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무 보이콧’ 이준석 지방 돌며 윤 때리기…‘지지율 하락’ 윤석열 화친·강공 놓고 고민
#이준석에게 크게 맞은 윤
11월 30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공식 일정을 전면 취소하고 사라졌다. 이 대표는 전날 페이스북에 “그렇다면 여기까지”라는 글을 남긴 터라 당 대표 사퇴 등 중대결심설이 빠르게 퍼졌다.
글을 남길 때 이 대표가 몇몇 의원들과 술을 곁들인 저녁 식사를 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해프닝에 그칠 것이란 얘기도 나오긴 했다. 술기운에 했던 우발적 행동이었고, 일정을 취소한 것 역시 숙취로 인한 것으로 해석되는 등 이준석 실종 사건은 좋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실제로 김기현 원내대표는 이 대표 실종설이 나돌자마자 국회에서 기자들에게 “(이 대표가) 완전히 헤매고 있는 것 같은데”라며 “어제 술을 많이 자셨다고 한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체는 완전히 달랐다. 이 대표는 여러 당무를 놓고 갈등을 빚어온 윤 후보를 겨냥, 작심하고 행동을 개시했다. 그의 행방을 찾던 기자들은 이 대표가 서울에서 사라진 첫날 부산에 머물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준석, 당무 거부’ ‘당무 보이콧 들어가’ 등의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이 대표는 잠적 첫날 부산에서 머물렀고, 다음 행적은 전남 순천, 여수로 이어졌다. 그 다음은 제주도였다. 잠행이 길어진다는 명시적 표시였고 서울로 돌아올 생각도 없다는 신호를 이 대표는 분명하게 발신했다.
정가에선 이 대표가 당무 태업을 둘러싸고 자신에게 쏟아질 보수 지지층들의 반발을 의식, 잠행 명분을 든든하게 갖춰놨다는 반응이 나왔다. 영호남을 횡단한 뒤 보수 지지세가 약한 제주도까지 가는 광폭 동선을 그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당 대표로서 당무 거부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외연 확장에 나서고 있다는 모양새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 대표는 언론의 관심이 윤 후보에게서 벗어나 자신에게로 다가오기 시작하자 윤 후보를 향한 분노의 불길을 본격적으로 내뿜기 시작했다. 저강도에서 고강도로, 은유법에서 직설법으로, 다양한 전술을 구사하면서 정치평론가 출신답게 자신에 대한 주목도를 극대화시키는 방법을 썼다.
이 대표는 잠행 1일차 외부 행보인 부산 방문에서 윤 후보 최측근으로 불리는 장제원 의원 지역구인 사상 당원협의회 사무실을 기습 방문, 잠행의 의미를 은유적으로 노출시켰다. 이 대표 측은 기자들에게 배포한 공지문에서 “이 대표가 사무실을 격려차 방문했고, 당원 증감 추이 등 지역 현안과 관련해 당직자들과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지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기자들은 없었다.
윤 후보 오른팔로 불리는 장 의원은 최근 이 대표와 공개적으로 각을 세워왔다. 이 대표의 기습 방문을 두고 윤 후보 우회 저격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장 의원은 11월 30일 국회 법사위 참석 후 기자들에게 “지금 분란의 요지는 ‘왜 나 빼냐’는 것이다. 이런 영역 싸움을 후보 앞에서 하는 것”이라면서 이 대표를 공개 비판했다. 이 대표 역시 11월 29일 장 의원이 백의종군을 선언한 후로도 실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일부 언론 보도와 관련해 “어머나, 놀라운 일이네요”라면서 비꼰 바 있다.
부산과 전남에서의 잠행을 통해 언론의 주목도를 최대한 이끌어냈다고 판단한 이 대표는 12월 2일 제주 방문에서 본격적으로 윤 후보에 대해 포문을 열어젖혔다. 이날 제주도에서 4·3 평화공원 참배를 마친 뒤 기자들을 만나자 윤 후보가 자신을 사실상 ‘패싱’ 했다며 강력 성토한 것이다.
