대호-홍성흔’으로 이어지는 중심타선이 살아나야 하는데, 7·8·9번 하위타선에서 타점이 나오고 있다. 다만, 삼성과 달리 불펜진이 살아났다는 게 고무적이다.
―삼성은 불펜진의 중량감 저하를, 롯데는 중심타선의 부진을 단점으로 꼽았다. 대안은 있는가.
류: 2군에서 어깨 재활 중인 왼손 장원삼을 4월 25일 정도에 1군으로 부르려 한다. 그러면 안지만이 불펜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안지만은 불펜에선 1, 2이닝은 있는 힘을 다해 던지는데 선발 때는 힘 조절을 하려는지 3회 이후부터 전력투구하지 않는다. 역시 안지만은 불펜에서 더 잘 어울리는 투수이지 싶다. 장원삼만 복귀하면 불펜진도 강해지리라 본다.
양: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롯데가 3년 연속 팀 타율 1위에 오르며 ‘올 시즌도 타격 하나는 끝내줄 것’이란 평이 나왔다. 하지만, 솔직히 남들 좋다는 타격이 제일 걱정이었다. 지난해 홍성흔, 이대호는 다시 기록하기 어려운 괴물시즌을 치렀다. 다시 그런 성적을 바라는 건 욕심이다. 전준우, 황재균 같은 비중심권 타자들이 역할을 해주길 바라고 있다.
―두 감독이 내리는 자기 팀 평가가 어쩐지 냉혹하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두 감독이 바라보는 상대팀의 장·단점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류: 롯데는 선발투수진이 좋고, 타격은 8개 구단 가운데 최고다. 발 빠른 타자들이 많아 기동력을 펼친다는 장점도 있다. 솔직히 두려운 팀이다. 굳이 단점을 찾으라면 불펜진이다. 불펜투수들의 실력이 고만고만하다. 확실한 마무리 투수가 없다는 것도 문제다. 예전부터 야구계에 그런 말이 있다. ‘타격이 좋은 팀은 4강엔 들어도 우승은 하지 못한다’고. 불펜진만 탄탄히 구성하면 정말 훌륭한 팀이 될 거다.
양: 우리의 단점이 삼성의 강점이다. 삼성은 불펜진이 정말 강하다. 4월 5일 대구에서 맞붙었는데, 우리가 0 대 1로 졌다. 그때 삼성 마무리로 오승환이 나와 세이브를 기록했다. 오승환을 보니까 확실히 살아난 것 같다. 권오준, 정현욱, 권혁 등 셋업맨들도 대단한 투수들이다. 다만, 단점이라면 류 감독이 틈날 때마다 ‘화끈하고 공격적인 야구를 펼치겠다’고 공언하는데 타격은 그리 믿을 게 못 된다는 거다. 뭐니해도 야구는 투수놀음이다.
―서로의 장·단점에 대해서도 평가해달라.
양: 일단 류 감독은 24년 동안 한 팀에만 있었다. 삼성의 특징을 누구보다 잘 안다. 여기다 선수들의 장·단점도 정확히 파악하고, 소통이 잘 된다. 불필요한 권위의식이 없다는 것도 장점이다. 세상에 단점 없는 감독이 누가 있겠나. 하지만, 단점마저 장점으로 불식시키는 능력이 있다.
류: 양 감독님과 사실 인연이 깊지 않다. 출신 학교도 다르고, 현역 시절과 지도자 생활도 다른 팀에서 했다. 4월 4일 롯데와의 첫 경기 때 뵙고 “같은 처지니까 열심히 하자”는 말을 나눈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과거 LG 시절 감독대행을 하실 때 보면 무척 꼼꼼한 지도자란 느낌을 받았다. 롯데 수비가 이전보다 훨씬 촘촘해지지 않았나. 투수도 적재적소에 잘 교체한다는 생각이다. 4일 경기에서 롯데가 중간투수를 6명이나 동원한 바람에 우리가 졌다. 단점은 글쎄, 아직 말하기 어렵지 싶다.
