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력위조 논란으로 대중의 지탄을 받았던 신정아 씨가 출소 후 자전에세이 <4001>을 내고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이쯤되면 모든 게 신 씨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분위기다. 신 씨가 인세 수입으로 수억 원을 챙길거라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온갖 변명으로 스스로를 포장하는 동시에 권력자들의 추접스러운 지분거림을 까발림으로써 다시금 사회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인생 2막을 야무지게 선포한 신 씨의 컴백은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
“신정아가 자서전에서 밝힌 내용이 어디까지 사실인지 나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사실 여부를 떠나 그렇게 사회에 물의를 빚었는데 이제는 자숙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 아닌지. 또 다시 세상의 주목을 받고 싶은 욕망인가.”
신 씨의 컴백과 관련해 시사평론가 유창선 씨가 던진 말이다. 또 다른 시사평론가 김용민 씨도 “신정아 주장, 진실인지 판단을 유보하겠다. 어쩔 수 없다. 거짓말을 했었으니까”라고 한마디 거들었다.
역시 신정아였다. 그녀가 핵폭탄을 들고 돌아왔다. 진실은 당사자들만 알겠지만 대중들은 기득권 남성들에 대한 그녀의 폭로에 경악하고 있다. 이미 알려졌듯 신 씨는 학력을 속여 교수자리를 얻고 미술관 공금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2007년 10월 구속기소된 뒤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2009년 4월 보석으로 석방됐다.
네티즌들은 “더 이상 잃을 것도, 쪽팔릴 것도 없는 신 씨의 이미 예상됐던 가미카제식 반격” “자신의 성적 치부마저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너 죽고 나 죽자’식의 폭로전”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하는가 하면 “감옥살이의 억울함을 분하게 여긴 응석받이 투정, 가증스런 동냥질” “삐딱한 자존감으로 가득찬 양치기 소녀의 발악” 등의 원색적인 비난도 서슴지 않고 있다. 이처럼 신 씨의 컴백에 대중들이 냉소를 던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학력위조 부분이다. 신 씨는 2005년 동국대 채용 당시만 해도 존재했던 학위가 왜 2년 만에 없어졌는지에 대해 ‘귀신에 홀린 것 같다’고 표현할 뿐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신 씨는 예일대 미술사학과 박사논문으로 제출했다는 <기욤 아폴리네르 : 피카비아와 뒤샹의 원시주의의 촉매>가 1981년 발표되었던 에카테리니 사말타노우-치아크마의 박사학위 논문 표제와 영문의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일치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침묵하고 있다.
그녀는 논문 대필 등 편법으로 학위를 받은 것에 대해서만 ‘관행’을 빌어 인정할 뿐 학력위조에 대해서는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논문 대필로 브로커의 도움을 받는 등 부적절한 절차를 밟은 것은 잘못이지만 직접 학위를 위조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신 씨는 오히려 “스스로 학력을 위조했건 결과적으로 위조한 것이 되었건 사람들은 똑같이 보겠지만 그것은 내 양심, 마지막 도덕심이 걸린 문제”라고 항변하며 5월 중 마무리될 ‘동국대-예일대’ 소송을 통해 사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허위학력으로 부와 명예를 얻었고, 그것은 명백한 범죄행위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마치 자기가 피해자인 것처럼 억울해 하고 심지어 사태의 본질을 외면하는 모습을 보였다.
책에서 신 씨는 “큐레이터에게 학위란 형식적 자격증 정도의 의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며 “편법으로 받은 학위를 내세워 덕을 본 것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월간미술대상’ 수상자가 된 것도 예일대 박사학위 전이었고, 금호·성곡미술관에서 근무한 것도 예일대 박사학위와 무관했다는 얘기에 대중들은 “여전히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실소를 금치 못하는 있다.
둘째는 불륜 부분이다. 학력위조에 대해 양심과 도덕성을 강조했던 신 씨였지만 그녀는 변 전 실장과 2003년부터 5년이나 불륜관계를 지속하는 이중성을 보였다. 신 씨는 책에 변 전 실장을 ‘똥아저씨’로 명명하며 그와의 첫만남부터 적나라한 애정사를 기술했다.
신 씨는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불륜행각을 ‘사랑’이라 지칭하며 청년들의 풋풋한 연애사를 얘기하듯 담아냈다. 책에는 변 전 실장과 장장 4시간 동안 키스를 나눈 것부터 첫 잠자리를 가진 얘기까지 나와 있다. 또 스물세 살이나 차이 나는 변 전 실장이 ‘보고싶은 2쁜2’ ‘To my loving princess’ ‘예쁜 공주님 생각만 하는 오빠가’라는 제목으로 신 씨에게 보낸 낯 뜨겁고 간지러운 메일 일부를 공개하기도 했다. 책을 통해 신 씨는 변 전 실장이 슈크림 빵과 작고 앙증맞은 물건, 목도리와 샌들을 좋아한다는 것을 밝혔다. 또 제부도와 도산공원, 극장과 벼룩시장, 땅끝마을과 하얏트호텔의 클럽에서 데이트를 한 얘기도 담았다.
