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지지율 답보에 ‘차별화 행보’…청와대 출신 일부 인사들 정기 회동 갖고 퇴임 후 대비 논의
“이재명이 달라졌다.”
최근 청와대 내부 관계자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이재명 후보가 경선 전과 후가 달라졌다는 얘기다. 말 속엔 ‘뼈’가 들어있었다. 무슨 뜻일까. 청와대 고위직에 근무했던 한 핵심 친문 인사에게 물었더니 이런 답을 들려줬다.
“이재명 후보에 대한 우리의 솔직하고 일관된 속내는 ‘믿기 어렵다’였다. 그런데 경선 전부터 경선 기간 내내 친문과 소통하려 했고, 또 문 대통령을 계승하겠다고 여러 번 얘기했다. 그 진정성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도왔다. 그런데 경선 승리 후 지지율이 오르지 않자 문 대통령을 밟고 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 후보를 언제까지 지지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정가에선 이 후보가 경선 후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을 비판한 게 도화선이 됐다고 본다. 이 후보는 11월 2일 선대위 출범식에서 “높은 집값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국민을 보면서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면서 “부동산 문제로 국민들께 너무 많은 고통과 좌절을 드렸다. 진심으로 사과 말씀 드린다”고 했다.
그 직후 일부 친문 의원들은 이 후보를 성토했다. 이 후보가 경선 때 도움을 줬던 친문계를 ‘토사구팽’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뒤를 이었다. 문 대통령 ‘복심’으로 통하는 윤건영 의원이 11월 13일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차별화는 마이너스의 정치”라면서 “대선에서 이기기 위해선 플러스 정치가 돼야 한다”고 말한 것 역시 이런 기류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 후보 측도 할 말은 많다. 이 후보를 돕는 한 의원은 사석에서 “어찌됐건 이겨야 하는 선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정권교체 여론이 높은 상황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이 의원은 “이재명이 아무리 싫어도 윤석열 후보가 이기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겠느냐. 임기 말 대통령이 주연 자리를 차지한 적은 없다. 또 계속 쥐고 가려고 해선 안 된다. 후임에게 길을 터주는 것이 대통령으로서의 마지막 역할”이라고 했다.
청와대가 국정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 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대선 후보 이재명’의 공간이 좁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로 읽힌다. 또 다른 이재명계 의원은 “지지하지 않아도 좋다. 억지로 ‘원팀’을 해달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훼방은 말아 달라.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인데 내부에서 후보를 흔들면 어떡하느냐. 자신은 뒤로 빠지고 차기 주자에게 힘을 실어줬던 과거 대통령들 사례를 떠올려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경선 승리 후 현역 의원이 모두 참여하는 매머드급 선대위를 꾸렸다. 여기엔 ‘원팀’을 통해 경선 후유증을 극복하려는 비주류 출신 후보의 고민이 담겨 있었다. 특히 주류인 친문 진영과 손을 잡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반영됐다. 이 후보는 최측근 그룹을 2선으로 물리고 주요 보직엔 당과 협의된 인사를 배치했다.
