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아니라 행동으로 변화” 팬들에 고개 숙여…‘행사 참가 뒷말’ 양준혁에게도 사과
더욱이 이학주는 2년 연속 참가했던 양준혁 재단의 2021 희망더하기 자선야구대회에 참가 의사를 밝혔다가 논란을 빚었다. 소속팀인 삼성이 11월 27일부터 이틀간 구단 행사를 진행했는데 이 행사에 이학주가 참석하지 않는 대신 양준혁 재단 행사에 출전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는 이유로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이는 삼성 구단 측에서 이학주를 배려해 일부러 팀 행사에 부르지 않았던 게 잘못 알려진 내용이었다. 결국 이학주는 자선야구대회 참가를 철회했고, 양준혁 재단 이사장은 자신의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공식 사과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2009년 메이저리그(MLB) 시카고 컵스 입단 후 마이너리그에서 활약했던 이학주는 2019년부터 삼성 유니폼을 입고 KBO리그에서 3년 차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야구보다는 야구 외적인 문제들로 구설에 오르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오랫동안 굳게 입을 다물고 있던 이학주를 만나 최근 자신을 둘러싼 일련의 상황들에 대해 솔직한 심경을 들었다.
이학주는 인터뷰 장소에 나오기 전 양준혁 이사장에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자신의 일로 인해 자선야구대회가 구설에 오르게 된 부분이 못내 마음에 걸린 것이다. 그는 거듭 죄송하다는 말을 전했고, 양 이사장은 그런 후배를 따뜻하게 감싸줬다.
“구단 행사가 열리는 걸 당연히 알고 있었다. 참가 선수 명단을 보니 내 이름이 없더라. 팀에서 배려해준다고 생각하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2군 매니저님이 집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해서 집에 머물고 있던 중 양준혁 선배님 전화를 받았다. ‘희망더하기 자선야구대회’는 한국에서 뛴 첫 해부터 참가했었다. 좋은 취지로 열리는 대회라 선배님의 전화를 받고 참석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내가 좀 더 깊이 생각했다면 그때 양준혁 선배님께 사정을 말씀 드리고 양해를 구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 일이 커지고 말았다. 누구보다 양준혁 선배님께 죄송한 마음뿐이다.”
이학주는 계속해서 양준혁 이사장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양 이사장이 후배의 일로 일부 팬들의 비난을 받은 부분이 마음에 걸린 것이다.
이학주는 많은 기대를 받고 KBO리그에 데뷔했지만 3년 차인 올해까지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데뷔 첫 해인 2019년 118경기에서 타율 0.262 7홈런 36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701을, 2020시즌엔 부상으로 64경기 출장에 그쳤고, 2021시즌은 내규 위반 문제 등을 노출하며 66경기 출전 타율 0.206 4홈런 20타점 OPS 0.611을 기록했다.
올 시즌 이학주를 향해 가장 많이 지적된 부분은 ‘워크에씩(work ethic·직업윤리)’. 메이저리그급 송구, 화려한 플레이로 팬들의 환호를 받았지만 전반기 한 차례 선수단 내규 위반으로 2군에 내려갔다가 지난 8월 초 팀 훈련 지각으로 다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이후 내야 부상자가 속출하면서 1군에 합류했는데 9월 중순 2군으로 내려간 뒤로는 다시 1군에 콜업되지 않았고 포스트시즌 엔트리에서도 제외됐다.
“사실 지각을 두세 번 했다. 야구장으로의 출근 지각은 한 번이고 나머지는 출근이 아닌 팀 훈련 스케줄에 맞춰 움직이지 못한 부분을 지적받았다. 그건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 야구가 안 되더라도 팀 훈련을 앞세워야 하는데 개인 성적이 안 좋다 보니 살짝 판단력이 흐려진 것 같다. 야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알면서도 개인 성적이 좋아야 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좀 더 길게 보고 팀 문화에 융화되면서 선수들과 잘 어울려야 하는데 야구가 안 되다 보니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선배들이 많이 도와주시려고 내 손을 잡아주셨다. 그 손을 잡고 따라가기보단 내 생각을 앞세운 부분도 있었다. 내 야구가 안 되다 보니 자꾸 자책하고 내 자신한테 화를 내고 때로는 억누르지 못해 표출하기도 했다. 결국 내가 야구를 못했기 때문에 이런저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이학주는 처음에 워크에씩이란 단어의 의미를 몰랐다고 한다. 자꾸 그 단어가 들려 일부러 포털사이트에 검색을 해보기도 했다고. 이후 그 단어가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공감했다는 말도 덧붙인다.
