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폭리의 구조
2020년 9월부터 올 9월까지 시장금리는 5년 만기 국고채가 1.19%에서 1.79%로 0.6%포인트(p), 1년 만기 국고채가 0.71%에서 1.07%로 0.36%p 상승했다. 같은 기간 은행 가계대출 금리(신규)는 주택담보대출이 2.44%에서 3.01%로 0.57%p, 신용대출이 2.89%에서 4.15%로 1.26%p 오른다. 시중금리 상승분이 고스란히 대출금리에 반영된 셈이다.
반면 같은 기간 은행 정기예금 금리는 1년짜리가 1%에서 1.31%로 3년 미만이 0.96%에서 1.3%로 0.3%p 남짓 움직였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25% 인상한 지난 8월 이후 인상폭은 각각 0.15%p와 0.06%p에 불과하다. 물건 값은 계속 올리면서 원가는 낮게 유지하며 이익이 급증했다.
은행의 잔액 기준 예대금리차(가계대출 금리-저축성수신 금리)는 9월 말 2.14%p. 2010년 10월(2.22%p) 이후 약 11년 만의 최대치다. 올해 3분기까지 19개 은행의 누적 순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5% 증가한 15조 5000억 원이다. 지난해 연간 순이익 12조 1000억 원보다 3조 4000억 원 많다. 이자이익은 33조 700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0조 8000억 원)보다 2조 9000억 원(9.4%) 늘었다.
#예대마진 수준 높여
시장금리 변동에 따라 동시간 연동되는 대출 금리와 달리 예·적금은 주로 1~2년 만기의 고정금리다. 은행들이 기준금리 인상분을 반영하기까지 일정 시간이 소요된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한국은행과 정부가 푼 돈은 시중에 넘쳐나는데, 목돈 마련 수단으로 저축보다 투자를 선호하면서 은행 예금은 이자가 가장 낮은 수시입출금식 상품에만 몰렸다. 정부가 대출총량을 제한하면서 대출 재원 마련을 위해 수신을 늘릴 필요도 없어졌다. 굳이 예금이자를 높일 이유가 없는 셈이다.
은행들은 예금이나 은행채 발행으로 조달한 원가에 각자의 비용과 이익을 녹인 가산금리(자금 보유 현황, 마케팅 전략 등의 경영 정책, 금융시장 상황 등을 고려한 금리)를 붙여 대출금리를 결정한다. 정부가 가계대출 총량을 제한하자 은행들은 우대금리를 없애 실질 가산금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대출을 늘려 예대마진 총액을 늘릴 길이 막히자 예대마진 수준 자체를 높여 이익 총량을 계속 키우려는 접근이다.
#은행에 넣어두면 손해
한국은행에 따르면 9월 현재 국내은행의 순수저축성예금 금리(신규취급액 기준)는 1.16%다. 9월 물가는 전년동월대비 2.48% 올랐다. 물가를 감안한 실질예금금리는 -1.32%다. 이자소득세율(15.4%)까지 반영하면 실질금리의 마이너스폭(-1.50%)은 더 커진다.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근 10년 만에 3%대(3.18%)를 기록한 상황에서 예금금리가 9월과 같은 수준(0.16%p)으로 증가한다면 실질금리는 -1.86%로, 한은이 은행 가중평균금리 통계 작성을 시작한 1996년 이래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하게 된다. 은행에 돈을 두면 실질 가치가 더 떨어지는 셈이다.
그러면 은행 대신 2금융권 예금을 이용하면 어떨까. 한국은행에 따르면 9월 저축은행 정기예금 평균 금리는 12개월 기준 2.37%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신용협동조합은 1.87%, 상호금융은 1.31%, 새마을금고는 1.89% 등으로 나타났다. 신협의 수신금리는 지난해 12월 연 1.67%에서 매월 올랐다. 수시입출예금 역시 저축은행 등 2금융권이 더 높다. 예금자보호는 은행과 저축은행이 5000만 원으로 같다.
#인터넷·저축은행 속수무책
대부분의 예금이 은행에 몰리는 이유는 안전성과 편의성 때문이다. 덩치가 훨씬 더 크고 이용도 편리한 데다, 유사시 정부 지원도 신속히 이뤄져 자산이 안전하게 지켜질 것이란 믿음이다. 예금과 달리 대출금리는 2금융권보다 여전히 월등히 비교우위다.
이 때문에 은행들의 ‘배짱’ 영업을 막기 위해서는 인터넷전문은행이 금리 경쟁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인건비나 점포비용 등 고정비 부담이 적은 인터넷은행들은 이론적으로 더 높은 예금금리와 더 낮은 수신금리가 가능하다. 하지만 은행들은 자기자본의 12배까지만 영업이 가능하다. 현재 인터넷은행들의 자본규모로는 기존 은행들로부터 예금과 대출자산을 빼앗아오는 것에 한계가 존재한다. 이는 저축은행 등 비은행회사들도 마찬가지다. 당장은 속수무책인 셈이다.
다만 길게 보면 인터넷은행들이 이익유보나 증자 등으로 자본을 더 늘려 영업한도를 높이고, 점포 방문 없이 대출 기관을 바꿀 수 있는 비대면 대환대출 플랫폼이 구축된다면 기존 은행들에는 상당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인건비로 다 나가니…’ 은행권 대박 수익에도 주가는 지지부진 까닭
은행권이 천문학적 이익을 거두고 있지만 은행지주 주가는 지지부진이다. KB금융은 올 들어 30%가량 주가가 올랐지만 2018년 전고점 대비 20%가량 낮은 수준이다. 신한지주는 2007년 전고점의 60% 수준이다. 시가총액은 각각 23조 원, 19조 원대로 덩치가 10분의 1도 안 되는 카카오뱅크(29조 원)보다 작다. 그나마 KB와 신한 시총은 은행과 비은행을 포함한 금융그룹 기준이다. 비슷하게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22조 원)의 시총을 합하면 50조 원이 넘는다.
국내 최대 금융그룹의 기업가치가 카카오금융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굴욕’이다. 원인은 은행들이 번 돈 대부분을 직원 급여 등 인건비로 쓰고 있어서다. 국민을 상대로 번 이자이익으로 내부 돈잔치만 벌이다 보니 시장가치는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는 셈이다.
5대 은행지주가 올 들어 3분기까지 지출한 판매관리비(판관비)는 18조 2450억 원으로 이 가운데 64.3%인 11조 7280억 원이 인건비다. 판관비 증가율(7%)보다 인건비가 더 많이 늘어나면서(10.4%) 판관비 대비 인건비 비율이 더 높아졌다. 같은 기간 순이익의 82.4%에 달한다.
특히 중장년 중심의 항아리형 인력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인력 구조조정 비용이 엄청나다. 사실상 정년 보장이 이뤄지는 고용구조에서 효율이 떨어지는 인력을 줄이기 위해서는 희망퇴직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런데 법정 퇴직금을 제외하고 5억 원을 넘지 않던 희망퇴직 위로금은 천정부지다. 최근 한국씨티은행은 1인당 최대 7억 원의 특별퇴직금을 내걸었다. SC제일은행은 최근 1년에 한번씩 임금피크제에 해당하는 직원을 대상으로 한 특별퇴직에서 최대 6억 원의 특별퇴직금 지급을 제시했다.
올해 기록적 이익이 사실상 확정된 상황에서 비슷한 임금체계를 가진 은행권 전반이 씨티나 제일은행을 전례로 삼아 희망퇴직금 증액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