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고의 스포츠 스타이자 테니스 선수인 펑솨이(35)의 행방이 묘연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2일, 웨이보를 통해 장가오리 전 부총리(75)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후 갑자기 종적을 감춰 버렸기 때문이다. 세계여자테니스협회(WTA)를 비롯해 동료 테니스 선수들과 누리꾼들이 앞다퉈 해시태그(#WhereIsPengShuai)를 올리면서 행방을 찾아 나섰지만 한동안 그의 생사는 알 길이 없었다.
그리고 보름 후인 지난 18일, 펑솨이가 이메일을 통해 자신의 근황을 알려왔다. 펑솨이는 자신이 실종된 상태는 아니라고 말하면서 성폭행 의혹 역시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이메일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이메일이 공개된 후 펑솨이의 안전이 더 걱정된다며 염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과연 펑솨이는 정말 실종된 걸까. 그의 행방이 더욱 걱정되는 이유는 중국 공산당 고위 간부를 상대로 한 ‘미투(Mee Too·나도 당했다)’ 폭로가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 때문이다.
2013년 윔블던, 2014년 프랑스 오픈 복식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총 23차례 투어에서 우승한 펑솨이는 내로라하는 중국의 간판 테니스 스타다. 2014년에는 복식 세계랭킹 1위에 올랐으며 2008년, 2012년, 2016년 세 차례에 걸쳐 올림픽에도 출전했다.
사정이 이러니 그의 실종 소식은 중국 누리꾼들 사이에 충격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것도 공산당 고위 간부 출신을 상대로 미투 폭로를 했기에 파장은 더욱 컸다.
펑솨이가 웨이보를 통해 성폭행 사실을 폭로한 것은 지난 2일이었다. 장문의 글을 통해 펑솨이는 “선수 생활을 막 시작했던 10년 전 그와 처음으로 한 차례 성관계를 가졌다”고 운을 떼면서 “그러나 그가 베이징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승진한 후에는 연락이 끊겼었다”고 주장했다.
그 후 한동안 연락이 없던 장가오리가 다시 연락을 해온 것은 2018년이었다. 이미 공직에서 은퇴한 상태였던 그는 아내와 함께 테니스를 치자며 펑솨이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하지만 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 저녁 식사 후 장가오리는 펑솨이에게 강제로 성관계를 맺도록 압력을 넣었고, 울면서 거부하는 펑솨이를 상대로 성폭행을 저질렀다.
펑솨이는 “나는 그의 제안을 거부하면서 울기만 했다. 그는 내가 거부했는데도 불구하고 성관계를 강요했다”고 말하면서 “내가 성폭행을 당하고 있을 때 장가오리의 아내가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펑솨이는 “내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소리를 내기로 결심했다”면서 “이 폭로가 계란으로 바위치기나 불꽃에 나방이 뛰어드는 것처럼 자멸하는 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진실을 말하고자 한다”라고 호소했다. 이렇게 폭로를 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 대해서는 “내가 얼마나 역겨웠는지, 그리고 내가 아직도 사람이긴 한지 그동안 스스로에게 수없이 물어봤다. 내 자신이 마치 걸어 다니는 송장처럼 느껴진다. 나는 매일 연기를 하면서 살고 있다. 진짜 나는 누구인가”라며 토로했다.
밤 10시 무렵 올라왔던 이 게시글은 하지만 30분도 채 되지 않아 갑자기 삭제됐다. 뿐만이 아니었다. 관련 게시물이나 댓글, 심지어 ‘테니스’와 같은 검색어까지 모두 차단됐다. 그리고 순식간에 인터넷에서는 펑솨이에 대한 관련글들이 거의 대부분 삭제됐다.
중국 언론들도 펑솨이의 폭로에 대한 보도를 일절 하지 않았다. 펑솨이의 소셜미디어 계정은 검색 불가능한 상태가 됐고, 이전 게시물들의 댓글들도 모두 폐쇄됐다.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유령처럼 접근 불가능한 상태가 되고 만 것이었다.
이에 동료 선수들을 비롯한 팬들은 충격에 빠졌다. 펑솨이의 폭로도 놀라웠지만 갑자기 그가 사라졌다는 사실은 더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온라인에서는 펑솨이의 소재를 묻는 ‘펑솨이는 어디에(#WhereIsPengShuai)’라는 해시태그가 퍼지기 시작했고, 중국의 인권 운동가들은 “펑솨이는 어디 있나” “펑솨이의 무사 귀환을 요구한다”며 항의하기 시작했다.
펑솨이의 행방이 더욱 걱정되는 이유는 그가 폭로한 상대가 시진핑 국가주석의 측근으로 부총리와 공산당 최고 지도부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을 지낸 고위층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중국에서는 학계, NGO 종사자, 유명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미투 폭로는 있었지만, 공산당 지도부를 상대로 한 폭로는 펑솨이가 처음이었다. 더욱이 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를 앞두고 벌어진 폭로였기에 파장은 클 수밖에 없었다.
