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해경 회화에는 말이 없다. 그림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찾을 수 없다는 말이다. 미술에서 말이 없어진 것은 후기인상주의 화가 세잔 이후부터다. 현실 세계를 재현하는데서 벗어나 화면 속에다 독자적인 세계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회화가 현실의 이야기를 담아내지 않으니까 자연스럽게 말이 없어지게 되었다.
말이 없어진 회화는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새로운 수단을 만들게 되었다. 이야기 대신 감성이나 이성으로 대중과 소통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회화성’이라고 한다. 회화라고 구분할 수 있는 고유한 영역이 생겼다는 말이다. 이러한 영역은 회화의 기본 요소가 되는 점, 선, 면, 색채가 성격을 가진 독자적인 언어가 되었다는 얘기다.
즉 점, 선, 면은 더 이상 사물의 윤곽을 닮게 그려내는 수단이 아니며, 색채 또한 사물을 실감나게 설명하기 위해 쓰이지 않게 되었다. 독자적 언어로 승격된 점, 선, 면, 색채는 화면 속에서 조화를 만들어 감성과 이성에 호소함으로써 미술의 새로운 세계를 열었던 셈이다.
미술사에서는 이미 100년을 훌쩍 넘긴 옛날 일이다. 미술의 이러한 문법은 지난 한 세기 동안 수없이 변형되며 끊임없이 새로운 미술 언어를 생산해냈고, 지금까지 유통되고 있다.
말이 없는 대표적인 회화는 추상이다. 그런데 안해경의 그림은 추상이 아니다. 매우 사실적 느낌의 구상 회화다. 말 없이도 그의 그림은 우리에게 이야기를 한다. 구체적 이야기가 없는 안해경 회화는 ‘감성’으로 대중과 소통한다. 시각을 매개로 하는 직접 소통인 셈이다.
감성을 자극하는 그의 첫 번째 언어는 색채다. 색채의 배열과 조합은 물론 발색의 효과적인 운용이 안해경 회화의 장점이다. 농익은 중간 톤의 색채가 빚어내는 조화는 고급스럽다. 그래서 작가의 그림에서 처음 느껴지는 감성은 격조다. 격조 있는 화면은 회화의 본령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두 번째로 보이는 언어는 붓질이다. 색채의 깊이감을 연출하는 붓질은 오랜 공력의 결실로 보인다. 많은 제작 경험이 없이는 나올 수 없는 붓질이다. 뚜렷하게 붓질 흔적이 보이지는 않지만 색채의 두께를 만들어 그림을 오래 볼 수 있게 유도한다.
이러한 회화 언어로 감성에 호소하려는 작가가 궁극적으로 말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름다움의 본질인 편안함이다.
작가의 회화적 감성 언어를 담아내는 그릇은 꽃이다. 꽃 중에서도 그는 수국을 집중적으로 그린다. 그래서 ‘수국 작가’로 알려져 있다. 안해경이 고수하는 전통 채색 기법은 수국의 잔잔한 아름다움의 진가를 빛나게 하는 또 다른 요소로 보인다.
전준엽 화가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
전준엽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