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성남시청 최민정 2억 영입 성공 벤치마킹…박원순의 서울시청 심석희와 ‘최고대우’ 계약 그러나…
2017년 무렵 스포츠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체감하고 있던 한 지방자치단체장이 있었다. 지금은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된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다. 이재명 후보는 2014년 매물로 나온 K리그 명문 구단 성남 일화 천마를 인수한 바 있다. 성남시는 통일교로부터 구단 법인을 인수했다. 시민구단으로 탈바꿈한 성남 FC 초대 구단주는 이 후보였다. 이 후보는 수원 FC를 향해 ‘깃발 내기’, FC 서울에겐 ‘10억 빚탕감 대전 제안’ 등 활동을 펼치며 이슈 중심에 서기도 했다.
2017년 2월 14일 이 후보의 ‘성남시 스포츠 마케팅’엔 또 다른 날개가 달렸다. 당시 실업구단들 사이에서 영입 1순위로 꼽혔던 대어 최민정을 영입한 까닭이었다. 최민정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기량 성장세가 가장 눈에 띄는 선수였다. 성남시청에 입단한 뒤 최민정은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전종목 1위’라는 완벽한 성적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한국에서 개최되는 동계올림픽에 출전할 여자 쇼트트랙 에이스의 부상을 알리는 일대 사건이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최민정은 여자 1500m와 여자 계주 30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2관왕에 올랐다. 2018년 2월 26일 이 후보는 성남시청 집무실에 최민정, 김민석, 김현영 등 올림픽에 출전한 성남시청 빙상단 지도자와 선수들을 초청해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2018년 지방선거를 4개월여 앞둔 상황에서 이 후보는 다시 한번 스포츠 마케팅 성공 사례를 남겼다. 이후 이 후보는 ‘재선 성남시장’ 신분으로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사표를 던져 당선됐다.
이재명 후보의 성공 사례가 남은 뒤 2019~2020년 전국 지자체들이 한 쇼트트랙 선수를 두고 치열한 물밑 영입전을 펼쳤다. 그 주인공은 바로 ‘성폭행 피해 사실 폭로’ 이후 재기에 성공한 여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였다. 심석희는 최민정의 라이벌로 꼽힐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자랑할 뿐 아니라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진 선수였다. 어느 때보다 영입전 분위기가 뜨거웠다. 심석희 영입전 분위기가 달아오른 배경은 이랬다.
2019년 1월 여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가 조재범 전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로부터 성폭행 피해를 당했다고 폭로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전후로 ‘조재범의 폭행으로 인한 선수촌 이탈 사태’로 이슈 중심에 섰던 심석희의 폭로에 스포츠계가 술렁였다. 심석희의 폭로는 ‘스포츠 미투’ 도화선에 불을 지폈다. 스포츠 인권이라는 키워드를 전 국민이 인식한 계기가 됐다.
한 체육계 관계자는 “엘리트 체육선수를 영입하는 지자체 입장에선 세계적인 기량보다도 그 선수가 가지는 메시지가 중요하다”면서 “심석희는 기량과 메시지, 그리고 재기 스토리까지 3박자를 갖춘 체육계 최대어였다”고 ‘심석희 영입전’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지자체들은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에 심석희가 출전한다는 전제 아래 영입전을 펼쳤다”면서 “베이징동계올림픽은 대선을 한 달, 지방선거를 넉 달 앞둔 시점에 열린다. 이런 이유로 지자체장들 사이에선 대선과 지방선거를 내다본 가장 강력한 스포츠 마케팅 수단으로 심석희 영입을 노렸다”고 했다.
일요신문 취재에 따르면 심석희 영입전에 참전한 지자체는 총 네 곳이었다. 심석희는 최민정을 넘어선 ‘빙상계 최고대우’를 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최민정 연봉은 2억 원 규모로 알려져 있다. 심석희를 영입하려면 지자체에서 연 2억 원 이상의 실탄을 확보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가장 먼저 등장한 지자체는 고향론을 외친 최문순 지사(더불어민주당)가 이끄는 강원도청이었다. 2019년 5월 강원일보는 강원도청 빙상팀 관계자 발언을 인용해 “심석희 영입을 확정했다”고 보도했다. 언급된 계약 규모는 2년 3억 원 이상 수준이었다. 하지만 공식적인 계약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빙상계 관계자는 “당시 한국체대 소속이었던 심석희 졸업은 2020년 2월로 예정돼 있었다”면서 “당시 국가대표 선발전을 포기했던 심석희 측이 서둘러 계약을 마무리할 이유가 없었던 시기”라고 했다.
2019년 11월 심석희가 졸업을 한 달 앞둔 시점엔 다른 지자체 이름이 부상했다. 이재준 시장(더불어민주당)이 이끄는 고양시청이었다. 스포츠서울 보도를 통해 심석희 고양시청 입단설이 제기됐다. 고양시청 빙상단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에 따르면 고양시청이 심석희 측에 제시한 연봉은 1억 원대 중반 규모였다. 다만 고양시청엔 김아랑, 임효준(중국명 린샤오쥔), 곽윤기 등 국가대표 선수들이 대거 포진해 있어 연봉 가용폭이 크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그 가운데 물밑에선 오거돈 전 부산시장(더불어민주당)이 이끌던 부산시청이 심석희 영입을 노린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부산시체육회가 빙상단 창단을 통한 빙상 인프라 향상을 명분으로 심석희 영입을 노린다는 내용이었다. 연봉 규모보다는 심석희 영입을 필두로 빙상단을 창단한다는 조건이 골자였다.
