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이래 12조 8000억 원 공적자금 투입…조직 쇄신·탄력 경영 숙제
#23년 만에 민간 금융사로
금융위원회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지난 11월 22일 예금보험공사(예보)의 우리금융지주 지분 9.3% 매각 낙찰자 5개사를 최종 선정했다. 유진프라이빗에쿼티(유진PE)가 우리금융지주 지분 4%를 인수해 우리금융의 사외이사 추천권을 확보했고, KTB자산운용이 2.3%, 얼라인파트너컨소시엄·두나무·우리금융사주조합이 각 1%를 낙찰받았다. 이로써 우리금융지주의 최대 주주였던 예보는 지분 5.8%만 남아 우리사주조합(9.8%), 국민연금(9.42%)에 이어 3대 주주로 내려왔다.
예보의 지분 매각으로 우리금융지주는 민간 주주 중심 지배구조를 갖추게 됐다. 기존 과점주주인 IMM PE(5.57%), 중국 푸본생명(3.97%), 한국투자증권(3.77%), 키움증권(3.73%), 한화생명(3.16%)에 이어 새 주주인 유진PE까지 사외이사 추천권을 보유한 과점주주 6곳 지분이 24.2%로 높아진다. 우리금융지주 이사회 구성원도 내년 초 바뀐다. 현재 이사회는 사내이사 2명, 사외이사 5명, 비상임이사 1명 등 총 8명이다. 내년 3월 이후에는 규모는 8명으로 동일하지만, 예보가 추천한 비상임이사는 임기 만료로 제외하고 유진PE가 추천하는 사외이사 1명을 추가한다.
우리금융지주 민영화는 공적자금을 투입한 지 23년 만이다. 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금융회사 구조조정 과정에서 1999년 한일은행과 상업은행 합병으로 출범한 한빛은행에 1차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이어 한빛은행과 평화은행, 경남은행, 광주은행, 하나로종금 등 5개 금융사를 묶어 2001년 우리금융지주를 설립하고 추가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등 정상화에 총 12조 8000억 원을 투입했다. 이 과정에서 예보는 우리금융 지분 100%를 확보했다.
정부는 이후 4차례의 블록세일(지분 대량 분산매각)과 공모 등을 통해 꾸준히 보유 지분을 축소했다. 특히 2010년 지분 9%를 매각해 예금보험공사 보유 지분율이 처음으로 50%대로 낮췄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민영화가 가능한 환경이 조성됐다는 판단 아래 우리금융 민영화를 추진했고 2010년부터 2011년, 2012년 세 차례 매각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무산됐다. 입찰에 참여한 금융사들이 제대로 자격을 갖추지 못했거나, 경영권 인수 의사가 없는 소수 지분 입찰자들이 다수 참여한 탓이다. 자회사를 일괄 매각하는 방식 자체도 절차가 복잡하고 추진 과정의 불확실성이 컸다. 우리금융의 경쟁력이 떨어지다 보니 지분을 한꺼번에 매입하려는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분석도 있다.
잇단 매각 실패에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2013년 우리금융의 14개 자회사를 지방은행, 증권, 우리은행 계열로 분리해 팔기로 결정했다. 이후 예보의 경남은행, 광주은행, 우리파이낸셜, 우리F&I, 우리투자증권 패키지(우리투자증권·우리금융저축은행·우리아비바생명보험) 등 계열사들을 매각했다. 2015년에는 예보 지분을 쪼개 분산 매각하는 방식을 도입하면서 이듬해 동양생명, 미래에셋자산운용 등 7개 투자자에 지분 29.7%를 매각했다. 이어 2019년 잔여 지분을 매각하기로 발표하고 올 9월 매각 공고를 내면서 최근 완전한 민영화를 이뤄냈다.
#앞에 놓인 과제는?
우리금융은 앞으로 증권사와 보험사 인수합병(M&A)을 통해 비은행 사업 부문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증권사 인수가 최우선 순위다. 5대 금융지주 중 유일하게 증권과 보험 등 비은행 계열사가 없어 현금 흐름의 변동성이 크기 때문이다. 은행업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높아 지난해 저금리 등 영향으로 실적이 크게 악화했다. 실탄도 충분하다. 11월 초 우리금융은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내부 등급법을 승인받으면서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1.3%포인트 개선해, 20조 원 안팎의 실탄도 확보했다. 다만 증권사의 경우 워낙 수익성이 뛰어나 매물이 없다는 점에서 인수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업계는 우리금융의 민영화 이후 과제로 사업 다각화도 중요하지만 조직 쇄신 역시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 아래 보수적인 경영 기조를 유지하면서 영업 방식과 조직 운영 체제가 정체됐다는 평가다. 우리금융 회장과 주요 임직원 인선에 정부 입김이 작용해 ‘낙하산’ 인사가 많았던 점도 정체를 야기한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민간 금융지주사의 경우 경영 노하우를 기반으로 장기 사업 계획 수립과 추진이 가능하다. 그러나 정부가 인사에 개입하면 수장은 연임이 어려워 단기 사업에 집중하게 되고, 새로운 수장이 올 때마다 현황 파악에만 많은 시간을 소요할 수밖에 없다. 이익을 내는 것보다 정부 정책에 순응하고 대출 등 정부 지원 사업에 힘쓰느라, 내부 경쟁력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들린다.
일각에서는 우리금융의 영업력도 상대적으로 미흡했다고 평가한다. 그간 내실 경영은 가능했으나 작은 파이만 가져가면서, 점유율 경쟁에서는 밀렸다는 해석이다. 순이익 기준으로 점유율 순위를 매기면, 우리금융과 농협금융은 5대 금융지주 가운데 4위 자리를 놓고 매년 순위가 바뀐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정부 산하에 있는 금융사는 외국계나 민간 금융사들이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이런 구조가 장기간 만성화하면서 영업력에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공적 자금 회수가 급했던 정부는 지분을 쪼개 팔았고, 우리금융은 과점주주 체제가 됐다. 지분이 절대적으로 많은 민간 대주주가 없고, 장기 플랜을 갖고 은행업을 키우기보다는 단기 이익을 보려고 지분을 인수한 주주들이 많았기 때문에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영화에서 나아가 지속 성장을 위해서는 그룹 주력인 은행업 강화, 비은행 포트폴리오 다각화는 물론 내부 혁신이 절실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제조업은 신규 플레이어가 자유롭게 들어오고 퇴출되기 때문에 보수 경영이 필요할 수 있지만, 금융업은 보호막 안에서의 경쟁으로 인가받은 플레이어들끼리의 제로섬 싸움이다”라며 “금융업의 경우 합종연횡이 일상화하면 규모의 경제를 키워 점유율을 높이는 것이 다른 업종에 비해 상당히 중요한데, 우리금융은 그런 측면에서 약했다”라고 지적했다.
서지용 교수는 이어 “우리금융이 민영화한 만큼 이젠 직접 금융지주사들과 무한 경쟁을 해야 하는데, 인사·영업·조직 운영 등에서의 보수주의, 고객이 아닌 조직 중심의 영업 형태를 이어간다면 생존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며 “조직 쇄신과 슬림화, 파격적인 인센티브 도입 등으로 혁신을 도모해야 한다. 민영 금융사 경험이 있는 유능한 인사를 영입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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