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호위무사’ 전방 배제가 컨트롤타워 부재 낳아…윤석열 ‘김종인 등판’ 맞물려 내부권력 다툼
양강 대선 후보에 특명이 내려졌다. 핵심은 여야 운명을 뒤바꾼 2007·2002년 대선 패배의 전철을 밟지 않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전신 대통합민주신당은 제17대 대선 당시 친노(친노무현) 프레임에 갇히면서 자멸했다. 국민의힘 전신 한나라당은 2002년 대선 때 보수진영의 최상 후보였던 ‘이회창 대세론’을 내세우고도 일격을 당했다. 이재명 민주당·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가운데 ‘제2의 정동영·이회창’으로 전락하는 쪽이 패배한다는 얘기다. 양쪽 선거대책위원회 모두 ‘컨틴전시 플랜(비상 계획)’이 필요한 셈이다.
꼭 빼닮았다. 양강 주자를 휘감는 위기는 그때와 판박이다. 민주당 내부는 친문(친문재인)계와 비문(비문재인)계가 불안한 동거를 하고 있다. 2007년 대선 직전 친노 중심의 열린우리당을 깰 당시보다는 덜하지만, 당 내부에선 “선대위 실무진이 돌아가고 있지 않다(우상호 민주당 의원)”는 비판까지 제기됐다.
위기를 느낀 이 후보는 연일 직진 본능을 앞세워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하지만 ‘이명박(MB) BBK 공세’에 매몰된 2007년 대선 판박이로 흐르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기류도 팽배하다. 제17대 대선은 민주당 인사들에게 ‘역대 대선 최대 격차(531만 7708표)·민주당 계열 후보 최소 득표(617만 4681표)’로 기억되는 최악의 선거다. 한 인사는 “생각하기도 싫다”며 “이후 9년 2개월간의 이명박·박근혜 시대가 도래하지 않았느냐”라고 했다.
윤석열 선대위도 위기에 봉착하긴 마찬가지다. 윤 후보의 꽃길은 대선 경선 컨벤션효과(정치적 이벤트 이후 지지도가 상승하는 현상)까지였다. 한때 당 사무총장 인선 등을 놓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난기류를 형성하자, 양측 간 역할분담에 대한 의구심도 커졌다. 윤석열 캠프에서 인재영입위원장을 맡았던 김영환 전 의원은 당직자들에게 일괄 사표를 제출하라고 요구하는 등 곳곳에서 충돌을 빚었다.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대세론’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도 후보 아들 병역 비리 의혹과 함께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와 대구·경북(TK) 대부였던 허주 김윤환계의 이탈이 한몫했다. 이른바 ‘김종인·김한길 카드’가 부상하면서 당내 갈등은 봉합 수순에 돌입했지만, 향후 권력암투가 다시 촉발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여의도에선 이재명·윤석열 후보를 놓고 “위기도 쌍둥이 같다”는 말이 나온다.
더 큰 위기감에 휩싸인 쪽은 이재명 선대위다. 민주당 선대위는 원팀은커녕 ‘관료 조직화됐다(최지은 선대위 대변인)’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낙연 전 의원에 합류했던 친문계의 적극적 지원도 부족하다. 무늬만 매머드급이지, 속내는 모래알이다. 전략통인 우상호 민주당 의원이 1월 15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 “당 선대위 대응 체제에 굉장히 문제가 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했을 정도다.
한 핵심 관계자도 “제대로 된 선거 슬로건도 없다”고 했다. 당 복수 관계자들이 꼽은 선대위 문제점을 요약하면 ‘컨트롤타워 부재’다. 선대위의 ‘비상근 체제’도 ‘외부 영입난’도 실무진의 컨트롤타워 부재에서 파생한 부작용이다. 내부에선 “현역 169명이 뜨면 뭐 하느냐. 일 집행할 사람이 없는데…”라는 하소연도 나온다.
당 의원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됐을 땐 달랐다”고 했다. 2002년 대선에선 ‘금강팀’, 2017년 대선에선 ‘광흥창팀’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으며 각각 노무현·문재인 선대위를 움직였다. 민주당이 패한 2012년 ‘문재인 선대위’는 현재 이재명 선대위와 비슷했다고 한다. 문재인 선대위는 당시 비서실과 총무·기획·전략 등으로 세분화했으나, 본부장 간 의견을 조율할 컨트롤타워 기능은 약했다는 게 중론이다.
당시 캠프에 합류했던 인사는 “본부장 간 충돌로 의사결정 자체가 번번이 무산, 실무진 사이에 불만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 후보의 최측근을 지칭하는 ‘7인회’의 2선 후퇴가 컨트롤타워 부재를 가속했다는 지적도 있다. 7인회 멤버는 김남국 김병욱 김영진 문진석 이규민 임종성 정성호(가나다순) 의원이다. 경기성남 라인과 함께 ‘이재명 호위무사’였던 이들은 경선 직후, 원팀 균열에 대한 우려로 전방 배치에서 빠졌다.
