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당청 무게중심 이동 문재인 대통령이 걸림돌…‘윤’ 미래 비전 대신 반문 프레임 올인 결국 패착
대장동 특검(특별검사제) 조건부 수용을 천명한 이재명 후보는 ‘전투형 노무현’의 판박이다. 윤석열 후보는 ‘전투형 이명박·박근혜’에 가깝다. 문제는 역대급 비리 의혹에 휩싸인 이들의 패를 다른 칼잡이가 쥐고 있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검찰이 대표적이다.
“안 움직이더라.”
여권 한 관계자가 전한 민주당 대선 경선이 끝난 후 한 달간 느낀 소회다. 이 관계자의 문제 인식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것은 친문(친문재인) 패권주의다. 민주당이 10월 10일 마지막 경선에서 이 후보를 옹립했지만 당 최대 주주인 친문 직계의 적극적 지원이 2% 부족하다는 의미다. 비주류 진영에선 “내년 3·9 대선과 재·보궐 선거, 6·1 지방선거까지 망하자는 것이냐”는 우려가 팽배하다. 그는 “우리(친문) 눈 밖에 나면 권력에서 멀어진다는 시그널”이라며 “2024년 총선 정국이 도래해야만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반론도 있다. 이재명 선거대책위원회는 민주당 현역 국회의원 169명 전원이 참여한 매머드급으로 꾸렸다. 당내 경선 과정에서 ‘이재명 구속’을 외친 이낙연 캠프의 설훈 의원과 친문 직계인 홍영표 의원 등도 합류했다. 상임선대위원장에는 송영길 대표를 비롯해 김두관·박용진·이광재 의원 등이 맡았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현역 의원 모두가 참여한 역대급 선대위이자, 융합형 매머드 선대위”라고 치켜세웠다.
다만 반이재명 연합군 핵심이던 이낙연 전 대표와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상임위원장이 아닌 상임고문을 맡기로 했다. 반이재명 측 실무진들 움직임도 더디면서 원팀 분열 논란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이재명 선대위를 놓고 ‘무늬만 원팀’이라는 뼈아픈 지적도 나온다.
복수의 당 관계자들은 여당발 원팀 균열의 원인이 현재 권력(문재인 대통령)과 미래 권력(이재명 후보)의 관계 재정립 실패에 있다고 봤다. 주도권을 둘러싼 당·청과 당 내부 권력암투가 당 주류와 비주류의 화학적 결합을 막았다는 뜻이다. 이재명발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둘러싼 당·정 갈등도 임기 말 주도권 다툼의 연장선이다. 이 후보가 당·정·청 조율 없이 전 국민 재난지원금 이슈를 공론화했을 때 여권 수뇌부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던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당 안팎에선 “이 후보가 광폭 행보를 할수록 여권 권력암투를 둘러싼 균열은 커질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특히 이재명 후보의 지지도 정체는 당·청 균열을 가속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컨벤션효과(정치적 이벤트 이후 지지도가 상승하는 현상)’를 본 윤 후보의 지지도는 이 후보를 압도했다. 10%포인트(p) 이상 벌어진 결과도 속출했다.
그러자 이재명 캠프에서는 “차별화가 절실하다”는 반성이 쏟아졌다.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에 대해 고개를 숙인 이 후보는 10월 1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민주정부 참여 일원으로서 사과드린다”라고 한 뒤 “이재명 정부는 (문재인 정부와) 같은 뿌리에서 출발하지만, 더 유능한 정부가 될 것”이라고 재차 차별화를 시도했다. 언제든 여당발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갈등을 예고한 대목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부터 ‘말년 없는’, 즉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을 겪지 않는 정부를 역설했다. 지지도 하락 등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얘기지만, 임기 말까지 정국 주도권을 실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됐다. 최근 문 대통령은 요소수 대란 사태에서도 컨트롤타워 논란이 일자 ‘공직기강 다잡기’에 나섰다. 문 대통령은 대선 100여 일을 앞둔 11월 21일 ‘국민과 대화’에 나선다. 대통령이 임기 말에 대국민대화를 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복수의 여당 인사들은 “지지도 40%에서 나오는 자신감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여의도 정치권 안팎에선 문 대통령이 정권 출범 후 단 한 차례에 불과했던 국민과의 대화를 기획한 것을 놓고 ‘공직기강 잡기를 통한 레임덕 차단에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당 내부에선 “대선판의 주연이 누군지 모르겠다” 등의 반응도 나왔다. 문 대통령의 존재가 당·청 무게중심 이동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윤석열 후보는 ‘반문(반문재인) 깃발’을 들고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그는 당선 직후 수락연설에서 “이번 대선은 상식의 윤석열과 비상식의 이재명의 싸움”이라고 규정했지만, 한동안 ‘문재인 때리기’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 심판론이 커서다. 그간 각 후보의 널뛰기 여론조사 때도 변치 않는 흐름은 과반을 웃도는 ‘정권교체’ 요구였다.
