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 20일(현지시간) 리비아 동부 벵가지와 아즈다비아를 잇는 도로에서 반카다피 연합군의 전투기 공습으로 카다피군의 무장 차량들이 불타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오디세이 여명’이 실패작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우선 ‘오디세이’라는 단어가 트로이 전쟁 후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서 10년 동안 겪은 오디세우스의 길고 험난한 여정을 떠오르게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자칫하다간 이번 전쟁 역시 10년이 걸릴지도 모른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버클리 정보학 스쿨의 저프리 넌버그는 “적절하지 못한 단어 선택이었다. 마치 수렁에 빠질까 조심하는 사람의 속마음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것과 같다”라고 지적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여명’이라는 단어가 긍정적이고 낙관적이긴 하지만 동시에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상태를 암시하기 때문에 이번 전쟁에 개입하는 미국의 소극적인 태도를 나타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오바마 정부가 ‘여명’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2월 오바마 정부는 그간 이라크 전쟁의 작전명으로 사용되고 있던 ‘이라크 자유(Iraqi Freedom)’를 ‘새로운 여명(New Dawn)’으로 개명한 바 있다.
이번 작전명이 그다지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박력 있는 이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배니티페어>의 제임스 월콧은 “이름이 어째 70년대 포르노 스타를 떠오르게 한다”고 비아냥거렸으며, 프로골퍼인 톰 왓슨은 “크루즈 함선 이름 같다”고 말했다.
이런 의견에 대해 에릭 엘리엇 미 아프리카사령부 대변인은 “‘오디세이 여명’을 ‘이라크 자유’나 ‘사막의 폭풍’과 같은 맥락에서 봐선 안 된다. 사람들은 이번 작전명을 듣고는 ‘도대체 리비아와 무슨 상관이 있지?’라고 묻는다. 하지만 작전명에서 어떤 의미를 찾으려고 해선 안 된다. 사실 작전명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미군 규정상 작전명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두 개의 단어를 조합해서 만들도록 되어 있다”고 말했다.
사실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그의 말처럼 작전명에는 어떤 거창한 뜻이 내포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오히려 전쟁 때마다 바로바로 무작위로 선택된 단어 두 개를 어감을 고려해서 듣기 좋게 나열할 뿐 특별한 의미는 없다.
가령 ‘오디세이 여명’의 경우에도 오바마 대통령이 군사개입을 고려하기 시작한 후부터 작전명을 짓기 시작했으며, 처음부터 아예 리비아와 관련이 없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작전명을 지을 때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무작위로 선택된 단어를 사용하는 미군은 이번에는 JS~JZ, NS~NZ, OA~OF 등 세 가지 범위에서 이름을 짓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JS~JZ와 NS~NZ는 근래에 사용한 적이 있기 때문에 OA~OF를 이용해서 짓기로 확정했다. 이렇게 해서 첫 번째 단어로 ‘오디세이’를 먼저 짓고, 그리고 두 번째 단어로 ‘오디세이’와 잘 어울리면서 듣기 좋은 ‘여명’을 선택했다.
이렇게 지어진 이름은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이미 사용된 적이 있는지 확인 작업을 거친 후, 워싱턴으로 전송되어 최종 허가를 받게 된다. 각국 대사관에도 전달되는데, 이는 혹시 타국어로 번역했을 때 모욕적인 의미를 나타내는지 점검하기 위해서다. 엘리엇은 “많은 사람들이 작전명의 의미에 대해서 물어온다. 하지만 작전명을 짓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은 아무런 뜻이 없게 짓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의미는 없지만 그렇다고 규칙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작전명을 짓는 데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다. 작전명이라고 반드시 상대의 기선을 제압하는 위압적인 느낌을 가질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그 반대여야 한다. 또한 동맹국들의 비위를 거스르게 하거나 특정 단체, 종파, 신념을 비하하는 단어도 배제된다. 이밖에도 반드시 두 단어로 이루어져야 하며, 이국적이거나 진부하거나 혹은 상업적인 상표는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어휘 역시 금지되어 있긴 마찬가지다.