현역 시절만 놓고 보면 류 감독이 양 감독보다 이름값이나 활약 면에서 앞섰다. 류 감독은 경북고 때부터 국가대표 유격수로 뛰었다. ‘강대중-허일-김재박’ 계보를 이을 한국 최고의 유격수로 꼽혔다.
지난해 12월 30일 선동열 감독이 전격 해임되고 당시 주루코치 신분으로 13대 감독으로 취임했을 때, 많은 야구인이 놀라움과 함께 안심한 것도 류 감독이 ‘준비된 감독’이기 때문이었다. 1992년 우용득 감독 이후 20년 만에 프랜차이즈 스타를 사령탑으로 맞은 대구 야구팬들은 류 감독의 등장을 박수로 환영했다.
반면 양 감독은 ‘음지의 야구인’이었다. 신일고를 졸업하고 고려대에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주목받는 내야수였으나, 가정형편상 학업을 중단하고 1982년 상업은행에 입단했다. 1983년 뒤늦게 프로에 입문했지만, 연고지 팀인 MBC 청룡이나 OB 베어스가 아니라 해태였다.
은퇴 후엔 모교 신일고 감독으로 재직했고, 1992년 두산 스카우트로 다시 프로에 들어와선 수비코치와 수석코치를 맡았다. 13년 동안 두산에서 프런트와 지도자로 활동한 양 감독은 2006년 이순철 감독의 해임 이후 잠시 LG 감독대행을 맡았다. LG를 나와선 고려대 감독을 맡으며 군기가 세기로 유명한 고대 야구부를 ‘구타 없는 야구부’로 변화시켰다.
지난해 롯데가 로이스터 감독과의 재계약을 거절하고 양 감독을 택했을 때 부산 팬들은 다소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가 프랜차이즈 스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두 감독은 다른 점도 많지만, 내야수 출신이란 공통점이 있다. KIA·두산 감독은 포수 출신, SK·넥센 감독은 투수 출신, LG 감독은 외야수 출신이다. 지난해까지 내야수 출신 감독은 한화 한대화 감독이 유일했다. 야구계에선 ‘내야수 출신 감독들이 경기를 보는 눈에서 포수나 투수, 외야수 출신 감독을 앞지른다’는 말이 있다.
류: 6일 대구 롯데전에서 우리가 1 대 0으로 이기고 있었다. 8회 말 가코가 2루타를 치면서 추가 득점 찬스를 잡았다. 희생번트를 시켜 1사 주자 3루를 만들고 현재윤의 대타로 박한이와 진갑용을 두고 고민했다. 결국, 진갑용을 내보냈다. 왜냐? 야수들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9회가 되면 마무리 오승환이 등판하고, 포수론 진갑용이 앉아야 했다. ‘진갑용이 안타를 쳐 타점을 기록하면 포수로 나갔을 때 기분이 무척 좋아져 투수 리드도 잘할 것’이라고 계산했다. 물론 진갑용이 삼진으로 물러나긴 했지만, 감독은 지금뿐만 아니라 다음 이닝에서의 선수들의 기분까지 고려해야 한다.
양: 내야수 출신 감독들의 경기 보는 눈이 다른 포지션 출신 감독들보다 넓은 게 사실이다. 투수는 타자만 상대하고, 포수는 투수만 보면 된다. 외야수는 수비코치의 지시에 따라 수비위치를 바꾸면 그만이다. 하지만, 내야수는 전체 수비진과 타자의 타격성향, 주자들의 움직임까지 모두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안타를 범타로 처리하고, 주자의 도루를 막을 수 있다. 내야수가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포지션인 만큼 선수들의 상태와 마음을 빠르고, 정확하게 판단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야수 출신 감독들은 ‘투수교체 타이밍을 못 잡는다’는 혹평에 시달리기도 한다. 두 감독만의 투수교체 타이밍은 언제이고, 올 시즌 투수진을 어떻게 끌고 갈 생각인가.