최근엔 정권교체 여론이 더 거세게 일었다. 일요신문이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12명을 대상으로 11월 7일부터 9일까지 사흘간 실시한 여론조사(11일 공개,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에 따르면 ‘국정운영에 대한 심판을 위해 야당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은 53.9%를 기록했다(관련기사 [11월 여론조사] ‘대선후보 선호도’ 윤석열 45.0% vs 이재명 31.0%).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 여당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는 답변은 33.6%였다. ‘잘 모르겠다’는 12.5%였다. 이에 따라 윤 후보 대선전략은 ‘기승전·반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정부 4기 색채 빼기에 나선 이 후보를 문재인 대통령과 묶어 동시 공격하는 전략은 윤석열 후보의 옵션이다. 윤 후보가 대선 시대정신으로 ‘공정’과 ‘상식’을 콕 집은 것도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과 이 후보의 대장동 특혜 의혹을 겨냥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야당 내부에서도 “이 후보와 각 세우기보다는 문 대통령을 때리는 게 지지도에 더 효과적”이라는 데 동의한다. 한 관계자는 “정책 토론에 능한 이 후보와 맞서는 것보다는 정권교체의 당위성을 주창하는 편이 낫다”고 했다. 하지만 윤 후보가 반문 프레임에 갇히면 갇힐수록 미래 비전을 전달할 기회를 상실, 결국 패착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약점 많은 윤 후보가 대선 끝까지 인파이터 기질을 발휘할지도 미지수다. 윤 후보는 정치 입문 직후부터 ‘가족 비리 의혹’, ‘실언 논란’ 등에 휩싸이면서 궁지에 몰렸다. 강골 검사 특유의 인파이팅 대신 아웃복싱 전략으로 일관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경선 기간 고발사주 의혹까지 터지면서 윤 후보를 둘러싼 3대(가족·실언·고발사주) 리스크는 본선행의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민주당 한 의원은 “대선은 미래 비전 싸움”이라며 “그게 없으면 막판에 밀리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이 지점은 이 후보도 마찬가지다. 형수 욕설 논란 등에 휩싸인 이 후보도 최근 ‘오피스 누나’ 발언으로 뭇매를 맞자, 백브리핑을 전격 중단했다. 내부에선 “정리된 메시지를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사이다 특유의 강점을 걷어찼다는 지적도 있다. 진보진영 한 관계자는 “대선 주자가 백브리핑 중단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도 유례없는 일”이라며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대선”이라고 꼬집었다.
리스크 많은 두 후보가 참여한 대선에서 패를 쥔 것은 문 대통령뿐만이 아니다. 이재명·윤석열 후보가 수사선상에 오르면서 ‘검찰 주도 대선’이란 프레임이 짜였다. 검찰은 11월 8일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으로 사흘간 멈췄던 대장동 수사를 재개하고 김만배 씨(화천대유 대주주)와 남욱 변호사(천화동인 4호)를 소환 조사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11월 10일 고발사주 의혹 핵심 피의자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을 두 번째 소환 조사했다. 이를 본 정치권 한 관계자는 “누가 먼저 구속되는지를 겨루는 게임 같다”고 표현했다. 다른 관계자도 “패를 쥔 검찰이 대선 막판까지 대통령 눈치를 보다가 어떤 카드를 꺼내지 않겠나”라고 했다.
검찰 수사 결과가 대선 변수로 격상한 까닭도 이와 무관치 않다. 검찰 칼끝이 두 후보를 겨눈다면, 인파이터 성향의 이들은 방어 중심의 아웃복싱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강점인 공격은 없어지고 수비만 하다가 내년 3월 9일을 맞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사이다 발언에 따른 지지층 결집은 온 데 간 데 없고 이탈층만 생기는 두 고구마만 남을 수도 있다. 조건부 특검을 수용한 이 후보처럼 궁지에 몰릴 때 정면돌파를 시도할 수도 있지만, 자칫 스텝이 꼬이면 리더십 불안감만 증폭된다.
진보진영 다른 관계자는 “두 대선 후보가 검찰 수사에 걸린 점은 최대 아킬레스건”이라며 “이 부분에선 청와대와 검찰의 역학관계도 변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 두 칼잡이와 이들의 패를 쥔 청와대·검찰의 물고 물리는 수싸움은 대선 최대 분기점인 연말·연초께 최고조에 달할 전망이다.
윤지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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