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해운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단계적으로 감축하는 파리기후변화협약에 195개국이 합의한 이후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으로 꼽히는 운송수단 업계들의 변화 그 중에서도 해운업의 변화가 우리에게도 거대하게 다가오고 있다.
북한에 가로막혀 사실상 섬나라나 다름없는 우리나라. 수출입 무역의존도가 70% 이상이고 그중 99.7%가 해운 운송에 의존하고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해운, 물류 산업'은 중요하다. 2016년 세계 컨테이너 선복량 7위에서 2017년 한진해운 파산 후 순위에도 없다가 불과 4년만인 2021년 상반기 8위에 올라선 우리나라의 값진 성과와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 규제 속 또 한 번의 도전 과제를 받은 전 세계 해운 선진국들의 친환경 선박 기술개발과 보급을 위한 노력과 움직임은 무엇일까. 탄소 제로 선박과 친환경 해운을 위한 우리 '조선, 해운업계'의 생생하고 치열한 현장을 통해 세계를 선도할 K-녹색 물류의 미래를 들여다본다.
전라남도 목포의 목포항 바닷가에 정박해있는 초대형 벌크선에 '한국 선급' 직원들이 나타났다. 길이 287m, 폭 45m, 깊이 약 25m인 18만 톤 급 초대형 벌크선. 이 벌크선은 곡물이나 광물, 석탄 등의 포장하지 않은 화물을 수송하는 화물선을 말한다. 이 거대한 선박의 안전한 항해를 위해 바닷물과 빗물의 유입을 철저히 차단하는지 엔진이나 화물칸뿐만 아니라 배 전체를 검사하는 '한국선급'.
이들이 목포항에서 검사 중인 18만 톤급 거대 벌크선은 천연가스인 LNG를 실어 나르는 LNG 벌크선으로 '초대형 친환경 선박'이었다. 친환경 선박은 '저탄소 선박(LNG 추진선 등)'과 '무탄소 선박(수소, 암모니아 선박 등)', 그리고 기존 엔진에 전기 배터리를 결합해 배출가스를 줄이는 '하이브리드 선박'으로 나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무역은 해상운송에 의존하고 있는 데다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수많은 선박이 탄소배출의 주체로 꼽히면서 영국 런던에 위치한 UN 산하 국제해사기구 IMO는 전 지구적 기후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2020년부터 선박 연료유의 황산화물 함유량을 기존 3.5%에서 0.5%로 제한하는 규정을 발표했다. 그리고 2021년 6월에는 2050년까지 선박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50% 감축하도록 규정을 새로 마련했다.
불가피한 구조적 변화가 요구되는 시점에 해운업계의 대안과 노력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 해양 선진국들은 미래 해운시장 선점을 위한 슬로건을 친환경으로 바꾸고 있다.
13세기 개발된 돛을 띄워 오직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범선이 15세기 대항해시대를 열고 18세기 증기기관이 개발되면서 최초의 상업용 증기선이 탄생했다. 20세기에는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디젤 기관선이 세계를 제패했고 이제 21세기에는 친환경 연료 선박들이 바다를 누비기 시작한 것이다.
해운업계에서 사용하는 연료는 석유에서 LNG로 바뀌고 수소 같은 대체 연료로 변해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현재 해운업계의 1/8이 LNG 가스를 연료로 사용하고 있으며 메탄올이나 수소 같은 대체 연료 사용 비율도 1/20에 이른다.
지금은 비행기 정규선들처럼 너무나 당연해진 컨테이너 정규 항로 선박들은 1956년 미국의 사업가 맬컴 맥린에 의해 최초로 개발된 화물 운송 방식이었다. 배에 화물을 싣고 내리는 데 걸리는 시간과 노동을 1/10로 줄인 이른바 '컨테이너 혁명'은 이제 2만 4000개의 컨테이너를 실을 수 있는 세계 최대 2만 4000TEU급 선박으로 폭발적 성장에 이르고 있다.
자동차와 반도체 등 연간 약 760조 원 규모를 수출하고 원유와 광물 등을 약 700조 원가량 수입하는 우리나라. 제조업 강국인 우리나라에서 서비스업인 해운업은 '10대 외화획득산업' 중 유일하며 무려 4위를 차지할 정도로 효자 분야다.
