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일가 대규모기업집단 포함 부담 느낄 수도…농심 “재무건전성 이미 우수, 굳이 할 이유 없어”
1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농심은 지난 3분기 별도기준 자산 총계 2조 5017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말 기준 2조 4941억 원 대비 0.3% 증가한 수준이다.
일각에서는 농심의 자산 가치가 저평가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농심은 1999년 6월을 마지막으로 자산재평가를 하지 않고 있다. 그새 농심이 자산으로 분류하고 있는 토지의 가치가 상당 부분 상승했을 것으로 보인다.
1999년 당시 자산재평가를 통해 농심의 자산으로 묶인 토지 가치는 1998년 927억 원에서 1999년 3517억 원으로 3.79배 상승했다. 당시 농심이 진행했던 자산재평가는 1983년 이후 16년 만에 이뤄졌다. 해당 토지는 농심 소유로 보인다. 토지를 임차한 경우 사용권자산으로 분류하기 때문에 대부분 소유 토지를 유형자산 가운데 토지로 분류한다.
현재 농심이 자산으로 분류하고 있는 토지의 가치는 3716억 원으로 20년 넘게 지났지만 변동 폭이 크지 않다. 농심이 다시 자산평가를 하면 기업의 재무건전성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대체적으로 토지 가격은 시간이 지나면 우상향의 모습을 보인다.
이전 자산재평가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토지가치가 상승(3.7배 적용)한다면 토지 가치는 1조 4083억 원까지 증가한다. 기존 대비 1조 원 이상 증가하는 셈이다. 실제 농심 소유의 경기도 군포시 당정동 공장 부지의 공시지가를 보면 1999년 단위면적(㎡)당 49만 1000원에서 2021년 187만 8000원으로 3.82배 상승했다.
농심 소유의 토지가치가 상승하면 기업가치 제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재무건전성이 개선되면 자금 조달 비용이 감소할 수 있어서다. 한 기업신용평가사 관계자는 “통상 감사보고서를 기준으로 기업의 신용도를 평가한다”며 “재무건전성에 영향을 줄 정도로 토지가치가 상승하면 해당 기업은 (신용등급을 올리기 위해) 자산재평가를 거친 감사보고서를 제출한다”고 말했다.
기업가치 제고에 따른 주가 상승도 기대할 수 있어 주주들에게 긍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다. 자산재평가에 따른 재무건전성 향상은 주가에 호재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
감사보고서상 토지 평가 가치가 오른다고 해서 세금이 기존보다 증가하는 것도 아니다. 국세청은 매년 국토교통부가 발표하는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부동산 관련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토지나 건물 등 부동산에 대한 세금은 가장 공신력 있다고 판단되는 국토부 공시지가를 바탕으로 가치를 평가해 부과한다”며 “이외 자료를 참고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향후 자산재평가를 진행해 달라는 주주들의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 농심의 주가(18일 종가 28만 4000원)는 2016년 50만 원대를 기록한 이후 반토막 가까이 내려앉았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보통의 경우 자산재평가로 기업가치가 높아지는 경우는 드물다”면서도 “하지만 토지 가격 등 자산의 가치가 급격히 높아진 상태에서 자산재평가가 이뤄져 재무건전성이 개선되면 투자 관련 지표가 매력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심이 가는 부분은 농심의 자산 규모가 확대되면 농심그룹은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지정하는 대규모기업집단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공정위는 감사보고서상 자산총액 기준 5조 원이 넘는 그룹을 대규모기업집단으로 지정하고 매년 발표하고 있다. 지난 8월에도 공정위는 대규모기업집단 명단을 발표했다.
당시 명단에는 농심그룹이 제외됐다. '일요신문i' 취재 결과 공정위는 농심그룹 자산 규모를 4조 9000억 원가량으로 판단했다. 1000억 원이 부족해 제외된 것. 농심 관계자는 “그동안 계열사에 포함됐던 회사 가운데 계열사로 인정하기 어려운 기업들은 제외했고 이 점을 공정위가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앞서 언급한 농심의 자산 가치가 재평가를 통해 1조 원가량 상승한다면 농심그룹은 무난히 대규모기업집단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기업 지배구조가 투명해지기 때문에 농심 주주 입장에서는 긍정적인 상황으로 해석된다. 공정위는 대규모기업집단에 포함된 회사에 대한 공시 의무를 강화하고 있다.
반면 농심그룹 오너 일가 입장에서는 대규모기업집단에 포함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대규모기업집단에 포함되면 총수나 총수 2세 등 오너 일가가 지분을 가지고 있는 회사에 대한 자료를 매년 공정위에 제출하고 공시해야 한다. 특히 대규모기업집단은 공정거래법상 일감몰아주기 규제(사익편취 규제) 대상이 되기 때문에 농심그룹이 여기에 포함되면 오너 일가 지분율이 높은 회사(20%)와 계열사의 거래에 부당한 내용이 없는지 더욱 신경 써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일부에서는 농심이 의도적으로 그룹 규모를 축소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나오기도 한다.
공정위 관계자는 “대규모기업집단 대상은 감사보고서를 기준으로 정한다”며 “이 때문에 장부상 토지가치가 실제 토지가치보다 낮아 대규모기업집단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을 구조적으로 막을 순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만약 그런 사례가 다수 발견된다면 (개선을 위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농심 측은 자산재평가를 일부러 회피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강조한다. 농심 관계자는 “자산재평가는 기업의 선택사항이지 법적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수익성과 재무건전성이 양호해 굳이 자산재평가를 할 이유가 없으며 오히려 자산재평가에 따른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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