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새 오리지널 시리즈이자 ‘부산행’ 연상호 감독의 신작 ‘지옥’에서 박정민은 이야기의 후반부에 해당하는 4~6화에서 등장한다. ‘죄인’들을 지옥으로 보낸다는 고지가 실제라는 것이 알려지고 나서 더욱 혼란해진 사회 속, 그럼에도 일상을 살아가는 방송국 프로듀서(PD) 배영재가 그가 맡은 배역이다. 점점 덩치를 키워가는 사이비 종교단체 새진리회와 그들을 믿는 사회에 염증을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가족을 위해 하루하루 꾸역꾸역 살아가는 배영재는 이 시대의 ‘평범한 사회인’ 그 자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배영재는 그냥 회사 다니는 직장인이에요. 거대한 재난 또는 자연재해 같은 상황이 닥친 이 세상에서 그냥 다 필요 없고, 자기 할 일 하고 회사 다니는 피곤한 직장인. 그러면서도 세상에서 자기 가족이 제일 중요한, 어쩌면 저희들의 아버지 같은 사람이죠. 그렇게 평범한 직장인의 모습으로 제일 처음 캐릭터에 접근했던 것 같아요. 그런 평범한 사람에게 이런 엄청난 일이 닥친다면 어떻게 대처하게 될까. 또 어떻게 반응하면서 해결해 나갈까. 그게 저도 궁금하더라고요.”
가족 빼고 세상 모든 것이 싫은 배영재의 대사는 과장을 조금 보태서 8할이 ‘투덜거림’이다. 자신에게 홍보 영상을 맡기면서 과한 요구를 하는 새진리회 간부 앞에서도 투덜거리고, 갑자기 자취를 감춘 직장 선배를 찾으러 가면서도 투덜거린다. 갓 태어난 아기에게 닥친 위기 상황 앞에서 어쩌면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구원자일 수 있는 사람 앞에서도 배영재의 입은 쉬지 않는다. 그런 생활 연기(?)를 보며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박정민의 애드리브냐, 연상호 감독이 처음부터 지시한 대사냐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다.
배영재는 박정민이 처음 맡게 된 ‘아버지’ 역할이자 배우 본인의 나이와 비슷한 캐릭터다. 줄곧 고등학생부터 20대까지 비교적 어린 캐릭터를 맡으며 그 이미지로 대중들에게 익숙해졌음을 자신했기 때문일까. 시즌2에서의 재등장을 바라며 박정민은 극 중 배영재의 갓난아기 ‘튼튼이’의 성장한 모습을 자신이 맡고 싶다는 야망을 드러내기도 했다.
“시즌2에 나오고자 하는 마음은 제가 가장 절실해요. 촬영 중에 농담 삼아서 ‘배영재는 언제 살아나요?’ 물어봤는데 감독님이 안 살아난다고 하시더라고요. 튼튼이를 보면 혼란하고 탐욕스럽고 맹목적인, 완전히 엉망이 된 사회에서 사랑으로 살아남은 유일한 존재인데, 앞으로 어떻게 자라나 무슨 역할을 할지가 너무 궁금하더라고요. 그래서 감독님한테 ‘시즌2에서 튼튼이가 성장한 모습 제가 하면 안 돼요?’ 했는데 애가 아들인지 딸인지 모르니까 원진아(배영재의 아내 송소현 역) 씨도 자기가 하고 싶다 그랬대요. 결국 둘 다 못하게 됐죠(웃음).”
“김현주 선배님을 만난 것 자체가 제겐 너무 놀랍고 기적 같은 일이었어요. 원래 저만의 연예인 같은 분이었는데 실제로 같이 연기를 하게 된 거잖아요. 그런데 제가 예상하지 못한 연기를 해서 선배님을 좀 당황시켜 드렸던 것 같아요(웃음). 또 유아인 씨는 저랑 비슷하게 말수가 많지 않아서…. 서로 만나면 하는 말이 ‘오셨어요?, 잘 지내셨어요?, 뭐하고 지내셨어요?’ 정도였거든요. 제가 아인 씨를 같은 또래인데도 높으신 선배님처럼 느끼고 붙임성이 없어서(웃음). 다음에 만나면 더 다가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처럼 연기력으로 정평이 나 있는 배우들에 더해 ‘이야기꾼’ 감독이 완성해 낸 ‘지옥’은 앞서 ‘킹덤’ ‘스위트홈’ ‘오징어게임’ ‘마이네임’ 등이 그랬듯이 공개 첫 주부터 전 세계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장르 특성상 호불호가 강하게 갈리긴 했으나 국내외 시청자들이 똑같은 작품을 보고 다양한 의견을 교류한다는 것은 배우와 제작진을 모두 뿌듯하게 만들었다. 이 같은 K 콘텐츠의 약진을 두고 박정민은 갑자기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점을 특별히 강조했다.
“원래 한국 사람들은 드라마와 영화를 정말 잘 만들었어요. 그걸 전 세계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뿐이에요. 원래 재미있게 잘 만드는 한국의 콘텐츠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도 재미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넷플릭스 같은 다양한 OTT 플랫폼을 통해 다들 알게 된 거죠. 저희 ‘지옥’이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앞서 영화 ‘기생충’이나 ‘미나리’, 넷플릭스 ‘오징어게임’처럼 좋은 작품들이 활로를 뚫어줘서 그 덕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