하지만 신 씨는 그토록 ‘사랑’이라 강조했던 변 전 실장의 인간적인 치부 및 그에 대한 섭섭함까지 낱낱이 들춰냈다. 변 전 실장은 숙박업소에 들어갈 때 자신의 신분 노출을 우려해 항상 신 씨 이름으로 숙박계를 쓰게 했고, 예약도 신 씨에게 시켰다는 것이다. 또 사건이 터진 후 변 전 실장이 두 사람의 관계를 드러내는 러브레터와 온갖 물건들을 일사불란하게 치우는 모습에 상처를 받았다는 얘기도 있다. 신 씨는 변 전 실장이 호텔비 한 번 내지 않았으며 “혹시라도 누가 알게 되면 자기는 끝장” “네가 유부녀가 되어 나와 같은 조건에서 만나면 되지 않냐”는 ‘뻔뻔스러운’ 말을 한 것까지 책에 담았다.
신 씨의 표현에 따르면 변 전 실장 역시 젊은 정부와 부적절한 관계를 지속하면서 가정은 버리지 못하는, 정부 앞에서 태연히 부인과 통화를 하는, 바람피는 유부남의 이중생활을 보여줬다. 신 씨는 또 변 전 실장이 대학 재학 시절 연상의 꽃뱀과 첫 경험을 한 내용과 하와이 파견 당시 교제한 여성에 대한 얘기까지 공개했다.
신 씨는 부적절한 관계가 자신이 원해서 시작된 것이 아니며 변 전 실장의 끈질긴 사랑에 무너졌다고 변명했지만 신 씨는 자신이 권력을 이용한 ‘꽃뱀’이 아니었음을 강조하기 전에 불륜행각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자신으로 인해 상처받았을 변 전 실장의 가족들에게 먼저 용서를 빌어야 했다고 많은 이들이 지적하고 있다.
셋째는 화려한 자기포장 습성이다. 신 씨는 책에서 여러 유명인사들과의 에피소드를 담았다. 자신의 연인이었던 변 전 실장과의 적나라한 연애사는 물론 정운찬 전 총리와 전직 조선일보 C 기자의 지분거림을 직설적으로 폭로했다. 그 외에도 김우중 전 회장과의 만남,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까지 담았다. 신 씨의 글에서는 마치 “나 이런 사람이야”라는 뉘앙스마저 풍긴다.
요약하자면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여러 기득권 남성들이 자신에게 호감을 보였다는 내용이다. 대중들은 신 씨가 유명인사들과의 에피소드 혹은 여성으로서 수치스러울 수 있는 남성들의 지분거림을 담아낸 의도에 의구심을 던지고 있다.
한 네티즌은 “신 씨는 때론 그들이 내뿜는 수컷의 본능과 호감을 조롱하면서 자신이 기득권 남성들에게 어필했으며 그들과 교류했음을 과시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스스로의 신분을 격상시키는 듯한 냄새마저 풍기고 있다. 특히 죽은 사람까지 언급한 것은 여러 의혹을 양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못했다”고 일침을 가했다. 또다른 네티즌은 “밤늦게 부르는 남자한테 달려가는 것 자체가 자신에게도 그 남자를 이용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것을 반증”한다며 책속의 신 씨 행동에 대해 의구심을 표현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능수능란한 언론플레이다. 신 씨는 대중을 끄는 방법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자서전에 사적인 얘기들과 자극적인 내용을 포함시킨 이유가 ‘블랙리스트’에 올려놨던 인물들에 대한 응징인지 책을 팔기 위한 전략인지는 알 수 없지만 철저한 계획하에 이뤄진 일이라는 것이 출판업계의 분석이다. 특히 신 씨는 책에 ‘여자로 산다는 것’의 고충을 토로하며 스캔들 마케팅을 절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대중들이 남녀연애지사를 팔아먹는다는 비난보다 등장인물들의 추행에 관심을 보일 것을 꿰뚫고 있었다는 얘기다.
신 씨는 자신이 권력자들의 지분거림에 일체 호응하지 않았음을 밝히며 자신의 순수성을 주입시키고 있다. 또 실리를 계산한 관계였다면 5년이나 지속될 수 없었을 거라는 얘기도 했다. 신 씨가 불륜의 시작이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며 “변 전 실장의 가정이 지켜지기를 바랐다” “언제든 그를 떠나보내려 했다”는 ‘바람직함’과 ‘쿨함’을 재차 강조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또 신 씨는 변 전 실장과의 육체적 관계를 직접 서술하지 않고 변 전 실장이 법원에 제출했던 진술서를 싣는 영리함을 보였다. “장시간 실랑이 끝에 성관계를 갖게 됐습니다. 관계 후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신정아는 그것이 첫 경험이었기 때문입니다. 신정아는 ‘여자는 첫 빤스를 잘 벗어야 한다’는 엄마의 말이 생각났었다고 했습니다.”
