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 채권단 조기 졸업 앞둬…두산중공업 정상화와 두산건설 매각 첫 과제로 꼽혀
#두 아들과 함께 두산 떠나는 박용만 회장
박용만 전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이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면서 두 아들도 함께 두산그룹을 떠난다. 11월 10일 두산그룹은 “박용만 회장이 두산경영연구원 회장직에서 사임한다”며 “두 아들인 박서원 오리콤 부사장, 박재원 두산중공업 상무도 '전문 분야에 맞는 커리어를 위해 그룹 임원직에서 물러난다'고 박 전 회장이 알려왔다”고 밝혔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박용만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서 이사장을 맡고 있는 재단법인 ‘같이 걷는 길’ 등을 통해 지역 사회에 대한 봉사, 소외계층 구호사업 등 사회에 대한 기여에 힘쓰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박서원 부사장과 박재원 상무는 각자의 개인 역량과 관심사를 확장해서 새로운 비즈니스를 전개해 나갈 계획이다. 크리에이티브 컨텐츠 분야 전문가이자 인플루언서로 자리 잡은 박서원 부사장은 관련 업계에서 다수의 유망 회사들을 육성하는 일에 이미 관여하고 있으며, 이제 본격적으로 관련 사업을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박재원 상무는 스타트업 투자 사업을 본격적으로 펼칠 예정이다. 박 상무는 두산인프라코어 재직 당시 미국 실리콘밸리에 스타트업 투자를 위한 벤처캐피탈 회사 설립을 주도하는 등 관련 사업에 관심과 역량을 보인 바 있다.
박용만 회장은 두산인프라코어 매각 이후 그룹의 모든 직책에서 사임하겠다고 거듭 밝혀왔다. 매각 이후 경영 실무는 관여하지 않고 있었고, 매각이 잘 마무리되면서 자연스럽게 사임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2월 현대중공업지주와 KDB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은 두산인프라코어 지분 34%를 8500억 원가량에 인수하는 본계약을 두산중공업과 체결했다. 이후 7월 공정거래위원회는 현대제뉴인의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를 승인했고, 8월에 인수대금이 완납됐다.
1955년생인 박용만 전 회장은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 회장의 5남이다. 1983년 두산건설 뉴욕지사를 시작으로 두산그룹 기획조정실장 등을 거쳐 1998년부터 그룹 지주사인 (주)두산 대표이사 사장을 지냈다. 사업 포트폴리오를 소비재 중심에서 제조업 중심으로 바꿨다. 오비맥주 매각과 한국중공업 인수 등의 굵직굵직한 인수합병을 주도해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성공적으로 변화시켰다. 지난 2012년 형제경영 전통에 따라 박용현 회장의 후임으로 두산그룹 회장에 올랐다.
지난 2016년 박용만 회장은 조카이자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 현 회장에게 총수직을 넘겼다. 3세 형제경영이 막을 내리고 ‘4세 사촌 경영시대’ 서막이 오른 셈이다. 경영에 참여 중인 두산그룹 4세만 10여 명에 이른다. 지분율은 박정원 회장(7.41%)에 이어 박지원 두산그룹 부회장(4.94%), 박진원 두산메카텍 부회장(3.64%), 박석원 두산 부사장(2.98%), 박태원 두산건설 부회장(2.70%) 순이다. 지분율은 출생 순서에 맞춰졌다. 경영권 분쟁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4세 경영시대 안착한 두산그룹
박정원 회장은 취임 이후 체질 개선에 힘썼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에너지 시장 흐름에 발맞추지 못했다는 평가다. 석탄, 가스 등 화석연료에 치중된 기존의 사업 포트폴리오에서 친환경 재생에너지 사업으로의 전환을 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글로벌 발전시장 선도기업들은 이미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결국 지난해 두산중공업발 유동성 위기로 채권단 체제에 들어서게 됐다. 당시 채권단과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약정을 맺고 수혈받은 자금이 3조 6000억 원에 달한다. 3년 내 상환 조건이었다.
박정원 회장은 구조조정을 통해 경영 정상화를 이뤄내고자 노력했다. 자구계획안에 따라 △클럽모우CC(1850억 원) △네오플럭스(730억 원) △두산타워(8000억 원) △두산모트롤BG(4530억 원) △두산솔루스(6986억 원) △두산인프라코어(8500억 원) 등의 자산을 연이어 매각했다. 두산그룹의 채무 잔액은 약 7000억 원으로 줄었다. 지배구조는 ‘(주)두산→두산중공업→두산퓨얼셀·두산밥캣’으로 바뀌었다.
그룹 체질 개선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11월 1일 (주)두산 지주부문 내 ‘그룹포트폴리오 총괄(사장)’을 신설하고, 김도원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서울 대표 파트너를 선임했다. 두산그룹은 2025년까지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수주 비중을 전체의 60%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특히 두산퓨얼셀, 두산로보틱스,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 등을 통해 미래 먹거리 발굴에 힘쓰고 있다.
두산그룹은 마지막으로 두산건설 지분 매각을 통해 채권단 관리 체제 조기 졸업을 추진 중이다. 지난 11월 4일 두산중공업은 “구체적으로 확정된 사항은 없지만,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자구안의 일환으로 자회사인 두산건설 지분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고 공시했다. 두산건설의 재무구조가 상당히 개선되면서 매각 적기라는 분석이 나온다. 2010년 1조 7310억 원에 달했던 순차입금은 올해 3분기 1026억 원 수준으로 급감했다. 이르면 11월 중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 두산건설 지분 매각계획서를 제출할 전망이다.
특히 두산중공업 정상화 작업과 두산건설 매각은 박지원 부회장(두산중공업 회장)의 첫 경영 시험대로 거론된다. 박정원 회장 다음으로 총수 자리를 이어받을 차례가 박 부회장이기 때문이다. 올해로 사내임기가 만료된 박 회장은 재선임되면서 2024년 3월까지 지위를 유지하게 됐다. 두산중공업은 두산건설의 지분 99.99%를 보유하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친환경 신재생 에너지사업으로 신규 수주액을 점차 늘려가고 있다. 지난해 친환경 신재생 에너지사업 신규 수주액이 1조 1000억 원에 달한다. △김포열병합발전소(3600억 원) △폴란드 폐자원에너지화 플랜트(2200억 원) △네팔 수력발전(4000억 원) △창원 수소액화플랜트(1200억 원) 등이다.
이와 관련,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두산건설 매각에 대해서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면서 “해상풍력, 미국 뉴스케일과 협력해서 차세대 소형모듈원전(SMR)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고 세계 5번째로 개발 성공한 가스터빈을 통한 LNG 발전 사업, 수소사업, 3D프린팅 사업 등과 같은 신사업들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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