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한 시장 육성' 관련법 발의만 13개
업권법 제정에 대한 국회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법안을 발의하면서 가상자산 관련 법안만 총 13건이 국회에 계류된 상태다. 가상자산 산업의 정의와 불법 요소 등을 막는 규제, 투자자 보호 등 사업 범위와 관리·감독 방안, 산업 육성 정책도 포함한다. 정치권이 제정에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가상자산 시장 급성장에 따라 해킹과 투자 등 사건사고가 늘고 있지만 관련 법이 없어 범죄 예방 및 투자자 보호가 힘든 상황이 있다. 투자자 보호 및 불공정 거래 방지를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다만 그 대책이 업권법 제정인지를 두고는 의견이 분분하다. 찬성론자들은 투자자 보호와 불공정 거래 방지, 시장의 건전한 육성 등을 위해 업권법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입장이다. 코인 발행인과 거래자 간 관계에서 발생하는 정보 비대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업권법을 통해 중요 투자정보에 대한 의무공시제도를 도입하고, 거래소와 발행인, 거래자 간 불공정거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본시장에 준하는 가상자산시장에 특화된 불공정거래금지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가상자산 거래에 따른 수익 과세 논의가 활발한 것도 업권법 제정 필요성을 높이는 배경이다. 정부가 특정 소득을 과세대상으로 삼으려면 해당 소득을 발생시키는 거래의 안전성 및 납세자 재산권을 보호·보장하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는 분석이다. 소득세법 개정안이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하면서 정부는 가상자산에 대해 2022년 1월부터 과세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11월 16일 국회 정무위원회가 주최한 '가상자산 법안 관련 공청회'에서 “관련 법 제정 없이 방치하기에는 너무 큰 규모로 성장했고, 개인 투자자들 비중이 매우 높은 데다 이들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메이저 코인이 아닌 속칭 '잡코인'이라는 알트코인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럼에도 개인투자자의 가상자산이 거래소 계정과 확실히 분리 보관·관리되는지 파산 위험은 없는지 불확실하다. 거래소의 재무건전성이 악화하면 해당 업자의 도산 위험이 경제 전반에 심각한 부정적 파급효과를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거래소가 운영하는 가상자산 시장은 구조와 운영에 있어 증권시장과 유사성을 보이고, 따라서 대규모·비대면 자산거래에서 발생하는 정보 비대칭, 불공정거래, 대리인비용 등 증권시장과 유사한 문제점을 야기한다”며 “의무공시제도의 도입, 불공정 거래 금지 규정, 거래소에 대한 진입규제, 행위규제, 건전성 규제가 필요하다”며 발의된 법안들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박소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상자상 업권법의 도입을 미룰 이유가 없다”며 “투자자 보호 장치로 정보의 비대칭성이 극복된다면 기술적 실체를 보유한 가상자산 개발회사에 우호적인 환경을 제공해 장기적으로 국내 블록체인 기술 경쟁력 확보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선제적 규제, 관련 산업 싹 자를라
반면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업권법 제정이 산업과 기술의 발전을 막고 인력의 해외 유출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가상자산은 블록체인 및 관련 기술 스타트업이 투자금을 유치하는 가장 유용한 수단이고, 디지털 금융 등 관련 산업의 전반적인 흐름을 바꿀 수 있는 파급력도 갖고 있다. 최근 해외 시장에서 선물거래와 상장지수펀드 등 가상자산을 활용한 여러 금융상품이 출시되고 있다. NFT(대체불가토큰)와 메타버스 열풍으로 콘텐츠·엔터·게임·IT 업계와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를 받고 있다. 이런 국내외 상황을 고려할 때 섣부른 규제는 미래 산업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최화인 블록체인 에반젤리스트는 “가상자산은 금융상품의 성격이 강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기술에 기반한다”며 “자산이면서도 그 자체가 기술이기에 기존의 금융규제를 적용할 경우 기술적 활용성에 심각한 제약을 받게 된다”고 우려했다.
한 가상자산 거래소 관계자는 “말 그대로 ‘업권법’이라면 업계가 반대하지 않을 텐데 법안들을 보면 진흥책은 없고 대부분 규제다. 과기부가 아니라 금융 규제당국에서 이 산업을 맡은 것 자체가 문제”라며 “2017~2018년 한국이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지만 정부가 불법으로 치부하면서 기회를 잃었다. 이번이라고 결과가 다르겠느냐”고 토로했다.
최근 발의된 법안 내용이 가상자산 시장의 급격한 과열과 그에 따른 부작용에 대응하기 위해 다소 급하게 마련됐다는 것. 내년 대선을 앞두고 표심을 얻기 위한 입법 활동에만 급급하다는 업계 불만도 감지된다.
블록체인 업계 한 관계자는 “제정은 필요하지만 성급하게 진행하면 안 된다”면서 “산업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지 않은 데다 메타버스나 디파이 등 새로운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며 “업권법 제정 움직임이 치열한 논의 없이 단순히 규제로만 국한되면 시장 상황은 더 꼬일 것”이라고 전했다.
