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세무조사 이어 내부거래 비중 큰 계열사 규제 가능성…‘두 집안 공동경영’ 계열분리 여부도 주목
#영풍정밀 등 공정위 사정권 안으로
국세청이 영풍그룹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지난 10월 29일 오전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직원들이 서울 강남구 고려아연 본사 등에서 관련 자료를 확보하는 등 조사를 벌였다. 조사 배경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비정기 특별 세무조사를 담당하는 서울청 조사4국이 나선 만큼 비자금 조성이나 탈세, 부당 내부거래 등의 혐의와 관련된 것으로 추론된다. 재계는 조사4국을 통칭 ‘국세청의 중수부’이자 ‘저승사자’로 부른다(관련기사 [단독]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고려아연 세무조사 착수).
국세청에 이어 공정위의 칼날이 겨눠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영풍그룹의 내부거래 비중은 2019년 13.2%에서 지난해 25.7%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대기업집단 내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더욱 강화해온 문재인 정부 기조와 대조되는 행보다. 올해 초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업무 추진 계획을 통해 총수일가 사익편취, 일감 몰아주기 등 부당 내부거래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공정위는 올해 상반기에 재계 1, 5위 그룹인 삼성과 롯데에 대한 부당 내부거래 제재를 마무리했다.
그동안 영풍그룹은 내부거래와 관련해 제재를 받은 적이 없다. 하지만 일감 몰아주기 대상 총수일가 지분 기준이 ‘상장사 30%·비상장사 20%’에서 일괄 20%로 변경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12월 30일부터 시행되면 규제 사정권에 놓이는 계열사가 생겨난다. 영풍정밀이 대표적이다. 영풍정밀의 총수일가 지분율은 21.21%. 지난해 매출액은 908억 원이었고, 내부거래 비중은 25%에 달했다. 전체 내부거래(227억 원) 중 175억 원(77%)이 고려아연에서 나왔다.
총수일가가 33.34% 지분을 가진 서린정보기술도 규제 대상으로 꼽힌다. 지난해 서린정보기술의 내부거래 비중은 16.17%다. 그룹 경영권의 향배를 가를 수 있는 지주사격인 (주)영풍의 총수 일가 지분율은 40%를 넘는다. 지난해 내부거래 비중은 13.2% 수준이다.
장씨 일가와 최씨 일가의 공동경영 형태의 그룹 구조도 그간 규제를 빗겨난 배경 중 하나다. 영풍그룹의 동일인(총수)은 장형진 영풍 회장으로 공식 지정돼있다. 공정거래법상 동일인은 한 명만 등록할 수 있다. 1949년 고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창업한 영풍그룹은 현재까지도 두 집안에서 공동 경영을 해오고 있다. 장씨 일가는 지주사 영풍과 전자부품 사업을, 최씨 일가는 그룹의 최대 매출처인 고려아연을 각각 경영하고 있다.
실제 최창걸·최창근·최창영 회장은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지만, 동일인으로 지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최씨 일가에서 보유한 계열사 주식들은 총수 일가 소유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매연저감장치 제조업체 알란텀이 이에 해당된다. 알란텀의 최대주주는 최창영 회장(25.06%)과 장남 최내현 알란텀 대표(38.15%)다. 실질적인 총수일가 지분율이 55%가 넘지만, 명목상 총수일가로 잡히는 지분율은 0%이다.
이 같은 규제 빈틈 속 영풍그룹과 총수 일가는 2008년 알란텀 설립부터 2011년까지 820억 원에 운영자금을 쏟아 부은 바 있다. 이 같은 노력에도 알란텀은 매년 수백억 원의 적자를 내면서 사실상 현재 사업 철수 상태다. 대신 최내현 대표는 2016년 황산니켈 제조회사 켐코를 설립했다. 승계 지렛대 역할이 알란텀에서 켐코로 바뀐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캐시카우' 고려아연, 계열분리의 핵
이런 가운데 영풍그룹의 계열 분리설이 제기되고 있다. 2019년 7월 장형진 회장은 서린상사의 영풍 지분 10.36%를 모두 사들이면서 ‘영풍→고려아연→서린상사→영풍’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7번째 순환출자고리를 끊었다. 앞서 2018년 ‘영풍문고→영풍개발→영풍→영풍문고’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2개의 고리는 영풍이 보유한 지분 24% 중 14.5%를 씨케이에 넘기고, 나머지 9.5%를 영풍문고에서 영풍문화재단에 증여해 해소했다.
2017년에는 씨케이에서 테라닉스의 영풍 주식 2만 5000주를 모두 인수해 순환출자 고리 4개를 끊었다. 영풍그룹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2017~2019년에 걸쳐 7개의 순환출자고리를 모두 해소한 셈이다.
순환출자고리 해소와 3세 승계 과정에서 장씨 일가의 영풍 지배력은 확대됐다. 지분율 차이가 커지면서 영풍그룹의 계열 분리설이 시장에 등장했다. 지난 3월 기준 장씨 일가와 그들이 거느린 계열사가 보유한 영풍 지분을 모두 합하면 55.6%에 달한다. 반면 최씨 일가가 보유한 영풍 지분은 13% 수준이다. 계열 분리 방법은 간단하다.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 27.5%를 최씨 일가에 매각하면 된다. 11월 2일 종가기준 최씨 일가는 2조 7386억 원의 현금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장씨 일가 입장에선 그룹 내 캐시카우(현금창출원)인 고려아연을 포기하기 쉽지 않다. 지난해 기준 영풍그룹의 자산, 매출에서 고려아연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64.5%, 76.8%에 달한다. 만약 장씨 일가가 영풍을 통해 고려아연 지배에 나선다면 경영권 분쟁을 피하기 어렵다. 장씨 일가(5.3%)와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주식을 합하면 32.8%에 이른다. 최씨 일가가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은 5.3% 불과하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국세청으로부터 세무조사 이유를 통보받지 않았다”며 “계열 분리도 내부에서 전혀 검토한 바 없다”고 말했다.
한편 영풍그룹 소속 석포제련소는 11월 8일부터 10일간 조업을 중지해야 한다. 2018년 경상북도가 물환경보전법 위반을 이유로 석포제련소에 내린 조업정지 20일 처분 가운데 절반인 10일이 유효하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최근 나오면서다. 올해도 환경부는 석포제련소를 특별점검한 결과 11건의 위법 사항을 적발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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