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프 선정부터 성적 공개까지 평가원 손에…복수정답·출제오류 등 탓 역대 원장 절반 이상 중도퇴진
1998년 1월 1일 설립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고등학교 이하 각 학교의 교육과정과 교육평가를 연구·개발하고 시행함으로써, 국가 교육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일반적으로 평가원은 대학수학능력시험과 수능 모의평가를 출제하는 곳 정도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 기능은 더욱 다양하다. 검정고시는 물론 임용고시라고 불리는 교육공무원 임용후보자 선정경쟁시험 문제도 출제한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는 공무원 시험에서 공통 및 교육행정직 선택과목 문제를 출제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초·중·고 교과서 연구와 검인정 업무도 평가원이 맡는다.
그럼에도 국민들 입장에서 평가원의 가장 큰 존재 이유는 수능이다. 수능출제위원 선정부터 시험 날 수험생들이 쓰게 될 샤프 업체 선정, 시험지 인쇄, 성적 공개까지 모두 평가원의 손을 거치는 까닭이다. 특히 2019년에는 2012학년 이후 8년 만에 수능 샤프가 교체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전의 샤프로 미리 시험감각을 익혔던 수험생들에게 비판을 받기도 했다. 변경된 제품을 공개해달라는 일부 수험생들의 요구가 있었지만 교육부와 평가원 측은 부정행위 방지를 위해 샤프 제조업체와 종류를 공개하지 않겠다는 기조를 유지한 바 있다(관련기사 ‘꼴랑 2억짜리? 시장 지배자!’ 수능 샤프 논란의 모든 것).
한편, 평가원의 수장인 평가원장은 ‘수능의 총책임자’로 교육계에서는 최고의 명예직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차관급이며 임기는 3년이다. 임명 이후엔 매년 경영성과와 연구실적 등에 대해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의 평가를 받게 된다.
교육계 안팎에서는 평가원장의 성향이 수능에 영향을 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신임 원장이 취임하면 교육자로서 보여 온 행보와 교육관을 분석하는 기사가 쏟아지는 이유다. 특히 2017년 성기선 제10대 원장 취임 이후에는 수능 절대평가가 화두로 올랐다. 성기선 전 원장이 2013년 민주통합당 전대준비위원회가 국회에서 개최한 ‘사회정책과 민주통합당’ 토론회에 참석해 “내신에 의한 선발을 강화하고 수능을 자격고사화해서 최소한의 기능만을 갖도록 하겠다”고 한 발언 때문이다. 이후 2018학년도 수능에서는 한국사에 이어 영어 과목이 절대평가로 전환되었으나 전과목 절대평가 확대는 사실상 무산되었다.
지난 2월에는 강태중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가 제11대 원장으로 취임했다. 강태중 원장 역시 교육계에서는 진보 성향을 가진 교육자로 평가된다. 강 원장은 앞서 수능 영어영역 절대평가 제도 도입 논의 당시 영어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절대평가를 확대해야 한다는 교육부 정책 연구진의 입장을 대표한 바 있다. 9월에는 강 원장이 필진으로 참여한 저서에서 수능 폐지를 주장해 비판이 일기도 했다. 이에 대해 강 원장은 “취임 전 교육학자로서 입시위주 교육 문제를 걱정하며 썼던 원고였다”며 “수능은 대입 전형의 핵심적인 요소”라고 해명한 바 있다. 한편 강 원장은 2025 고교학점제,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흥미로운 점은 역대 평가원장 대부분이 임기를 마치지 못 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점이다. 이들의 운명을 가른 것도 결국엔 수능이었다. 매년 수십만 수험생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자리다 보니 문제 출제 오류나 난이도 조정 실패 등 수능에서 생긴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평가원장의 몫으로 남는 까닭이다. 실제로 10명(연임 포함)의 역대 원장 가운데 임기 3년을 다 채운 사람은 많지 않다. 박도순 제1대 원장, 정강정 제4~5대 원장, 성태제 제7대 원장과 성기선 제10대 원장, 단 4명뿐이다.
김성동 제2대 원장의 경우 2002년 교육청 연합학력고사 채점오류 사태와 한국근현대사 검정교과서 편향 기술과 관련해 정부 내부 대책문건을 당시 한나라당에 유출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아 1년 8개월 만에 사퇴했다. 이종승 제3대 원장은 2004학년도 수능출제위원 가운데 수능 학원강사 출신 초빙교수가 포함된 사실과 그 해 수능 언어영역 17번 문제의 복수 정답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1년 3개월 만에 자리에서 내려왔다.
역대 원장 중에서는 최초로 제4~5대 연임에 성공한 정강정 전 원장 역시 2008학년도 수능 물리2 복수정답 문제로 두 번째 임기 1년 만에 자리에서 내려왔다. 뒤이어 김성훈 제8대 원장은 2015학년도 수능 생명과학2와 영어 문제의 복수정답으로, 김영수 제9대 원장은 2017학년도 수능 물리2와 한국사 과목에서 출제 오류로 사임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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