그는 “이것이 당무 거부냐 얘기하시는데, 우리 후보가 선출된 이후에 저는 당무를 한 적이 없다”고 작심 발언하면서 자신을 패싱해온 윤 후보를 직격했다. 그는 이어 “후보의 의중에 따라 사무총장 등이 교체된 이후 제 기억에 딱 한 건 이외에 보고를 받아본 적이 없는 것 같다”면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준석 대표는 자신의 ‘잠행’이 돌발 행동이라는 일부 시각과 관련해 “제 역할에 대해 많이 고민했기 때문에 지금 저는 계획된 대로 행동을 하고 있다”고 발언, 갈등 국면이 쉽게 마무리되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더욱이 그는 ‘오는 12월 6일 선대위 발족식에는 참석하지 않을 것인가’라는 기자 질문에 “발족은 (지난) 월요일에 했다”고 답했다. 발족식 행사에 불참하겠다는 뜻이었다.
이 대표는 특히 “(윤석열 대선 후보의) 핵심 관계자 발로 언급되는 여러 가지 저에 대한 모욕적인 발언들이 지금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 윤 후보 측과의 감정 골이 심각하게 깊어진 상태임을 털어놨다. 같은 날 JTBC 인터뷰에서도 이 대표는 윤 후보를 향해 “당 대표는 적어도 대통령 후보의 부하가 아니다”라고까지 말하면서 분노의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정치권에서는 이 대표가 패싱 상황이 악화돼가자 “더 이상은 도저히 못 참겠다”며 폭탄을 터뜨린 것으로 이 사태를 분석하고 있다. 이 대표로서는 윤 후보가 국민의힘 입당 때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당사에 찾아와 전격 입당했고, 대선 후보 선출 전당대회 이후 당 사무총장을 굳이 바꿀 필요가 없는데도 윤 후보가 힘으로 밀어붙여 윤 후보 측근인 권성동 의원을 임명하는 등 당 대표가 허수아비로 전락했다는 위기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게다가 선대위 인선에조차 이 대표의 말이 전혀 먹혀들지 않자 강공 행동을 감행했다는 것이 정치권의 한목소리다.
이 대표는 JTBC 인터뷰에서 자신에게 날선 비판을 익명 인터뷰를 통해 쏟아내 왔던 이른바 ‘윤핵관(윤 후보 측 핵심 관계자)’과 관련, “다 아시겠지만 여러 명이다. 익명으로 장난치고 후보 권위를 빌어 호가호위하는 것이다. 저는 실패한 대통령 후보, 실패한 대통령을 만드는 데 일조하지 않겠다”고 했다. 윤 후보가 직접 나서 후보 최측근들을 갈아치우라는 의미였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이 대표도 자신의 이런 행동이 지지층으로부터 비판을 받을 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대표로선 다른 수가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선대위에서 고립될 수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이 대표는 2030 지지 기반을 갖고 있는 본인이 대선을 돕지 않으면 정권 교체가 힘들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또 자신을 패싱하려는 일부 측근들이 윤 후보의 눈과 귀를 막고 있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고 말했다.
#윤, 화친이냐 강공이냐
국민의힘 한 다선 의원은 “윤 후보는 이 대표를 어리게 취급하고, 이 대표는 윤 후보를 초보 운전자로 생각하면서 자꾸 가르치려고 드니 충돌이 일어나는 것”이라며 “지금으로서는 답답한 사람이 우물을 파야 하는데 결국 답답한 사람은 윤 후보”라고 진단했다. 이 대표를 향해 굽히고 들어갈 수밖에 없고, 이 대표에 대한 화친 전략을 무조건 써서 이 대표의 당무 보이콧 사태부터 풀어야 한다는 의미다.