사실 이런 조건에 부합하는 이름을 짓기란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 지금까지 가장 성공적인 작전명으로 꼽히는 것은 1991년 걸프전 때 사용됐던 ‘사막의 폭풍(Desert Strom)’과 1999년 알바니아 난민에게 구호품을 전달하는 작전이었던 ‘빛나는 희망(Shining Hope)’ 등이 있다. 반면 실패한 작전명으로는 2001년 아프간 전쟁의 작전명이었던 ‘무한 정의(Infinite Justice)’와 ‘항구적 자유(Enduring Freedom)’ 등이 꼽힌다.
작전명의 역사를 살펴보면 제2차 세계대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군사작전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한 것은 독일군이었다. 전쟁 내내 독일군과 영국군 사이에 경쟁이 붙었던 당시 작전명은 대개 인상적이고 강렬한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독일의 경우에는 색깔이 들어간 이름을 붙이는 전통이 있었으며, 히틀러는 최소한의 정보만 드러낸 채 자국의 병사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암호화된 이름을 선호했다. 주로 종교, 신화, 역사적 인물의 이름에서 따왔으며, 대표적인 이름으로는 대천사(Archangel), 성 조지(St. George), 롤랑(Roland:용사), 화성(Mars), 발키리(Valkyrie:북유럽 신화의 여전사) 등이 있었다.
히틀러의 가장 유명한 작전명으로는 ‘바바로사’가 있다. 소비에트연방 침공 작전이었던 ‘바바로사’는 12세기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1세의 별명이었던 ‘붉은 수염’이라는 뜻인 ‘바바로사’에서 따온 것이었다. 여기에는 ‘바바로사’가 동방 진출에 열정적이었던 프리드리히 1세를 의미한다거나 혹은 스탈린의 수염이 붉은색이었던 데서 착안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윈스턴 처칠 역시 2차세계대전 내내 작전명에 매우 열중했으며,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명칭을 ‘둥근 망치(Roundhammer)’에서 직접 ‘오버로드(Overload)’로 바꾼 후 대단히 흡족해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좋은 작전명을 짓는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했던 처칠은 작전명을 짓는 데 있어서 “뽐내거나 자만하는 뉘앙스가 풍겨선 안 되며, 반대로 실의에 빠진 듯 낙담하거나 희망을 잃은 듯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어느 미망인들이나 어머니들이 훗날 자신의 남편이나 아들이 ‘버니허그(Bunnyhug: 춤의 일종)’ 혹은 ‘밸리후(Ballyhoo: 야단법석)’ 작전에서 전사했다고 말하고 싶어하겠는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신 처칠은 고유명사, 즉 고대 영웅, 그리스로마신화, 별자리 및 행성, 유명한 경주마, 영국 및 미국의 전쟁 영웅들에서 이름을 따오는 것을 좋아했다.
미국 역시 2차세계대전 때부터 작전명을 짓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별다른 의미 없이 짓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1944년 독일군이 반격하는 동안 포위했던 도시인 ‘바스토뉴(Bastogne)’의 이름을 그대로 따서 짓거나 미 캔자스주 동북부 도시인 ‘정션 시티(Junction City)’를 사용하는 식이었다.
한국전쟁 때에는 다소 과격하고 폭력적인 이름 때문에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맥아더 장군이 사용한 ‘킬러(Killer)’ 작전이나 ‘살인마(Ripper)’ 작전이 대표적인 예로, 당시 중공군은 이 작전명에 대해 상당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작전명을 짓는 데 들이는 시간과 노력을 줄이기 위해서 미군은 1975년 작전명을 자동화하기로 결정했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무작위로 두 개의 단어를 뽑아서 작전명을 짓는 방식이 그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1989년 파나마 침공 당시 사용했던 작전명인 ‘블루 스푼(Blue Spoon)’은 군과 정부 모두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던 이름이었다. 조지 H. 부시 대통령까지 나서서 “재즈 카페 이름처럼 들린다”면서 못마땅해 했을 정도였다. 결국 ‘블루 스푼’은 얼마 후 ‘정당한 명분’이라는 뜻의 ‘저스트 코즈(Just Cause)’로 바뀌었다.