신 씨가 서른이 넘은 나이에 변 전 실장과 첫 경험을 했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은 것은 자신이 출세를 위해 권력을 이용하지 않았으며 순수한 사랑이었음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하지만 신 씨는 변 전 실장이 2004년부터 3년여 동안 대우건설과 한국산업은행 등 10여 개 기업으로부터 총 8억 5000여 만 원의 후원금을 끌어모은 것, 가짜학력을 무마하기 위해 동국대 이사장 영배 스님이 회주로 있는 울주군 흥덕사에 불법으로 국고를 지원한 것, 학력위조 의혹을 처음 제기한 장윤 스님에 대한 회유를 시도한 것 등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대중들도 신 씨의 순수성에 강한 의구심을 던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책을 통해 신 씨는 문제의 사건들과 그로 인해 쏟아진 사회의 시선에 대해 반성은커녕 ‘사실은 이러이러하다’는 식의 변명과 자기포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책 내용의 진실 여부를 떠나 대중들이 신 씨에게 실소를 금치 못하는 이유도 그녀가 무소불위의 권력에 짓눌린 온전한 피해자가 아니었다는 점 때문이다. 그녀의 항변이 먹히지 않는 이유다.
그녀는 자신의 비뚤어진 욕망과 출세욕으로 범법행위를 저지르고 사회를 기망했지만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짓인지를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피해자’임을 강조하고 있다. 자신을 성적으로 농락한 유명인사들을 거론한 것도 그들을 수렁에 빠뜨려놓고 새 인생을 살아보겠다는 야무진 각오를 피력한 것으로 해석된다. 신 씨가 정말 새 삶을 살고 싶었다면 자서전을 통해 “신정아가 하는 얘기를 들어달라”고 조르기보다 자신이 지닌 예술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식견으로 예술사에 길이 남을 전문서적을 집필했어야 옳지 않았을까.
“과거를 털어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며 세상 밖으로 나온 그녀를 두고 진정한 ‘엽기쇼의 종결자’ ‘양치기 소녀의 발악’이라는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과연 신 씨의 주장은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혹시 ‘제2의 르윈스키’를 꿈꾸며 재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까. 지금쯤 그녀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훗~ 나 이래봬도 신정아야~”라고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
법정 감정에선 “진짜”
광주비엔날레와 동국대학교는 2007년 7월 18일과 23일 각각 신 씨를 졸업증명서 위조 및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또 동국대학교는 2008년 3월 예일대가 신정아 허위학력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며 5000만 달러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2007년 9월 <문화일보>는 ‘신정아 누드 사진 발견’이라는 제목의 기사와 함께 신 씨의 알몸 사진을 실었다. ‘문화계 유력 인사의 집에서 누드 사진 여러 장이 발견됐다’는 설명이 곁들여진 기사로 인해 신정아 사건은 ‘성 로비’ 의혹으로까지 비화됐다. 신 씨는 문화일보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이 소송은 2008년 8월 “<문화일보>는 신 씨에게 1억 5000만 원을 지급하라”는 1심 판결 이후 3년여 만에 조정으로 마무리됐다. 조정 조건은 ‘신 씨는 정정보도와 손해배상청구 등 모든 법률적 청구권을 포기하고 <문화일보>는 신 씨에게 8000만 원을 지급한다’는 것이었다.
누드사진의 진위 여부에 대해선 법원은 그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는데, 이번에 신 씨가 합성된 것이라고 주장하자 <문화일보>는 전문가가 두 차례 감정한 1심에서뿐만 아니라 추가로 감정한 2심에서도 진본으로 나왔다고 반박했다.
<문화일보>에 따르면 당시 1심 재판부는 감정을 맡은 문서감정 전문가 김진일 씨와 성형외과 전문의 변재경 박사의 소견을 토대로 판결문에 “이 사건 각 사진은 황규태가 원고 알몸을 실제 촬영한 것으로 황 씨의 지인 K 여인을 통해 문화일보에 유출된 사진”이라 밝혔다. 2심 재판부 역시 사진전문가 황선구 교수의 추가소견에 따라 1심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고 <문화일보>는 밝히고 있다. 세 차례 감정결과를 부인한 신 씨는 1심 감정인인 변재경 박사를 증인으로 신청했으나 변 박사는 “진본이 아니라는 의심을 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못 박았다.
신 씨는 2005년 3월부터 2007년 4월 11차례에 걸쳐 3억 2000여 만 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징역 1년6월을 확정받고 보석으로 풀려났다.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흥덕사와 보광사에 12억 원의 특별교부세가 지원되도록 외압을 가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만을 유죄로 판결했다.
한편 서울고법 민사24부는 올 3월 23일 재단법인 성곡미술문화재단이 신 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조정을 통해 “신 씨는 1억 2975만 원을 미술관에 지급하라”고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