현재 펑솨이 주장의 진위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중국인들은 대체로 펑솨이의 주장을 믿는 눈치다. 특히 세계 테니스 선수들은 펑솨이의 실종이 믿을 수 없다고 말하면서 염려하고 있다. 그랜드슬램 18회 우승을 차지했던 전설적인 테니스 스타인 크리스 에버트는 펑솨이의 소식을 듣고는 “충격이다”라고 말하면서 “나는 펑솨이가 14세였을 때부터 그를 알고 지냈다. 우리 모두는 지금 그를 걱정해야 한다”라고 관심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또한 에버트는 “이건 심각한 상황이다. 펑솨이는 어디 있는가. 안전한가. 누구든 어떤 소식이라도 전해 주시면 감사하겠다”라고 말했다.
현 세계 랭킹 1위인 일본의 오사카 나오미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펑솨이의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운을 떼면서 “펑솨이에게 사랑을 보내며 그의 앞길이 밝기를 바란다”라고 했다. 남자 세계 랭킹 1위인 노박 조코비치 역시 “끔찍한 상황이다. 실종이라니, 충격적이다. 부디 무사하길 바란다”라며 걱정했다.
펑솨이의 실종 소식에 스티븐 사이먼 세계여자테니스협회(WTA) 회장은 “펑솨이의 안전과 행방을 둘러싼 불확실함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 성폭행 혐의에 대한 전면적이고 공정하며 투명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사이먼은 또한 “WTA가 중국테니스협회(CTA) 등 여러 소식통으로부터 펑솨이가 어떤 신체적 위협도 받지 않고 안전하다는 메시지를 전달 받긴 했지만, 이를 완전히 믿을 수는 없다”고도 말했다. 왜냐하면 펑솨이와 직접적으로 연락을 취한 사람은 여태껏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사이먼은 “WTA 투어 관련자들 그 누구도 직접 펑솨이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의문을 제기하면서 “WTA 소속 선수에 대한 혹시 모를 성폭행은 타협할 수 없는 중대한 문제”라고 강력한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만약 명확한 해명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더 이상 중국에서 사업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이먼의 이런 발언은 그동안 테니스에 공을 들여온 중국테니스협회에게는 치명타나 다를 바 없다.
실제 중국 측의 노력으로 WTA 투어 경기는 중국 시장에서 점차적으로 개최 횟수를 늘려 왔으며, 이런 노력 끝에 2019년에는 10년 동안 투어 결승전을 선전에서 개최하도록 하는 장기 계약을 맺기도 했다. 사정이 이러니 WTA의 이런 태도는 현재 11개 대회를 개최하고 있는 중국테니스협회 입장에서는 난처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펑솨이의 실종에 대해 중국테니스협회를 비롯해 중국 외교부는 이렇다 할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펑솨이가 제기한 성폭행 의혹에 대해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그에 대해 전해들은 바 없으며, 이는 외교적인 질문도 아니다”라며 대답을 회피했다.
그렇게 의혹만 쌓여가던 지난 18일, 마침내 펑솨이로 추정되는 인물이 작성했다는 이메일 한 통이 중국 매체 CGTN을 통해 공개됐다. CGTN이 “펑솨이가 WTA 투어에 보낸 메일을 입수했다”며 공개한 이 이메일에는 “성폭행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 나는 실종되지 않았다. 지금은 아무런 문제없이 집에서 쉬고 있다”는 내용의 글이 담겨 있었다. 또한 “앞으로 WTA에서 나와 관련된 뉴스를 전하려면 먼저 나와 의논하면 좋겠다” “걱정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라고도 적혀 있었다.
하지만 이메일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이먼은 “오히려 펑솨이의 안전과 행방에 대한 걱정만 더 커졌다”라고 말하면서 “그 메일을 실제 펑솨이가 썼는지 믿기 어렵다. 내가 직접 여러 차례 펑솨이와 연락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했기 때문이다”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사실 이런 의혹을 말끔히 해소하기 위해서는 펑솨이 본인이 직접 사람들 앞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한 방법이 없다. 여기에 더해 중국인들은 “만일 펑솨이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시 나타난다면 과연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하다”라면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국 유명인사들 실종 사건…판빙빙 107일 만에 복귀해 ‘반성’
지금까지 중국의 유명인사들이 갑자기 실종된 사례는 여러 차례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알리바바 창업자인 마윈은 지난해 10월, “중국 당국이 지나치게 보수적인 감독 정책을 취하고 있다”고 비난한 후 자취를 감춰 세상을 놀라게 했다. 3개월 만에 모습을 드러내긴 했지만 마윈이 왜 모습을 감췄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그런가 하면 2018년에는 배우 판빙빙이 한동안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서 세간을 놀라게 했다. 비밀리에 미국으로 망명했다거나, 사망했다거나, 혹은 구금됐다는 등 온갖 괴담만 떠돌았었다. 이런 소문이 돌았던 이유는 그가 실종되기 직전 거액의 출연료를 탈세했다는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실종 107일 만에 다시 모습을 나타낸 판빙빙은 “나는 지금까지 국가의 이익이나 사회의 이익, 그리고 나의 이익과의 상관관계를 알지 못했다”고 반성하면서 “앞으로는 국가에 충성을 다짐하겠다”며 복귀를 알렸다.
끔찍한 사건도 있었다. 1990년대 다롄 방송국의 인기 아나운서였던 장웨이제는 당시 정치인 보시라이와 불륜관계였으며, 그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이유로 납치된 후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심지어 ‘인체의 신비전’에 전시된 임산부 시신이 장웨이제라는 소문도 있지만 확인된 바는 없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