“내가 바뀌어야 한다. 그동안 변화를 주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더 노력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튀는 행동을 최대한 지양하고 팀메이트로 같은 목표를 향해 걸어가는 선수가 될 것이다. 선배들이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고 조언해주셨다. 이전에는 그 조언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지금은 받아들인다. 그게 옳은 길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야구가 잘 안 될 때는 야구장 가는 게 두려웠다고 한다. 자신을 둘러싼 좋지 않은 내용의 기사들이 나올 때마다 자꾸 위축되면서 자존감을 잃기도 했다. 이학주는 올 시즌 내내 반성과 노력을 오가며 야구와 싸우는 대신 자신과 싸운 것 같다고 고백한다.
이학주에게 자신이 공개 트레이드 대상이 된 부분에 대해 물었다. 그는 “이 또한 내 탓”이라며 고개를 숙인다.
“솔직히 선수 입장에선 트레이드란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그건 선수의 의지가 아닌 구단의 의지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내가 잘했으면 이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을 것 아닌가. 지금은 트레이드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 겨울 동안 몸 잘 만들어서 내년 시즌 제대로 평가받고 싶은 마음뿐이다. 지난 3년 동안 숱한 물음표를 갖고 야구를 했다면 이젠 그 물음표를 걷고 팀이 원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 야구에 대한 답을 얻고자 헤맸던 시간들이 많았는데 더 이상 헤매지 말고 팀 안에서 답을 찾아가며 야구하고 싶다.”
이학주는 자신이 불성실한 이미지로 팬들에게 각인된 부분은 스스로 풀어야 할 숙제지만 지금까지 야구 하면서 단 한 번도 불성실했던 적은 없었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나는 지금까지 야구를 열심히 안 했던 적이 없다. 남들보다 더 많이 웃고 장난기 있게 보인 건 야구를 재미있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야구가 재미있어야 더 열심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간절함이 없어서 웃은 게 아니라 즐겁게 하고 싶어서 웃었다. 전날 무안타에 삼진을 먹었어도 다음 날은 웃으며 재미있게 야구 하고 싶었다. 그 부분이 제삼자의 눈에는 불성실하거나 간절함이 없는 모습으로 비쳤을 것이다.”
삼성 라이온즈 선수로 활약하며 가장 행복했을 때가 언제였냐고 물었다. 이학주는 자신의 응원가를 들을 때라고 말한다.
“야구 하면서 처음으로 받은 응원가였다. 지금도 김상헌 응원단장님께 감사한 마음이 크다. 처음 삼성 입단 후 오키나와 캠프에 갔을 때 김상헌 응원단장님께서 두 개의 응원가 샘플을 갖고 오셨다. 그 응원가들을 100번 이상은 들었던 것 같다. 당시 룸메이트가 지금 KT 위즈 소속인 김성훈이었는데 성훈이에게 어떤 응원가가 나은지 수차례 묻기도 했다. 응원가가 야구를 잘할 때는 무척 크게 들린다. 야구를 못할 때는 잘 안 들린다. 2019년 이후 내 응원가가 잘 안 들렸던 것 같다.”
이학주가 2019년 올스타전에 출전했을 때 흥을 돋우는 응원가 덕분에 10개 팀 팬들이 모두 이학주 응원가를 따라 부른 일이 있었다. 당시 팬들이 이 장면을 ‘부흥집회’ ‘교주’ ‘학주교’ 등 재미있게 묘사해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이학주는 지금도 그 장면을 떠올리면 소름이 돋는다고 말한다.
“올스타전은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다. 당시 내가 올스타전에 뽑힌 건 응원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인기를 얻었다. 팬들이 부르는 그 응원가를 야구장에서 다시 듣고 싶다. 그러려면 내가 변화돼야 하고,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도록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 올 시즌 경험을 통해 정말 많은 걸 깨달았다.”
이학주는 인터뷰 말미에 삼성 라이온즈 팬들에게 진심을 담아 사과의 메시지를 전했다. 시즌 내내 자신과 관련된 문제들로 인해 팬들을 불편하게 만들어 죄송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야구장에서 변화된 모습을 보여드릴 것이다. 정말 야구 잘하고 싶다. 그 간절함을 가슴에 품고 다시 태어날 것을 약속드리며 그동안 죄송했다는 말씀 드리고 싶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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