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명예훼손’ 형사는 중단 민사는 진행…상속재산 몰수추징 국회 차원 논의중
11월 29일은 전두환 씨의 사자명예훼손 사건 항소심 결심 공판이 예정돼 있는 날이었다. 2017년 4월 대통령 퇴임 30주년을 맞아 펴낸 회고록에서 고인이 5·18 당시 계엄군의 헬기사격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로 표현한 부분 등이 문제가 됐다. 이에 조 신부 유족과 5·18 관련 4개 단체가 전 씨를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는데 2020년 11월 1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이에 검찰과 전 씨 측이 모두 항소해 1년가량 항소심이 진행됐다. 전 씨 측은 법리 오해, 사실 오인 등을 이유로 항소했고 검찰은 실형 구형을 요구하며 항소했다. 그렇지만 재판 종결이 임박한 시점에서 피고인이 사망했다. 사자명예훼손 혐의 형사재판은 여기서 중단된다. 형사소송법 제328조(공소기각의 결정)에 따라 형사재판의 피고인 사망진단서가 법원에 제출되면 재판부가 피고인의 공소를 기각해야 해 재판은 곧 중단된다.
사실 일치감치 끝났어야 할 재판이다. 전 씨가 기소된 것은 2018년 5월로 정상적인 흐름이라면 대법원까지 갔더라도 이미 확정 판결이 나왔어야 한다. 그렇지만 전 씨 측이 관할 위반을 주장하며 법적 다툼을 벌였고 건강 등의 이유로 재판에 불출석해 계속 지연됐다. 게다가 법관 정기 인사, 재판장의 총선 출마를 위한 사직 등으로 1심 과정에서 재판관이 두 번이나 교체된 여파도 있다. 그렇게 기소에서 1심 판결까지 무려 2년 4개월이나 소요됐다. 항소심도 1년이나 걸려 결심공판까지 왔는데 그 직전에 전 씨가 사망했다.
조 신부의 유족과 5·18 관련 4개 단체는 전 씨를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형사고소하며 전 씨와 아들 재국 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제기했고 1심에서 일부 승소해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2018년 9월 1심에서 민사재판부는 전 씨에게 회고록 내용 가운데 허위 사실로 인정된 69곳을 삭제하지 않으면 출판·인쇄·발행·배포를 할 수 없다고 판시하며 총 7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전 씨 측은 ‘밝혀지지 않은 의혹을 사실로 특정해 원고들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해석한 것 자체가 부당하며 명예훼손 의도 또한 없었다’며 항소했다.
형사소송과 달리 민사소송은 상속인이 소송을 이어받는 등의 절차를 통해 재판이 계속될 예정이다. 물론 전 씨 가족들이 상속을 포기할 경우 상속인이 존재하지 않게 되지만 아들 재국 씨도 피고인이기 때문에 재판은 계속 진행된다. 애초 11월 24일 광주고법 제2-2민사부(김승주·이수영·강문경 고법판사)에서 항소심 변론기일이 예정돼 있었는데 12월 22일로 연기됐다.
법조계에서는 미납 추징금 956억 원의 집행 가능성을 두고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전 씨는 1997년 대법원에서 뇌물수수 혐의가 유죄로 확정되면서 추징금 2205억 원이 선고됐지만 지금까지 환수된 추징금은 1249억 원에 불과하다. 956억 원은 25년째 미납 상태다.
검찰은 지난 7월 전 씨 장남 재국 씨가 운영하는 출판사를 상대로 3억 5000만 원을 집행하고, 8월 전 씨 일가 소유 경남 합천군 율곡면 선산과 건물 등을 공매에 넘겨 10억여 원을 회수하는 등 꾸준히 미납 추징금을 집행해왔다.
현행법은 당사자가 사망하면 미납 추징금 집행을 중단하도록 돼 있다. 재판 효력이 피고인에게만 미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검찰은 현재 미납 추징금 집행이 가능한지 법률 검토에 들어간 상태다.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부장 유진승)는 “당사자가 사망했지만 추가 환수 여부 등에 대해 단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미납추징금 집행이 가능한지 등을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 검찰은 ‘전두환 추징법’이라 불리는 ‘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을 전 씨 미납 추징금에 적용할 수 있는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범인 외의 자가 그 정황을 알면서 취득한 불법재산 및 그로부터 유래한 재산에 대해 그 범인 외의 자를 상대로 (추징을) 집행할 수 있다’는 ‘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 제9조의2의 불법재산 등에 대한 추징 관련 조항 때문이다. 이 조항을 두고 이미 논란이 불거진 바 있지만 2020년 2월 헌법재판소에서 합헌 결정이 나왔다.
한편 송영길 대표는 11월 24일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뇌물죄를 비롯한 특수 범죄에 대한 몰수 추징에 대해 상속 재산의 집행이 가능할지 법률 검토를 하겠다”며 “과거 천정배 전 의원이 상속재산에도 추징이 가능하도록 발의한 법안이 회기 종료로 폐기됐다. 헌법 저촉 여부와 외국 입법 사례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미 2020년 6월 유기홍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 씨가 사망한 뒤에도 상속재산에 대해 추징할 수 있도록 하는 ‘전두환 재산 추징 3법’을 대표 발의했으나 아직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이처럼 국회 차원에서도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전 씨는 거액의 지방세를 체납해 서울시 발표 고액 체납자 명단에도 포함돼 있다. 두 아들 재국, 재만 씨 소유의 재산을 공매 처분하는 과정에서 지방소득세 5억 3699만 원이 발생했는데 이를 미납해 현재는 가산금이 붙어 9억 7400만 원이 됐다.
기본적으로 지방세 등의 세금은 당사자가 사망하면 유족에게 상속된다. 다만 유족이 상속을 포기하면 세금 납부 의무는 사라진다. 다른 방법은 세무당국이 전 씨 명의의 재산을 파악해 공매로 이를 강제처분해 세금을 징수하는 것인데 전 씨 명의 재산을 파악하지 못하면 징수할 수 없다.
전동선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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