부작용은 곳곳에서 나타났다. 역컨벤션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 후보의 입은 한층 거칠어졌다. ‘홍남기(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때리기’에 나선 이 후보의 직진 본능은 야당·검찰·언론 등으로 전선을 넓혔다. 여권 지지층 일부는 ‘싸움닭 이재명이 돌아왔다’고 평가했지만, 이 후보의 독주에 대해선 적잖은 우려를 쏟아냈다. 당 내부에서조차 “지지도 하락에 따른 조급증이 드러났다”, “주4일제 등을 보면 당·정·청이 따로 놀고 있는 것” 등의 비판도 쏟아졌다.
그사이 이 후보는 문재인 대통령과 차별화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특히 부동산 정책에 이어 문재인 정부의 아킬레스건인 2030세대 문제에 대해 “깊이 반성한다”고 하자, 청와대 내부에선 불편한 기색이 감지됐다. 여권 인사들은 “문재인 정부와 차별화는 더욱더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07년에도 그랬다. 정동영 당시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는 친노 색 빼기에 치중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차별화 결과는 지지층의 투표 보이콧이었다. 정 후보의 26.1% 득표율은 호남 유권자 수와 비슷하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 의뢰로 11월 12∼13일 조사(15일 공개,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한 결과에 따르면 진보층 응답자는 24.4%에 불과했다. 이는 KSOI·TBS 공동 조사 이래 최저치다. 이 조사의 다자 가상대결에서 이 후보(32.4%)는 윤 후보(45.6%)보다 13.2%포인트(p) 뒤처졌다. 당 안팎에선 “이해찬·양정철 등의 조기 등판이 필요하다”는 구체적 조언까지 제기됐다.
지지도 높은 윤석열 후보의 고민도 깊다. 이 후보가 정동영 리스크에 걸렸다면, 윤 후보 곁엔 ‘이회창 데자뷔’가 째깍거리고 있다. 최근 여의도엔 김종인 전 위원장의 등판과 맞물려 ‘파리떼 살생부’가 떠돌았다. 김 전 위원장이 선대위 합류 조건으로 윤석열 캠프 핵심 구성원을 빼라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도 ‘사무총장 난기류’로 윤 후보와 갈등을 빚자, “(그것은) 주변 하이에나 때문”이라고 했다. 극한 갈등은 피했지만 제1야당 내부엔 여전히 파리떼와 하이에나를 비롯해 ‘자리 사냥꾼’, ‘거간꾼’ 공방이 펼쳐졌다. 윤 후보 측 인사들은 김 전 위원장을 향해 “상왕이냐”며 반발했다.
김종인 전 위원장도 반격에 나섰다. 그는 11월 12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2002년 ‘이회창 패배’를 언급, “한쪽은 기득권층에 많이 의존했고 한 후보자는 서민풍이었다”고 했다. 기득권에 의존한 이회창 후보가 서민 콘셉트로 바람을 일으킨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무릎을 꿇었다는 얘기다. ‘전투형 노무현’으로 불리는 소년공 출신 이재명 후보를 상대하기 위해선 기득권 의존을 버리고 정책으로 미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혔다. 김 전 위원장이 중위소득 50% 이하 지원을 핵심으로 하는 ‘보수판 기본소득제’ 등을 검토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보수진영 한 관계자는 “김 전 위원장이 중도층 공략을 위한 필살기를 준비한 지 꽤 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적은 내부에 있다. 국민의힘 일각에선 “내부 권력다툼에 힘만 빼다가 2002년 대선 때처럼 단일화에 허를 찔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회창 대세론 붕괴의 결정적 분기점은 노정(노무현·정몽준) 단일화였다. 윤석열 대세론을 뒤흔들 진보 단일화의 문 역시 닫히지 않았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는 “후보 단일화는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진보진영 내부에선 “독자적 진보정당 구축을 위해선 지방선거가 더 중요하다”는 반론도 끊이지 않는다.
여의도 정치권엔 민주당과 제3지대 단일화설도 떠돈다. 제3지대가 선 단일화 후 민주당과 전격 손을 맞잡는다면, 윤석열 대세론이 흔들릴 수도 있다. 이회창 대세론이 노정 단일화에 무너졌듯이, 윤석열 대세론도 반윤 단일화에 일격을 당할 수 있다는 얘기다. 윤석열 대세론이 나올 때마다 ‘20년 전 평행이론’이 뒤따라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내부 권력암투를 빼고도 윤석열 대세론을 흔들 리스크는 산적하다. 윤대진 친형 뇌물수수 사건을 비롯해 옵티머스 부실 수사, 한명숙 모해위증 교사 수사방해 의혹 등이 대표적이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자당의 대선 후보를 지키는 호위무사보다는 권력 불나방들이 많다는 게 중론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내년 2월까지 수차례 변곡점을 맞을 수밖에 없다”며 “윤석열 대세론도 그때나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윤지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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