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시수 제한 탓 근로 혜택 보장 못 받아…해마다 고용불안
전국예술강사노동조합(이하 예술강사 노조) 대전지부장이자 만화‧애니메이션 분야 예술강사인 이현주 씨(41)는 이렇게 토로했다. 이 씨는 올해로 15년째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예술 교육자 처우 개선이 우선돼야 예술교육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아이들도 행복하게 예술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학교 예술강사 지원사업은 문화예술교육을 활성화시키고자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예술강사를 통해 예술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진흥원)이 사업을 맡아 진행한다. 학교 예술강사 분야는 국악, 연극, 무용, 만화·애니메이션, 공예, 영화, 사진, 디자인, 8개다. 정부가 2000년부터 시작한 학교 예술강사 지원사업은 이제 20년이 넘게 이어왔지만 지원사업에 나서는 예술강사들에 대한 열악한 처우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초단시간 근로자’로 불리는 예술강사
예술강사들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은 수업 시수 제한이다. 정부는 주 14시간 이하, 월 59시간 이하, 연 476시간 이하로 예술강사들이 일할 수 있는 시간을 제한해버렸다. 예술강사에게 ‘초단시간 근로자’라는 타이틀을 씌워 각종 근로 혜택에서 소외시켰다는 것이다. 15시간 미만 60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사람을 ‘초단시간 근로자’라고 하는데 이들에게는 건강보험, 주휴수당, 실업급여, 퇴직금, 연차휴가 등이 따로 없다. 이 때문에 예술강사들은 기본적인 근로혜택조차 보장받지 못한다.
수업 시간도 제한되고, 매년 몇 시수를 배정받을지 모르다 보니 수입이 일정치 않다. 그래서 많은 예술 강사들이 강사일 이외에 다른 일을 병행한다. 서울에서 예술강사로 일하는 A 씨(42)는 “저도 마찬가지고 대부분 예술강사들이 다른 일을 같이 한다”며 “저는 올해 168시수를 배정받았으니까 연봉으로 따지면 약 720만 원, 한 달에 60만 원 버는 셈이다. 방학에는 수입이 없다”고 말했다. 광주에서 예술강사로 일하는 B 씨(42)도 “방학에는 수입이 없어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한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코로나19가 대유행하면서 개학이 미뤄진 것도 예술강사들을 힘들게 한 요인이다. 개학이 미뤄져 강사들이 수업시간을 채우지 못했고 그만큼 급여도 줄었다. 학생들도 수업을 받지 못해 피해를 본다. '월 59시간 시수' 제한 탓이다. 일반적으로 수업을 하지 못하면 다음 달 보강을 하는데, '월 59시간' 제한에 걸려 있는 예술강사들은 다음 달 59시간이 넘을까 우려돼 보강으로 넘길 수도 없다. 보강을 못하면 학생들은 해당 수업을 받지 못하는 셈이다. 이따금 학교 측에서 학생들을 위해 제한 시수를 초과하더라도 보강을 요구하면 강사들은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초과 시간에 대한 급여를 받지 못한다.
이 씨는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수업을 받아야 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우리는 수업을 해야 한다”며 “만약 3월에 수업을 못할 경우 4월에 보강을 해야 하지만 그렇게 되면 4월에 59시수가 넘을 확률이 높아 수업을 하지 못한다. 그럼 수업을 받지 못한 아이들에게도 피해가 간다”고 호소했다.
#최대 일해도 연봉 2000여 만원…21년 동안 임금 인상 ‘3000원’
현재 학교 예술강사의 시간당 강사료는 4만 3000원이다. 학교 예술강사 지원 사업이 시작된 지 20여 년이 흐르는 동안 시급은 단 한 번, 3000원이 올랐다. 이 씨는 “21년 전에 시급이 4만 원이었는데 그동안 물가상승률만 따져도 3000원만 오른 게 말이 안 된다”며 “어떤 분들이 보면 최저임금에 비해 높은 거 아니냐고 생각하지만 수업할 때만 일을 하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예술강사 노조에서 조사한 결과 예술강사들은 1시간 수업을 하기 위해 평균 2시간 이상 수업준비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의시간 이외에 소요되는 노동의 양이 더 많다는 의미다. 이현주 씨는 “저는 만화·애니메이션 분야로 예술교육을 하다 보니 영상을 만들 일이 많아서 수업시간 이외에 따로 학생들의 결과물을 집에서 편집한다”고 말했다. A 씨는 예술강사 시급에 대해 “이건 그냥 100% 수업시간에 따른 시급으로서 수업준비 시간을 포함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정감사 당시 예술강사 강사료 문제를 지적한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조사에 따르면 2000년도 2만 2396원이던 평균 대학강사료는 현재 6만 7000원으로 3배 가까이 올랐고, 같은 기간 국공립대 대학 강사료는 2만 7000원에서 8만 8200원으로 3배 넘게 상승했다. 동종업계 평균 강사료를 보면 예술강사의 강사료가 얼마나 낮은지 알 수 있다. 법무부의 ‘법교육강사’가 시간당 10만 원, 양성평등교육진흥원의 ‘성범죄예방교육강사’가 8만 원, 한국정보화진흥원의 ‘인터넷중독예방교육강사’가 8만 원, 한국문화정보원의 ‘찾아가는 공공누리 강사’가 8만 원으로 모두 예술강사 강사료의 2배 수준이다.
예술강사 노조에서 조사한 결과 2020년 기준 예술강사들의 평균 연봉은 1163만 원이며 월 평균급여는 약 96만 원이다. 1년에 최대로 일할 수 있는 476시간을 연봉으로 계산해도 2000여 만원이다.
#내년에도 일할 수 있을까?
예술강사는 매년 2월이 되면 진흥원과 근로계약을 맺는다. 학사 일정이 운영되는 3월부터 12월까지 10개월 동안 계약이 유지된다. 해마다 단기계약을 하기 때문에 계약서도 매번 다시 작성해야 한다.
학교에서 예술교육을 중단하거나 예술 분야를 바꾸면 예술강사들은 다른 학교로 재배치된다. 살고 있는 곳과 멀리 떨어진 학교를 배정받기도 한다. A 씨는 “지금은 서울에서 일하고 있는데 8년 전에는 서울에서 천안 구미 대전 철원,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수업을 다녔다”고 말했다.
예술강사들은 고용 안정을 위해서라도 무기계약직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씨는 “단기로 일하는 것도 아니고 15년을 상시적으로 일을 했는데 매해 계약서를 써야 하니까 안정감이 없다. 올해 일한 것처럼 내년에도 일할 수 있다는 정도의 안정감을 원한다”며 “다음 해에 계약 갱신이 안 되면 우리는 일자리를 잃는다. 무기계약직 전환으로 이 일을 지속적으로 하고 싶다”고 말했다. B 씨도 “학생들이 선생님이랑 내년에 만날 수 있는 거냐고 물어본다. 근데 내년에 계약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학생들에게 정확하게 얘기하지 못 한다”고 말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예술강사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내년에 임금 인상이나 수업 시간과 관련해서는 아직 결정된 사항이 없다”고 밝혔다.
이민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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