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현·송혜교 흔들리는 사이 두 아역 출신 시청률·화제성 둘 다 잡아
10월과 11월에 주연 드라마를 내놓은 톱스타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고현정과 이영애를 시작으로 전지현, 송혜교, 한효주가 일제히 신작을 갖고 돌아왔다. 대부분 20여 년을 훌쩍 넘기며 톱스타의 자리를 지킨 배우들이다. 그만큼 제작진이 간절히 캐스팅을 원하는 ‘시청률 메이커’들이다.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동시기에 톱스타 컴백이 이어지면서 안방극장에서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특히 11월 13일은 그야말로 ‘대전’이라 불렸다. 전지현과 송혜교, 이영애와 한효주까지 4명이 각각 주연한 드라마의 편성 시간이 교묘하게 맞물리면서 흥미진진한 4파전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눈에 띄는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 이날 4편의 드라마 가운데 시청률 10%를 넘는 작품이 단 한 편도 없다는 사실은 이들의 ‘현재’를 보여준다.
대신 요즘 방송가에서 진짜 화제작으로 꼽는 드라마는 따로 있다. 대중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로맨스 사극 KBS 2TV 월화드라마 ‘연모’와 MBC 금토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이다. 20대 여배우 박은빈과 이세영이 각각 주연을 맡아 애틋하면서도 풋풋한 로맨스를 소화하고 있다. 두 배우는 선배 톱스타들에 비해 인지도는 낮지만, 아역부터 연기를 시작해 내공을 다진 실력자들이다. 시청률은 물론 화제성 면에서도 밀리지 않는다.
#박은빈‧이세영…알짜 ‘시청률 퀸’ 등극
톱스타의 이름값은 과연 시청률 보증수표로 계속 통할 수 있을까. 부정적인 예측이 우세하다. 특히 요즘처럼 플랫폼이 다변화하고 콘텐츠 경쟁이 치열한 환경에서 ‘스타가 드라마 성공의 열쇠’라는 공식은 허물어지고 있다.
사실 ‘지리산’과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가 올해 방송가 기대작으로 주목받은 데는 전지현과 송혜교라는 걸출한 스타가 주인공을 맡았다는 점이 주효했다. 20년 넘도록 톱스타의 자리를 지킨 이들은 중국을 중심으로 아시아에 발원한 한류의 씨앗이자 열풍의 주역으로 통한다.
하지만 이제 콘텐츠 시장은 달라졌다. 한국 드라마는 넷플릭스를 필두로 최근 국내에 상륙한 디즈니 플러스(+), 애플TV 플러스 등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를 통해 전 세계에 동시 공개되고 있다. 누가 출연했는지보다 누가 만들었는지, 어떤 이야기인지 등 완성도가 중요한 환경이다. 안방극장은 물론 OTT에서도 강자의 면모를 과시하는 드라마 ‘연모’의 상황이 이를 대변한다.
박은빈과 로운이 주연한 KBS 2TV ‘연모’는 웰메이드 드라마로 평가받고 있다. 동명 순정만화를 원작 삼아 비밀스러운 궁중 로맨스를 그린다.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여아라는 이유로 버려졌던 아이가 오빠인 세손의 죽음 이후 남장을 하고 세자 행세를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출연진의 탁월한 연기와 탄탄한 만듦새로 완성하고 있다.
시청률도 눈에 띈다. 11월 15일에는 최고치인 7.8%를 기록했다. 지상파 미니시리즈가 오랫동안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과 비교하면 평일 밤 기록으로 돋보이는 성과이다. 심지어 온갖 물량공세를 퍼부은 ‘지리산’의 시청률과도 비슷하다. 작품의 인기는 넷플릭스 순위에서 나타난다. ‘연모’는 45주차 ‘인기 TV 프로그램 TOP 10’ 정상에 올랐고, 전 세계 TOP 10 순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특히 일본,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에서 강세를 보인다.
‘연모’의 주인공인 박은빈은 전지현, 송혜교 등과 비교해 몸값이나 인지도가 한참 부족한 20대 배우이지만 시청률 타율에서만큼은 밀리지 않는 진짜 실력자다. 2019년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로 시청률 19.1%를 달성했고, 2020년 SBS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같은 시간대 박보검의 tvN ‘청춘기록’과 맞붙고도 6%대의 시청률을 유지해 화제를 모았다.
행운도 이어진다. ‘지리산’과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가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지 않는 틈에 ‘연모’를 통해 세계 시청자에게 ‘로맨스 뉴스타’로 빠르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작품에 임하는 자세도 남다르다. 박은빈은 자칫 식상할 수 있는 ‘남장 여자’ 설정을 두고 “남자 혹은 여자라는 이분법적인 구분이 아닌 그 인물 자체로 보이고자 연기했다”며 “대본을 보는 순간 (연기에 있어서) 새로운 꿈이 생기는 느낌이었다”고 밝혔다.
한쪽에서 이세영은 송혜교와 맞대결을 벌이고 있다. MBC ‘옷소매 붉은 끝동’은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와 같은 날, 같은 시간대에 출발했지만 결코 밀리지 않았다. 시청률 차이부터 크지 않다. 첫 회 시청률은 5.7%로, 송혜교의 기록(6.4%)과 불과 0.7%포인트(p)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물론 2회에서는 시청률 격차가 2.4%p까지 벌어졌지만, 아역 분량이 끝나고 성인 연기자들이 본격 등장해 한층 깊어진 사랑 이야기를 예고한 만큼 대결의 결과를 섣불리 예측할 수 없다.
‘옷소매 붉은 끝동’ 역시 ‘연모’와 마찬가지로 동명 소설이 원작인 로맨스 사극이다. 금지된 사랑에 빠진 남녀의 애틋한 러브스토리를 내세운 점에서 ‘연모’는 물론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의 설정과도 일면 겹친다. 송혜교로서는 뜻밖의 ‘복병’을 만난 셈이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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