이러한 인선은 결과적으로 이 후보에게 ‘독’이 됐다. 덩치만 불린 선대위는 효율성을 잃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주요 현안마다 허둥대기 일쑤였다. 곳곳에서 입장이 나오다 보니 통일된 메시지가 없었고, 혼선이 계속됐다. 캠프 안팎에선 “일하는 사람이 없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대표적 사례로 이 후보 부인인 김혜경 씨 낙상 사고가 꼽힌다. 온갖 소문이 돌았지만 선대위는 사실상 방관했다. 뒤늦게 해명에 나섰지만 선거 전문가들은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 후보 주변에선 “확실한 측근 그룹이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아 이 후보를 보좌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셌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후보가 ‘사이다 본능’을 앞세워 다시 강경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이 후보는 11월 15일 선대위 회의에서 “제가 느끼기엔 (선대위가) 기민함이 부족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 후보는 본인을 정점으로 한, 후보 중심의 선대위 운영을 강조했다. 측근 그룹들의 입지가 강화될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이 후보가 전국민 재난지원금과 관련,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향해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것도 그 연장선상이다. 이 후보는 홍 부총리를 향해 “책상을 떠나 현장에 가보시라. 따뜻한 안방이 아니라 찬바람 부는 엄혹한 서민들의 삶에 대해 체감해보시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여권 대선 후보가 정부 경제 사령탑을 공격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홍남기 때리기’를 계기로 이 후보가 문 대통령과의 차별화 기조에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이 후보가 윤석열 후보와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선 중도 무당층을 잡아야 한다. 이들은 정권 교체를 원한다”면서 “문 대통령과 일정 부분 선을 긋지 않으면 대선 승리가 어렵다는 게 이 후보 측 인식”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 측의 또 다른 민주당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선대위 운영과 문 대통령과의 차별화는 같은 선상에서 바라봐야 한다. 친문 핵심들이 모두 참여한 선대위에서 문 대통령과 다른 견해를 내는 것은 힘들었다. 그러다보니 이 후보 본연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실패로 결론 났다는 게 이 후보 측 판단이다. 이 후보가 청와대로 가려면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를 넘어서야 한다. 이 후보가 측근들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선대위 군기 다잡기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이 후보 측의 이런 움직임에 문 대통령 측은 불쾌감이 역력하다. 친문 전직 의원은 “통상 대통령 임기 말엔 정권 교체 여론이 더 높게 나타난다”면서 “지금 지지율이 윤 후보에 밀리는 게 문재인 대통령 때문이냐. 대장동 건이 터지면서다. 본인 스스로의 귀책이 더 크다는 얘기다. 임기 말 40% 안팎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현직 대통령과 차별화를 하면 선거에서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라고 말했다.
친문 진영 일각에선 강경한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이 후보를 상대로 ‘실력 행사’를 하자는 것이다. 이 후보 아킬레스건인 대장동 사태를 활용하자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현직 대통령이 특정인을 밀어줄 순 없어도, 최소한 주저앉힐 수는 있다’는 정가의 속설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몇몇 친문 인사들은 ‘이재명 원톱’ 선대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의사를 반영하자고도 주장한다.
친문 진영 지상 과제는 ‘대통령 잔혹사’를 끊어내는 것이다. ‘포스트 문재인’ 조건으로 ‘믿을 수 있는 후보’를 내세웠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 후보가 본격적으로 차별화에 나설 경우 문 대통령으로선 퇴임 후를 대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역대 대통령들이 임기 말 세웠던 ‘하산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뜻이다.
문 대통령은 과거 노무현 정부 비서실장으로 재직할 때 “임기 후반부를 하산에 비유하지만 동의하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에 하산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문 대통령이 올해 초 청와대 직원들에게 “마지막까지 할 일을 다하자”는 취지로 말한 것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읽힌다. 친문 인사들이 그동안 ‘하산’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내지 않았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실제 문재인 정부 초반 청와대에 몸담았던 친문 인사들을 중심으로 문 대통령 퇴임 후를 대비한 구체적인 방안 마련이 모색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민주당 대선 경선이 한창이던 9월 말부터 청와대 인근인 광화문 일대에서 정기적으로 만났다. 여기에 참여하는 한 인사는 통화에서 “주요 현안은 ‘하산 전략’이다”면서 “문 대통령 의중이 담겨 있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했다.
이 인사는 “당초엔 이런 전략 구상을 일정에 포함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임기 말임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은 40% 안팎이다. 그런데 상황이 변했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해졌다. 자칫 문 대통령이 고립에 빠질 수 있다”면서 “이 후보가 문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내세운 게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앞서의 청와대 고위직 출신 핵심 친문도 “윤석열은 물론 이재명도 이제 믿기 힘들어졌다. 안전판이 있어야 한다. 또 보험도 마련해야 한다”면서 “남은 임기 동안 하산 전략 수립을 끝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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