불과 4년 전 세계 해운업계 7대 선사로 자리 잡고 있던 한진해운이 세계 금융위기 속 글로벌 경쟁을 이기지 못하고 파산하면서 불어닥쳤던 해운업계의 위기를 4년 만에 재건할 수 있었던 신의 한 수는 정부의 ‘해운 재건 5개년 계획’이었다. 2018년부터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 20척을 차례로 건조하기 시작하면서 2021년 6월 마지막 20호선이 출항할 즈음에는 모두 만선 행렬로 전 세계 바다를 누비게 됐고 전 세계 8위에 우리나라 국적 해운사(HMM)가 등장하기에 이른다.
세계 1위의 해운사 머스크가 있는 덴마크는 바이킹의 후예답게 17세기 중세 시대 초반부터 오늘날까지 발트해의 관문이자 해상무역 강국의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다. 해운업은 국가 경제의 25%에 이른다. 그럼에도 해운 강국의 영광을 굳건히 지키기 위해 친환경 시대에 선도적으로 앞장서고 있다. 117년 전 작은 증기선으로 시작한 머스크는 '2050년까지 모든 선박의 무탄소화'를 선언했고 친환경 메탄올 선박을 만들기 위해 우리나라에 선박3척을 발주했다.
2030년에는 무탄소 선박 운항을 시작한다는 목표 속에 덴마크 정부 또한 무탄소 선박 운송을 위해 국제적인 공공민간 파트너십을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는 한진해운 파산 직후 정부가 직접 나서 2018년부터 해양 진흥공사를 설립하는 등 전폭적 친환경 해운 지원정책을 시작했다. 해수부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70% 저감 기계 개발과 기존 선박 3500척 중 15%인 528척을 친환경 선박으로 전환한다고 전한다. 해진공에서는 특별보증을 통해 9월 기준 35개 선사에 총 4882억 원을 지원했다.
이런 노력이 이어져 국내 한 조선사 설계팀에서는 약 2년 만에 아파트 20층 규모의 세계 최고 친환경 LNG 선박을 만들어내는가 하면, 전 세계 친환경 선박 제조 발주량 1,014만CGT 중 국내 조선 3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670만 CGT 무려 66%에 이르고, 대형 LNG 컨테이너선 발주는 세계의 99%를 쓸어 담았다.
글로벌 해운뿐만 아니라 내항선에도 친환경 바람은 흐름이 됐다. 5만 톤급 LNG추진 벌크선은 국내 최초이자 세계 최초로 만들어져 동해와 광양을 오간다. 도로운송에 비해 해양 운송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현저히 낮아 국내 육송 물류를 내항선으로 전환할 경우 해운 조합과 정부에서는 전환교통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부산대학교의 수소 선박센터에서는 100m에 이르는 거대한 선박 예인 수조에서 실험이 진행 중이다. 이들은 얼마 전 –162℃ 극저온 상태의 액체인 LNG 가스를 담기 위한 저장탱크 단열소재를 개발하는 다년간의 실험과 도전을 통해, 우리 독자 기술로 ‘저마찰 방오도료’를 개발했다.
그간 프랑스 독점이었던 LNG 저장탱크 기술에 선박 1척당 100억 원 정도를 약 30년 동안 지불해 왔던 로열티 비용을 천문학적으로 줄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선박 속력 3.7% 증가, 연비는 11.3%나 좋아졌고 자동차 약7200대 분량의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게 됐다.
국적 해운사 HMM의 꺼지지 않는 선박 종합상황실도 친환경 해운업의 랜드마크가 되어가고 있다. 2020년 9월 마련된 국내 최초 선박 종합상황실. 이곳에서는 IT 기술이 적용된 스마트선박들을 인공위성을 활용해 24시간 모니터링 하고 있다. 정부가 지원한 20척의 스마트선박이 세계 어느 바다에 있든 인공위성을 통해 선박의 위치, 연비 등 상세정보를 빅데이터로 실시간 수집하고 환경오염 물질 배출량까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선박에 실려있는 화물량에 따라 최적 경로를 찾아 운항하면서 연료를 적게 쓰게 되고 이로 인해 대기 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게 되는 친환경 운용이 진행 중이다.
전 세계를 잇는 친환경 물류 대동맥의 선두에 서기 위한 우리나라 해운업계의 고군분투. 2021년 세계 해운업계의 흐름 속에서 찾아낸 성공과 미래의 키워드 '친환경 녹색 물류'를 통해 우리나라 해운업을 재조명해본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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