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0 지망생들에 투약 자랑하고 웃돈 매겨 판매…내부 자정 목소리 높아져
1980~1990년대까지 대마초 등 마약 뉴스가 잦았던 신이 록밴드들의 언더그라운드였다면 2000~2020년대는 힙합 신(계)이 그 아성을 지키고 있다. SNS(소셜미디어) 발달로 일반인들도 접하기 쉬워진 것이 마약이라곤 하지만 힙합 신을 통해 지인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퍼지는 마약의 양도 여전히 무시하지 못한다는 게 수사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마약 사건이나 재판 소식에서도 이들을 찾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11월 3일 소울커넥션 출신의 래퍼 매슬로(본명 김정민·34)가 대마와 신종 합성 대마, 필로폰 등을 투약한 혐의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매슬로가 마약 혐의로 법정에 선 것은 2011년과 2017년에 이어 세 번째다. 당시 재판부는 “누범기간에 또 범행해 죄책에 상응하는 엄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면서도 “피고인이 직접 향정신성의약품 등을 매매한 것은 아니고 공범의 부탁으로 보관하던 중 혼자 투약·흡연했으며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반성하며 수사기관에 협조한 점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한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대마와 필로폰 등이 마약계의 꾸준한 스테디셀러(?)였다면 최근엔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가 그 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11월 8일에는 통증이 심하다는 거짓말로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 받은 뒤 이를 수십 배 가격에 되팔았다는 혐의로 힙합 경연 프로그램 출신 래퍼가 입건되기도 했다. 이들은 SNS로 마약성 진통제를 쉽게 처방해주는 병원 정보를 공유하며 대량으로 약을 구매한 뒤 자신이 사용하거나 다른 중독자들에게 팔아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마약성 진통제는 펜타닐이다. 말기 암 등으로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이들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사용되는 ‘진통제의 끝판왕’으로 불리는 약물을 말하며, 그 위력은 헤로인의 최대 100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사의 처방 없이는 구입이 불가능하지만 일부 중독자나 마약 판매상들은 타인의 개인정보를 도용하는 방식으로 병원 여러 곳에서 펜타닐을 구매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환자의 동의 없이는 타 의료기관의 처방 정보를 알 수 없다는 맹점을 노린 것이었다.
펜타닐이 마약 판을 뒤흔들면서 힙합 신의 관계자들이 이를 지적하는 폭로와 고발을 이어가기도 했다. 9월에는 힙합 유튜버 빅쇼트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최근 힙합 신의 마약 중독과 유통의 심각성을 폭로했다. 그는 “(힙합) 신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약에 절어있고, 약을 유통하고 권하고 자랑한다”라며 “자신들만 하면서 속세와 연을 끊으면 상관이 없는데 돈을 벌기 위해서 혹은 죄책감을 나누기 위해서 레슨생이나 지인들한테 약을 권하고 중독된 그들에게 자기가 가진 약을 웃돈 올려서 판매한다”고 꼬집었다.
지난해 11월 마약 투약 사실을 자수한 뒤 법정에 섰던 래퍼 불리 다 바스타드(본명 윤병호·21)도 오랜 마약 중독을 고백하며 다시 한 번 힙합 신의 마약 유통을 고발했다. 10월 유튜브 채널 ‘스컬킹TV’에 출연한 그는 펜타닐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10대들에게 마약이 퍼지게 된 건 솔직히 래퍼들의 영향이 크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자신 역시 친한 형이 하는 것을 보고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고 밝힌 불리는 마약 투약을 자랑으로 여기는 일부 래퍼들을 향해 "애들은 어른을 보고 배운다. 당신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 꿈을 키우는 친구들에게 가사로, 음악으로 마약을 합리화하지 말아달라"며 "당신들의 말 한 마디가 10대 친구들한테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인지했으면 좋겠다"고 일침을 놨다.
힙합 신의 모든 이들이 마약에 손을 대는 것은 아니지만, 약에 대한 소문을 듣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음악 산업 관계자는 “누가 약을 했다거나 권했다는 소문은 경찰이 수사하기 전부터 업계 내부에서 알음알음 퍼진다. 고발하는 사람을 배신자나 겁쟁이로 여기는 분위기 때문인지 마약 사실을 알면서도 그저 그들과 거리를 둘 뿐 공개적으로 성토하는 일은 잘 없었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10~20대 초반의 어린 계층이 신에 유입되면서 이들에게 약에 대한 잘못된 관점이 주입되는 것이 가장 우려된다고 짚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마약이 절대 ‘쿨’한 것이 아니라는 걸 신에서 자리 잡은 래퍼들이 새겨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약 혐의로 유죄까지 받은 래퍼들이 마치 한국은 ‘쿨’하지 못해서 아티스트들의 일을 이해 못한다는 식으로 어린 지망생들을 현혹하는 데 정말 잘못된 일”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가끔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면 관계자들뿐 아니라 리스너들도 ‘힙합 신이면 늘 있는 일 아니냐’는 식으로 심드렁하게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 또한 잘못됐다. 힙합 신을 사랑한다면 더 강경하게 배척해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한편 경찰청에 따르면 8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3개월 동안 마약류 사범 집중단속을 진행한 결과 마약류 사범 총 1956명이 검거됐다. 이들 가운데 10~30대가 1365명으로 전체의 69.7%를 차지한 가운데 특히 20대가 742명(39.9%)로 높은 비율을 보였다. 경찰은 다크웹으로 불리는 불법 사이트와 SNS,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을 이용한 비대면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비교적 인터넷에 익숙한 20대의 마약 투약과 매매 건수가 폭증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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