국민의힘 일부 원로들도 윤 후보에게 비슷한 의견을 전달했다. 윤 후보는 12월 2일 국회 앞 한 식당에서 국민의힘 상임고문들과 오찬을 함께했는데 이 자리에서 대한민국 헌정회장을 지낸 신경식 상임고문은 “바다가 모든 개울물을 끌어안듯 윤석열 후보는 마음에 들든 안 들든, 싫든 좋든 전부 내 편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신 고문은 “김종인 그분의 직책이 뭔지 모르겠는데, 김종인 씨하고 이준석 대표 두 사람 때문에 우리 당이 여러 가지로 상처를 입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따끔한 지적을 날린 뒤 “두 분이 우리 당에 들어와 앞장서서 일해서 당력에 영향을 주는 큰 표를 갖는 분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두 분을 윤 후보가 끌어안고 같이 나가지 못할 때는, 마치 윤 후보가 포용력 없이 검찰에서 법대로 휘두르던 성격을 갖고 정치하려고 한다는 비판을 받아 잃어버리는 표가 상당히 많을 것”이라고 했다.
신 고문은 과거 고 김영삼 전 대통령(YS)이 민정계 대표였던 박태준 전 의원을 설득하기 위해 새벽차를 타고 경상남도 거제로 내려가 종일 머물렀던 일화까지 소개하면서 “이런 일이 보도되니 YS에게 반감을 가졌던 사람들이 서서히 방향을 바꿔 김영삼 후보를 지지하는 데 모두 동참했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 굽히고 나서면 대선 후보가 당 안팎의 모든 훈수정치에 계속 끌려 다니면서 혼란이 극도로 확대, 콩가루 집안이 되고 결국 국민의 외면을 받게 될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윤 후보와 국민의힘 상임고문들과의 오찬에서도 ‘품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 권해옥 상임고문이 “(이 대표에게) 왜 찾아가는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며 강경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비공개 오찬 중 김종인 전 위원장과 이 대표의 합류가 필요하다는 의견과 반대 의견이 극명하게 엇갈렸다는 것이다.
윤 후보도 11월 3일 이준석 대표와의 회동 여부와 관련, “현재로서는 계획이 없다”고 말하면서 서둘러 화친 전략을 사용할 뜻이 없음을 내비쳤다. 윤 후보는 이날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자신이 주재하는 긴급 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기에 앞서 ‘이 대표를 오늘 안 만나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윤 후보 친구이자 최측근인 권성동 사무총장도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회동 여부에 대해 “의견 조율 과정을 거치지 않고 가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윤 후보가 제주에 가느냐’는 질문에도 “안 간다. 만나면 뭔가 해결이 돼야 하는데 그러려면 의견 조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윤 후보는 12월 2일 홍준표 의원과 서울시내 한 식당에서 장장 3시간 40분에 걸친 비공개 만찬을 가졌다. 윤 후보가 홍 의원을 따로 만난 것은 11월 5일 경선 후 27일 만으로 홍 의원과의 화합 전략을 통해 이 대표와의 갈등을 우회적으로 풀어가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윤석열 경선 캠프에 몸담았던 한 현역 의원은 “당무우선권을 가진 대선 후보지만 정치 초보라고 얕보니 간섭이 쏟아진다”며 “끌려 다니지 않되 때로는 포용하는, 즉 경계를 잘 지켜나가는 방법으로 훈수정치에 휘말리지 않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내홍을 서둘러 수습하지 않을 경우 이재명 민주당 후보와의 ‘골든크로스’가 이뤄질 것이란 우려가 파다하다. 한국갤럽이 11월 30일~12월 2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3일 공개한 정례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포인트·응답률 15%)에 따르면 이 후보와 윤 후보는 36%, 동률이었다. 이 후보는 11월 16~18일 여론조사 대비 5%포인트(p) 지지율이 상승한 반면, 윤 후보는 6%p 하락했다(자세한 사항은 여론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국민의힘 경선 후 이 후보와의 격차를 벌렸던 윤 후보로선 선대위 구성 및 운영을 놓고 지속적으로 벌어졌던 갈등이 아쉬울 수밖에 없다. 윤 후보 측 관계자는 “우리끼리 싸우다 벌어놨던 지지율을 다 깎아먹었다. 샴페인을 일찍 터트렸단 말까지 나온다”면서 “빨리 정신 차리지 않으면 정권 교체는 물 건너간다”고 꼬집었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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