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창출’ 기대하는 정부, ‘임금 상승’ 걱정하는 병원, ‘권한 확대’ 바라는 수의테크니션
#‘제1회 동물보건사 시험’ 내년 예정…‘동물 간호사’라고 쓰면 왜 안 돼?
정부가 반려동물 가구가 증가함에 따라 동물의료의 전문인력 양성과 진료의 질 향상을 위해 동물보건사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21년 9월 8일 동물보건사 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의 개정 수의사법 시행령·시행규칙을 공포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제1회 동물보건사 자격시험’은 2022년 2월 27일 경기 고양 킨텍스에서 시행될 예정이다.
새롭게 배출될 동물보건사는 수의사를 도와 동물을 간호하고 진료를 보조하는 업무를 맡게 된다. 일종의 반려동물 간호사다. 기존에도 많은 이들이 동물병원에서 수의테크니션으로 일하고 있었으나 이들에 대한 국가 공인 자격 제도는 없었다. 그러나 개정된 수의사법 제2조 제4호에 따르면 동물보건사는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자격 인정을 받은 자로 동물병원 내에서 수의사의 지도 아래 동물의 간호 또는 진료 보조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이 된다.
응시 자격은 △전문대 이상 동물 간호 관련 교육 과정 이수 △전문대 이상 학교 졸업 후 동물병원 1년 이상 근무 △고교 졸업 후 동물병원 3년 이상 근무 등 특례 대상자 △정부로부터 평가 인증을 받은 동물보건사 양성 과정 학교 등 교육기관에서 120시간 실습 교육을 받은 사람에게 주어진다. 자격시험은 기초·예방·임상 동물보건학과 동물 보건·윤리 및 복지 관련 법규 등 4과목 필기시험으로 치러지며 절대 평가 방식이다. 전 과목 평균이 100점 만점에 60점 이상, 개별 과목 점수가 40점 이상이면 합격이다.
동물보건사는 법안 통과 이전부터 업계의 뜨거운 감자였다. 관련 내용을 담은 수의사법 개정안은 2019년 8월 국회를 통과했는데, 정식 명칭부터 권한, 업무 범위까지 모두 논의의 대상이 됐다. 특히 눈길을 끄는 점은 동물보건사라는, 대중들에게는 다소 익숙하지 않은 명칭이다. 기존 법안에 적시된 명칭은 ‘동물간호복지사’였다.
그러나 ‘간호’ 라는 용어의 사용이 대한간호협회의 반대에 부딪혔다. 2019년 4월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법안심사소위 회의록에 따르면 국회 농해수위 홍성현 전문위원은 “대한간호협회의 경우 동물에 대해 간호라는 개념이 적절하지 않다고 하여 개정안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럴 경우 제시될 수 있는 안은 ‘동물보건사’, ‘동물위생사’ 등”이라고 설명했다. 김현수 당시 농식품부 차관도 “간호협회에서 ‘간호’ 자는 못 쓰겠다고 해서 저희들이 논의를 했는데 ‘동물보건사’로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의견을 제시했다.
회의에 참석한 일부 의원들은 다소 의아해 하면서도 새로운 명칭을 만들어냈다. 정운천 당시 미래통합당 의원은 “‘간호’나 ‘의료’나 거의 같은 말 아니냐. 내가 사전까지 찾아봤더니 거의 같다”면서도 ‘괜히 갈등은 일으키지 말자’는 취지로 “‘간호’와 ‘보건’을 분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동의했다.
#‘일자리 창출’, ‘임금 상승’, ‘권한 확대’…동물보건사 둘러싼 동상이몽
각종 시행착오 끝에 마련된 동물보건사를 바라보는 업계의 시각은 제각각이다. 동물병원을 운영 중인 개원 수의사들의 고민 가운데 하나는 인건비 상승이다. 그동안은 업무에 대한 자격 요건이 없어 누구나 동물병원에서 근무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일정 학력을 갖추고 업무를 수행하는 만큼 임금 상승의 요구도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수의 테크니션은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아왔다.
한 현직 수의 테크니션은 “신입의 경우 수도권 기준으로 월 150만~200만 원을 받았다. 경력이 쌓이면 월 200만~240만 원까지도 받을 수 있지만 그 이상 받는 분들은 주변에 거의 없다. 자격증을 딴다고 당장 임금이 오르지는 않겠지만 이에 걸맞은 실력을 갖추게 되면 임금도 자연스럽게 오르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정부가 기대하는 바는 전문인력 양성과 동시에 일자리 창출이다. 2019년 7월 농림부는 동물보건사 관련 수의사법을 개정하면서 향후 유망한 10대 분야를 적극 지원하여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때 새로운 직종 제도화의 예시로 언급된 것이 동물보건사였다. 다만, 내년 치러질 시험의 예상 응시인원 5000여 명 가운데 4000여 명이 현직에 종사하고 있어 실제 기대만큼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동물보건사의 축소된 업무 범위에 대한 논의는 계속될 전망이다. 당초 농림부가 제시한 시행규칙에서는 동물보건사의 업무 범위 안에 ‘보정, 투약, 마취 및 수술 보조’ 등이 포함되었으나 수의업계를 중심으로 ‘투약’에 주사행위가 포함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그 권한이 약물 도포와 경구 투여로 바뀐 바 있다. 실제로 대한수의사회는 동물보건사 제도화를 받아들이면서도 반려동물에 한해, 동물병원 안에서, 비침습적인 보조업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원칙을 견지해왔다.
이에 따라 개정된 수의사법에서는 동물보건사가 동물병원 내에서 수의사의 지도 아래 동물의 간호, 진료 보조 업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구체적으로는 동물에 대한 관찰, 체온·심박수 등 기초 검진자료 수집, 간호 판단 및 요양을 위한 간호, 약물 도포, 경구 투여, 마취·수술 보조 등 수의사의 지도 아래 수행하는 진료의 보조다.
황인수 서정대 반려동물과 교수는 “미국과 영국, 그리고 우리나라와 비슷한 시기에 애완동물간호사 제도를 만든 일본에서도 채혈, 마이크로칩 삽입 등을 허용하고 있다. 이와 비교하면 국내 동물보건사의 업무범위는 좁은 편이다. 이들이 직업에 대한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향후 자격 수준을 면허로 상향하고 업무범위도 확대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미국의 수의테크니션 제도인 RVT(Registered Veterinary Technician)는 자격제가 아닌 면허제로 운영되고 있다. RVT가 도입된 시점도 국내보다 40년 가까이 앞서 운영 시스템은 물론이고 직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국내보다 앞서 있는 상황이다.
미국에서 RVT를 취득하고 귀국한 최재하 수의테크니션은 “미국은 수의테크니션 제도가 한국보다 약 40년 이상 앞서 있기 때문에 두 국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단순히 나열해 비교하기 어렵다. 다만 미국의 RVT는 자격제가 아닌 면허제이기 때문에 의사, 간호사, 수의사와 마찬가지로 의료 업무를 보는 직업군으로 분류돼 사회적 인지도가 높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우선순위에 수의테크니션이 포함됐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또 다른 점은 교육 시스템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동물 진료 보조 범위가 더 넓은 것 같다. 반면 미국의 수의테크니션 교육과정은 AVMA(미국 수의사회) 인증을 통해 교육과정이 관리되고 있고 그 내용도 동물간호에 중점적으로 맞춰져 있다. 우리나라 동물보건사 제도는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앞으로 많은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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