업권법 제정 없이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방안으로 금지한 행위 외에 모든 것을 허용하는 네거티브 방식의 선별적 규제가 거론된다. 일부만 허용한 뒤 나머지는 금지하는 포지티브 방식은 산업을 선제적으로 규제할 수 있으니 문제가 발생한 부분에 대해서만 제도적으로 대응하자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기술적 이해도를 갖춘 전담기관을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개정 및 그에 따른 금융당국의 신고 수리 효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특금법 개정으로 상당수 부실 가상자산사업자가 시장에서 퇴출되고 가상자산 산업의 투명성 증대로 이용자 보호 효과가 어느 정도 실현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윤종수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이용자 보호를 위한 가상자산 산업 규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중복된 진입 규제와 규제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업권법을 성급히 제정하기보다는 법정화된 자율규제시스템의 뒷받침 하에 특금법 효과를 지켜보면서 추가적인 보완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제안했다.
[인터뷰] 김랑일 디지털자산공정거래협회장 "업권법보다 시급한 건 가상자산거래법"
업권법 논의가 한창인 가운데, 이보다도 가상자산 시장 자체를 정의하고 거래와 관련한 규정을 만드는 ‘가상자산거래법’을 제정하는 작업이 선제돼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13개 법안들의 경우 일부 조항에는 이 같은 내용이 포함돼 있지만 가상자산 시장의 본질을 아우르기보다는 ‘중개’ 행위를 어찌 관리 감독할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주장이다.
김랑일 디지털자산공정거래협회장은 18일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증권거래법을 보면 증권은 무엇을 뜻하는지부터 거래소는 어떤 자본금과 시스템, 전문 인력을 갖춰야 하는지, 어떻게 거래하며 가격 조정은 어떻게 하는지 등의 내용이 담겼다”며 “반면 가상자산은 법의 부재로 산업에 대한 정의조차 없는 상황이다. 거래법이 있어야 원활한 거래가 가능하고 그래야 투자자와 판매자와 중개자 각각에 대한 정의와 자격 등을 법에 명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증권거래법 제정 이후 주식 거래가 활발해지고 관련 시장이 성장한 것처럼, 가상자산거래법 제정 역시 가상자산 산업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를테면 중개자인 가상자산 거래소의 경우 자금세탁 방지를 위해 어떤 기술적 시스템을 갖추고, 감사위원 등 인력을 투입해야 하는지 법제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코인 상장과 관련해서도 누가 어떻게 심사할 것인지 등 상장 기준과 방법을 규정해둘 수 있다. 발행자의 경우 어떤 기술력을 갖춰야 하는지를 명시하거나, 투자자 보호와 관련해서는 코인 상장 관련 조항을 신설하고 높은 상장 기준을 제시하면 범죄 방지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랑일 협회장은 “거래법 제정을 통해 상장 기준을 높이면 거래소가 자의적 기준이나 개인적 인맥에 따라 코인을 상장시켜주고 폐지하는 폐단을 막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가상자산 수익에 과세하겠다는 정부 정책도 거래법이 있어야 원활하게 시행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주식 거래에 따른 수익을 과세할 때에도 증권거래법에 무엇을 대상으로 세금을 매길 것인지 명시돼 있기 때문에, 이를 토대로 원활한 과세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손실은 이월하지 않으면서 양도소득에 대해서만 과세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주장도 내놨다. 양도세를 부과할 때 빈번하게 사고파는 가상자산 거래 특성상,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해야 할 것인지 애매하다는 점에서 2년 등 기간을 정해두고 손실이 났을 때 주식처럼 결손금이 이월 공제되는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랑일 협회장은 “투자자들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의 가치를 높게 인정해주는 이유는 기술력이 뛰어나서인데, 국내 시장은 기술력과 무관하게 시장이 움직이는 기형적인 형태를 갖게 됐다”고 지적했다.
투자 관점으로만 가상자산 시장을 바라보는데, 기술 측면에서는 코인이 발행돼 투자자들이 투자하면 그 수익은 다시 발행인에게 돌아가 기술발전기금으로 쓰이는 구조다. 그러나 발행자와 투자자의 관계를 끊어내고, 발행자와 거래소와의 관계도 끊어내니 결국 가상자산 거래는 투기라는 인식이 생겨나는 것 아니겠느냐는 지적이다. 가상자산거래법 제정을 통해 발행자와 거래소, 투자자라는 시장의 세 요소를 분명히 인지하고, 잘 이어준다면 제대로 된 디지털 거래 시장을 형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디지털자산공정거래협회는 가상자산 발행자들의 기술 발전을 도모하고 중개자의 공정 거래를 유도하며, 디지털 자산 투자자들의 자산 보호에 기여하고자 올해 8월 발족한 단체다. 디지털자산 공정 거래를 위한 ‘디지털자산거래법’ 입법 추진, 디지털자산 발행자를 위한 기술 가이드 제시 및 기술 검수 기구 설치 등에 힘쓰고 있다. 디지털자산 거래소 준법 가이드 제시 및 자금세탁방지 금융 보안 솔루션을 제공하는 '레그테크' 기술단 설립, 디지털 자산 투자상담사 및 공정거래사 양성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