심석희 영입전에 뛰어든 지자체는 많았지만 ‘쇼트트랙 최고 대우’를 해줄 수 있는 지자체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유는 따로 있었다. 직장인운동부 선수에 대한 연봉 상한선이 각 지자체마다 조례로 규정돼 있는 까닭이었다. 각 실업팀마다 지출할 수 있는 총 연봉 규모도 제각각이었다. 그 가운데 성남시가 최민정 영입에 들인 2억 원 이상을 제시할 수 있는 지자체는 사실상 전무했다.
이런 상황에서 여권 잠룡으로 평가받던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심석희 영입전에 뛰어들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박 전 시장의 인권 변호사 이미지와 심석희를 대표하던 스포츠 인권이란 키워드가 잘 맞아 떨어진다는 판단 아래 서울시가 적극적으로 영입전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심석희 연봉과 관련한 협상이 이뤄진 장소는 서울시청 6층으로, 박원순 전 시장 비서실 핵심 인사가 직접 연봉 협상 테이블에 앉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연봉 협상 결과 심석희는 빙상계 최고 대우를 약속받았다. 서울시 직장운동경기부 관리·운영 규정에 따라 연봉 상한액 6000만 원을 먼저 보장받았다. 계약 첫해엔 우수선수영입비, 나머지 2년 동안엔 우수선수육성지원비 지급이 합의됐다. 우수선수영입비와 우수선수육성지원비 상한액은 1억 원이다. 해마다 ‘금메달 3회 획득’이란 옵션을 만족하면 빙상단 입상보상금 1000만 원이 수령 가능했다. 여기까지 합의된 금액이 최대 1억 7000만 원이었다.
여전히 빙상계 최고대우에는 못 미치는 조건이었다. 그리고 심석희는 2020년 1월 10일 서울시청 빙상단에 입단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심석희 계약 조건은 빙상계 최고대우로 전해졌다. 서울시는 공식적으로 최대 1억 7000만 원을 지급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최고대우로 계약했다는 소식이 나왔다. 어떻게 된 일일까. 사정은 이랬다.
심석희 최고대우를 맞추기 위해 서울시는 구두로 파격 조건을 제시했다. 서울시체육회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심석희가 최고대우를 받으려면 서울시 조례와 서울시체육회 내부 규정에서 벗어난 범위에서 추가 금액을 보장받아야 했다”면서 “구두로 4000만~5000만 원 규모 추가 금액 지급이 논의됐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이 추가 금액 지급이 이뤄진다면 심석희는 빙상계 최고 대우를 받는 게 맞다”면서 “이런 방안은 서울시와 서울시체육회 관계자, 서울시청 빙상단 코칭스태프가 모인 자리에서 논의됐다”고 했다. 그는 “추가금액 지급 재원은 서울시에서 주최하는 체육 행사에 들어오는 후원금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주장했다.
빙상계 다른 관계자는 “박 전 시장이 사실상 ‘이면 계약’이라 볼 수도 있는 추가금액을 보장하면서까지 심석희 영입에 공을 들였다”면서 “당시 상황을 되짚어보면 박 전 시장과 지자체장 ‘빅2’로 꼽히던 이재명 경기도지사에 필적하는 스포츠 마케팅을 통해 자신만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강했다”고 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인권 변호사 출신이었던 박 전 시장이 성폭행 사실을 용기 있게 폭로한 심석희에게 최고 대우를 보장하며 기회의 장을 마련해주려 했던 그림”이라면서 “심석희를 서울시청이 최고 대우로 영입하면서 박 전 시장의 ‘여성 인권’에 대한 관심도를 입증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대권 도전을 앞두고 ‘이미지 제고’를 하는 데 있어 심석희 영입만 한 드라마틱한 요소는 없다는 판단을 내부적으로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결국 치열한 영입전은 서울시청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심석희 서울시청 입단은 행복한 결말로 가고 있지는 못한 상황이다. 서울시와 심석희 모두가 여러 변수에 부딪힌 까닭이었다. 2020년 3월부터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여기에 지난해 7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급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심석희가 서울시청에 입단한 지 6개월 만에 벌어진 일들이다. 그러면서 서울시와 심석희 측이 합의했던 ‘추가금액’에 대한 지급 여부도 모호해졌다. 심석희는 서울시청 입단 이후 추가금액을 지급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지난 10월 심석희 모바일 메신저 내용이 연예매체 '디스패치'를 통해 알려지며 상황이 악화됐다. 모바일 메신저 내용이 공개되면서 심석희는 국가대표팀 동료 조롱·비난 논란과 승부조작 모의 의혹 등에 휩싸였다. 심석희는 올림픽이 열리는 시즌 첫 국제대회인 ISU(국제빙상연맹) 1·2차 쇼트트랙 월드컵에서 배제됐다. 3·4차 월드컵 출전도 불투명하다.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출전에도 먹구름이 드리워진 양상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체육계 최고 영예인 '2021 대한민국 체육상 경기상' 수상도 보류됐다.
사실상 정치권과 각 지자체가 ‘심석희 파급효과’로 예상했던 시나리오는 모두 무산된 양상이다. 이를 두고 한 정치권 관계자는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정치”라면서 “2019년만 해도 박원순 전 시장이 이렇게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다른 빙상인은 “빙판 위에선 누가 미끄러져 넘어질지 예상할 수 없다”면서 “2019년 체육계에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 심석희가 이런 논란에 휩싸일지는 아무도 몰랐을 것”이라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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