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밥상 풍요롭게 하는 고유의 발효 미학
‘장 담그기’는 콩을 발효시켜 간장과 된장 등 장을 만드는 기술과 문화를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콩을 발효해 먹는 ‘두장’(豆醬) 문화권에 속하며, 삼국시대부터 메주로 장을 만들어 먹은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시대에 역대의 시문을 엮어 편찬한 ‘동문선’ 제57권 ‘설인귀의 서’에서는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기록이 발견된다. 백제 말기의 무장인 복신이 나당 연합군을 맞아 싸우던 때의 일이다. 당시 설인귀는 당나라 군사를 이끌고 있었는데, 복신이 부성을 포위하고 웅진으로 가서 소금과 메주의 수송을 끊는 작전으로 신라군을 괴롭혔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미 그 시절부터 장이 삼국 사람들의 식생활에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고려시대에도 장은 식생활의 필수품이었다. ‘고려사절요’에 따르면 기근을 맞아 백성을 구휼할 때면 곡물과 함께 메주를 제공했다. ‘조선왕조실록’(세종실록) 세종 27년(1445) 1월 5일자에는 굶주린 백성을 구휼할 때 쌀과 간장을 함께 나누어주게 했다는 기록도 나온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왕실에 장을 따로 보관하는 ‘장고’를 두었으며, ‘장고마마’라 불리는 상궁이 직접 장을 담그고 관리하도록 했다. 또한 장은 민가에서 식용뿐만 아니라 의료용으로도 활용됐다. ‘동의보감’에는 “장이 어육, 채소, 버섯의 독성을 지우고 열상과 화독을 다스린다”고 적혀 있다. ‘산림경제’에는 약을 과용했거나 체했을 때 메주즙을 먹이면 효과가 있는 것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독특한 장 제조법을 발전시켜 왔다. 전통적인 장 담그기는 메주 쑤기, 메주 띄우기, 장 담그기, 발효 및 숙성, 장 뜨기(가르기) 과정을 거친다. 즉, 잘 발효시키며 말린 메주에 소금물을 부어 다시 발효 및 숙성을 시킨 후 장을 뜨게 되는데, 이때 액상 부분이 간장, 고체 상태인 부분은 된장이 된다. 이처럼 메주를 띄우는 과정을 거친 후 된장과 간장 두 가지의 장을 만든다는 점, 전년도에 쓰고 남은 씨간장을 이용해 수년 동안 겹장의 형식을 거친다는 점 등은 한국의 장 담그기가 갖는 독창적인 특징이다.
예부터 장을 담그는 일은 한 해의 식생활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민가의 행사였다. ‘증보산림경제’에서는 “장은 모든 맛의 으뜸이요, 인가의 장맛이 좋지 않으면 비록 좋은 채소나 맛있는 고기가 있어도 좋은 요리가 될 수 없다”고 했다. 반면 “촌야의 사람이 고기를 쉽게 얻지 못해도 여러 가지 좋은 장이 있으면 반찬에 아무런 걱정이 없다”고도 했다. 그래서 선조들은 장을 담그기 위해 택일을 하고 고사를 지내 부정 타지 않도록 조심했다. ‘규합총서’에서는 장 담그기 좋은 날로 정월 우수일, 입동일 등을 꼽기도 했고, 일반적으로 민간에서는 손 없는 날인 10일, 20일, 그믐날 또는 말날에 장을 담갔다.
‘증보산림경제’에는 “장 담그는 물은 감천(물맛이 좋은 샘)이나 강심의 물을 큰 솥에 받아 끓이고 여기에 소금을 녹여서 식으면 받쳐서 쓴다”고 기록돼 있다. 장 담글 때 간이 맞는지 알아보는 방법도 흥미로운데,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흰밥 덩어리를 상수리(상수리나무 열매)만큼 넣어 한 뼘쯤 내려가 떠 있으면 간이 맞은 것이고, 한 뼘이 못 되게 떠오르면 너무 짜다”고 적혀 있다. 또한 민간에서는 달걀을 넣어 보아 달걀이 반 정도 수면 위에 떠오르면 간이 맞는 것으로 봤다.
장을 담근 후 장을 뜨는 시기는 40~60일 정도 발효와 숙성을 한 다음이다. 이때에도 매일 아침 장독 뚜껑을 열어 볕을 쬐어주며, 독에 금줄을 쳐서 장독을 지극정성으로 관리했다. 장의 종류도 다양해 무려 200여 종에 이른다. 지역 특산물과 지리적 요건, 그리고 식문화 등에 따라 장에 첨가되는 재료나 만드는 방식이 다소 달랐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장류로는 청장(진하지 않은 간장), 즙장(집장), 담북장, 청국장 등이 있고, 별미장으로는 청태장(청태로 메주를 쑤어서 담근 간장), 접장, 막장, 시금장(등겨장) 등이 꼽힌다.
우리 민족은 고대부터 장을 담가 먹은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전통 장은 식문화의 한 부분일 뿐만 아니라, 주거문화와 풍속, 기복신앙, 그리고 과학적인 지혜까지 함께 깃들어 있는 복합적인 무형유산이다. 문화재청은 장 담그기가 우리나라 전역에서 가정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전승되는 생활 관습이자 문화라는 점에서 특정 보유자나 보유 단체를 따로 지정하지는 않았다. 뒤집어 보자면, 장 담그기를 실행하는 모두가 일종의 ‘기능보유자’인 셈이다. 혹시 자그마하게라도 메주를 띄워 놓을 여건이 된다면, 올겨울에는 가족이 함께 장 담그기를 체험해 보는 건 어떨까.
자료 협조=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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