류: 글쎄, 투수의 구위와 구속이 첫 번째 관건이 아닐까. 나는 왼손 타자가 나왔다고 왼손 투수를 무조건 투입할 생각은 없다. 그보다 타자의 스윙궤도와 투수의 스윙 각도를 고려해 타자를 가장 잘 상대할 투수를 왼손 오른손 가리지 않고 투입할 생각이다. 전임 감독과 달리 불펜투수들을 총출동시킬 의사도 없다. 가능한 선발투수를 오래 끌고 갈 생각이다.
양: 류 감독과 비슷하다. 투수의 구위와 구속을 보고, 투수가 얼마나 동요하고 있는지를 살핀다. 포수에게도 물어봐 아니다 싶으면 바꾼다. 2006년 LG 감독대행하면서 느낀 게 있다. ‘처음 투수를 바꾸려고 마음먹었을 때 바꿔야 한다’는 거다. 투수에게 “더 던지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물러났다가 실점하면 굉장히 억울하다. 올 시즌 롯데 투수들에게 그랬다. “내가 마운드 올라갈 때는 무조건 바꾸는 거다”라고.
―두 감독 모두 전임 감독들의 그림자가 짙다. 이 그림자를 지우고, 어떤 감독이 되고 싶은가.
류: 취임 때 ‘화끈한 공격야구를 펼치겠다’고 약속했는데, 사실 가장 중요한 건 ‘이기는 야구’다. 개인적으로 야구는 선수가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선수들 컨디션 조절은 코치들 몫이고. 선수들과 코치들이 기죽지 않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도와줄 참이다. 요즘도 늘 선수단에 그런다. “야구는 여러분이 하는 거니까 마음껏 하고 싶은 야구를 하라”고.
양: 맞는 말이다. 경기는 선수가 하고, 승패는 감독이 책임지면 된다. 개막전 이후 투수교체 때 꼭 내가 마운드에 오른다. 그것이 팬 서비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감독은 권위의식이 지나치게 강하다. 그러나 감독 물러나고 사회에 나가봐라.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감독 그만두면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사람들도 꽤 있다. 감독이란 좋은 위치에 있을 때 후배들 챙기고, 좀 더 겸손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두 감독이 더그아웃에 있을 때보다 표정에서 큰 차이가 난다. 류 감독은 타자가 타점을 올리거나 투수가 삼진을 잡으면 제 일처럼 기뻐한다. 그러나 양 감독은 타자가 홈런을 쳐도 표정에 변화가 거의 없다. 두 감독의 표정, 의도된 것인가.
류: 난 자연스럽게 나오는 거다. 절대 가식이 아니다. 좋을 때는 좋다고 웃고, 나쁠 땐 나 혼자 속으로 삭이는 게 좋다고 본다.
양: 득점 나면 누가 기분이 좋지 않겠나. 하지만, 승부는 9회가 끝나야 안다. 감독이 더그아웃에서 촐싹거리거나 타자가 홈런 쳤다고 뛰쳐나가 하이파이브하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그냥 속으로 기뻐하고, 슬퍼하는 게 좋지 싶다.
―감독이 된 이후, 바뀐 게 많지 않을까 싶다.
류: 전혀 없다. 똑같다.
양: 서울에 있는 가족을 자주 보지 못하는 게 아쉽다. 부산은 서울처럼 자유롭지 못하다. 야구팬들이 몰려와 지인을 공공장소에서 만나기 어렵다. 하지만, 그건 그만큼 야구팬들이 날 대우해주고 있단 뜻이다.
―올 시즌 어떤 결과로 감독 데뷔 첫 시즌을 마치고 싶나.
양: 지난해까지 롯데는 3년 연속 준플레이오프에만 진출했다. 올 시즌엔 플레이오프까지 올라가 한국시리즈에 도전하고 싶다. 1차 관문인 준플레이오프만 통과한다면 원체 분위기를 잘 타는 선수들이니만큼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거머쥘 수 있다고 본다. 목표는 누가 뭐래도 우승이다.
류: 삼성은 지난해 준우승팀이다. 만약 4강 진출에 실패했던 팀이라면 ‘포스트 시즌 진출’을 목표로 내걸겠는데, 그게 아니지 않나. 어떻게든 우승에 도전해볼 생각이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