미 정부가 자국민과 외국의 반응을 의식하면서 작전명을 짓기 시작한 것은 1991년 걸프전 때부터였다. 당시 미군이 세 쪽에 걸쳐서 적어놓은 후보들 중에 처음 선택한 이름은 ‘페닌슐라 방패’(Peninsula Shield)였다. 하지만 다시 ‘초승달 방패(Crescent Shield)’로 바꿨다가 ‘사막의 방패(Desert Shield)’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사막의 폭풍(Desert Strom)’을 선택했다.
이렇게 심사숙고한 덕분에 이 작전명은 걸프전 자체를 의미하는 동의어가 됐으며, 사람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유명한 이름이 됐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모두 ‘용병’으로 몰려 생고생
‘흑인이라고 다 카다피 용병입니까.’리비아에 거주하는 아프리카 흑인들에 대한 과잉반응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히스테리에 가까울 정도로 흑인들을 경계하고 있는 리비아 내 정서 때문에 애꿎은 이주노동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카다피가 고용한 용병이라는 오해를 받고 불법 감금되거나 억류된 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는 카다피의 용병이 아니라 돈을 벌러 온 이주민들”이라고 주장하면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를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데 있다. 대개는 여권이나 신분증을 소지하지 않은 채 밀입국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6개월 전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서 벵가지로 건너온 차드 출신의 유수프 슐레이만 하산(25)은 반정부 시위가 벌어진 후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길을 떠났다가 무장한 반군들에게 붙잡혔다. “나는 가난한 노동자일 뿐이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곧이들으려 하지 않았다.
카다피의 아프리카 용병에 대한 반군들의 경계심과 적대심은 현재 히스테리에 가까울 정도가 된 상태. 그도 그럴 것이 유튜브에 올라온 동영상에는 용병들로 추정되는 흑인들이 리비아 반군과 시민들을 상대로 폭력을 휘두르는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져 있다. 이들은 보통 권총과 몽둥이로 무장하고 있으며, 노랑색 안전모를 쓰고 다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빵’이 없어 유럽행 러시
“혁명이 밥을 먹여주진 않는다.”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먼저 민주화 혁명을 이룬 튀니지가 현재 총체적 난국 상태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큰 문제는 일자리를 잃은 젊은이들 수가 부쩍 늘었다는 데 있다. 당장 살 길이 막막한 이들이 궁여지책으로 택한 것은 다름 아닌 ‘유럽행’이다. 이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피난을 떠나고 있다.
현재 튀니지의 대졸자들 가운데 44%가 무직일 정도로 실업난은 심각한 상태. 이들이 가장 많이 밟고 있는 유럽의 땅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이탈리아의 람페두사섬이다. 때문에 튀니지 남부의 항구도시인 자르지스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이곳에서 람페두사섬으로 가기 위해선 배를 타야 하며, 뱃삯은 800유로(약 127만 원) 정도다. 이는 튀니지 일반 근로자들의 3개월 치 월급에 맞먹는 큰 액수다. 이미 경찰과 해안경비대는 난민들을 제지할 수 없는 상태며, 오히려 이들의 바닷길을 막는 것은 나쁜 날씨와 거친 파도다. 때문에 항구를 떠난 배들 중에 람페두사섬에 무사히 도착하는 배는 극히 일부인 것으로 알려졌다.
얼마 전까지 튀니지 동남 해안에 위치한 제르바섬의 호텔에서 일했던 헬미(22)라는 이름의 청년은 “대체 새로운 자유가 나한테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라고 푸념하면서 하루빨리 돈을 모아서 파리로 건너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